2023-07-08

분례기 - KBS TV문학관 & SBS 창사 특집 드라마


'분례기'하면 사실 SBS 드라마가 먼저 떠오른다. 방영 당시 재미있게 봐서 그렇기도 하지만 티비문학관보다는 한참 뒤에 본 탓이다. sbs는 개국 초기(대문자 아닌 소문자 시절) 토속적인 작품을 곧잘 만들었었다. '분례기'도 그중 하나였다. 듣기만 해도 무슨 냄새가 날 것 같은 이름의 주인공 '똥례'를 '신영진'이라는 신인 배우가 어찌나 잘 그려내던지 그래서 더 인상에 남은 것도 있다.


냉수 한 그릇 떠놓고 분례가 혼인식을 하고 있다
KBS TV문학관 분례기

UHD로 만나는 TV문학관 여섯 번째 작품 '분례기'


: 1983.05.14 KBS 방영. 2023.4.10 재방영. 방영웅 원작. 최경식 극본. 김재현 연출. 이덕희, 김인문, 장항선, 장학수, 박혜숙, 최주봉, 김난영, 정종준, 최선아, 이원종, 곽정희, 황민, 박현정, 조은덕, 방숙례, 박선희, 안성태, 박해상, 공경구, 이동진 출연.


쪽두리에 한복을 차려 입은 분례
SBS 창사 특집 드라마 분례기

SBS 창사 특집 드라마 "분례기"

: 1992.01.20 ~ 03.10 SBS 방영. 16부작. 방영웅 원작. 장구태 극본. 이종한 연출. 신영진, 윤여정, 윤문식, 이동진, 김인문, 나문희, 양금석, 장항선, 최낙천, 여운계 등 출연.


 다시 본 TV문학관 '분례기'는 요즘 말로 핵핵핵 핵고구마였다! sbs 드라마 내용도 다르지 않았을 텐데 과연 내가 이걸 재밌게 보았단 말인가? ??? 옛날엔 귀하게 키우면 귀신이 일찍 데려간다고 해서 이름을 천하게 지었다는 속설도 있지만 그거야 좀 사는 집 얘기일 것이고, 분례[똥례]의 경우엔 화장실[뒷간,똥둑간]에서 낳았다고 그냥 붙인 이름이다. 열여덟살 분례(이덕희)의 일과를 보면 살림도 하고 나무도 베어 오고 일당백 집안 일꾼이다. 고자로 소문난 동네 유부남 용팔(장학수)을 따라 산에 나무를 하러 다니는데, 어느 날 이 놈이 분례한테 성욕을 느끼고는 강간을 해버린다. 고자라고 안심했다가 무방비로 당한 것이다.

 노름방에서 심부름을 해주며 개평으로 먹고 사는 분례의 아빠 석씨(김인문)는 노름꾼 영철(장항선)의 모친(김난영)으로부터 분례를 며느리로 달라는 얘기를 듣는다. 비록 3대 독자는 노름에 미쳐 있고 며느리가 여러 번 바뀌긴 했지만 국밥집을 운영하며 꽤나 먹고 사는 집안이다. 더구나 땅까지 떼어준다고 하니 지지리궁상 석씨에겐 아주 솔깃한 제안이다. 하지만 처음엔 단칼에 거절했다가 노름꾼 승원(최주봉)에게 무시를 한번 당하고는 분례를 그 집에 보내기로[팔아먹기로] 결심한다. 분례의 엄마(박혜숙)는 진즉부터 딸을 이용해 빈곤을 해결하고 싶어 했다. '니 한 몸 죽어서 친정 식구들 살린다고 생각해라', '잘 살고 못 살고는 다 너한테 달렸다' 따위의 조~옥같은 말들을 해주며 눈물을 짜는 엄마라니. 그 모습이 가증스럽다. 
 

