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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07

막차 탄 동기동창 - MBC 베스트극장 (오현경 김상순) / 1991년 연극


혼자 사는 대부(오현경)의 집에 느닷없이 오달(김상순)이 찾아온다. 대부는 그가 누구인지 기억도 못한다. 오달은 국민학교 동창 사이라며 어렸을 적 얘기를 늘어놓는다. 몇 십 년 만에 만난 두 사람은 옛날로 돌아간다. 하지만 미국물까지 먹은 대부와 농사만 짓고 산 오달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오달의 가출이 길어지면서 두 사람은 사사건건 부딪힌다.

대부와 오달이 마주 보고 앉아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오현경, 김상순 / 웨이브 캡처


MBC 베스트극장 제 21회 