 
자랑할 만한 혼사가 아니기에 석씨는 마을 사람들 몰래 딸을 데리고 영철의 집으로 간다. 그 며칠 전 마을에서는 큰일이 있었다. 분례의 친구 봉순(최선아)이 혼인을 앞두고 목을 맨 것이다. 동네 상여막(=상여 창고)을 자주 들여다보았던 분례는 봉순이 승원과 같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둘이 꽤 깊은 사이처럼 보였으나 이내 승원은 자기 말을 안 들으면 동네에 소문을 내겠다며 봉순을 협박하고 있었다. 분례는 자신이 강간당한 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듯 친구의 일도 말하지 못했다. 봉순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을 들었던 사람들은 실상도 모르면서 봉순을 욕한다. 특히 용팔의 처와 분례의 엄마가 목소리를 높인다. 
 
국수 한 그릇과 물 한 대접 놓고 초라하게 혼례를 올린 분례는 그나마 시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인간 답게 산다. 밤새 노름방에 가 있는 남편을 대신해 장에서 사온 다람쥐를 친구 삼아 외로움을 달랜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 영철이 폭탄선언을 한다. 한몫 크게 챙기면 다 그만둘 거라고. 그리고는 거짓말처럼 큰돈을 따서 분례에게 맡긴다. 자기가 돈을 달라고 해도 절대 내주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곧 다시 노름에 미쳐서는 승원에게 돈 심부름을 시킨다. 
 

 
다람쥐와 놀고 있었던 분례는 돈 구경도 못 했다며 승원을 쫓아 버리고, 승원은 방 밖에서 분례의 말소리만 듣고는 분례가 서방질을 했다고 영철에게 전한다. 그 말에 돌아버린 영철은 집으로 달려와 분례를 무자비하게 패고는 그 돈을 가져다 모두 잃는다. 시어머니 역시 남의 말만 듣고 분례에게 나가라고 소리친다. 해명 한 번 못하고 쫓겨난 분례는 친정으로 되돌아오는데 눈빛부터 정상이 아니다. 놀란 분례의 부모는 딸을 위해 굿판을 열지만 그 소란을 틈 타 분례는 사라져 버린다. 어딘가로 가고 있는 분례를 본 용팔이 그 서러운 이름을 목놓아 부를 뿐. 
 
아아 혈압이 솟구친다!
원작 소설은 읽어보지 않았는데 줄거리를 보니 드라마보다 더 하다. 분례가 노름꾼 남편에게 얻어 맞고 쫓겨났을 때 동네 놈팡이들한테 집단으로 강간을 당한다고.... 조카 십팔색 크레파스 샹샹바!

승원이 봉순을 협박했다고 폭로해서 그놈을 진즉에 개박살 냈더라면 어땠을까? 승원이 석씨에게 (떵 닦을) 종이를 가져다 달라고 했을 때 석씨가 종이 대신 따귀를 날린 것에 대한 복수를 그 딸에게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 정말 개스키... 물론 남의 말 한마디에 부인 패고 쫓아낸 놈도 개스키. 강간하는 놈들도 개스키. 딸을 팔아먹은 부모들도 개스키. 분례의 인생이 여성 수난사 그 자체이다. 
 


작아질 대로 작아진 분례의 모습 위로 깔리는 김동애의 창이 어찌나 구슬프게 들리는지, 그간 험난한 시대를 살아왔고 앞으로 또 살아갈 수많은 분례들이 새삼 그 위로 겹쳐진다. 
 

* 영철 모친(김난영)과 노름방 주모(곽정희), 무당(박현정)으로 나온 세 배우가 굉장히 닮아 보인다.

* 분례의 동생으로 요절한 가수 박길라(박선희)가 나온다.

* 원작 소설을 쓴 방영웅 작가는 2022년에 돌아가셨다. 

* 윤정희, 이순재, 허장강 주연의 영화도 있다. 1971년 개봉. 유현목 감독.

* SBS 분례기의 주인공 신영진 배우는 1994년 활동을 그만두고 캐나다에서 오래 살았다고 한다. 출판사, 안경원 등에서 일했다고. 10년 만에 다시 복귀해서 지금은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광고 스팸 빼고 부담 없이 댓글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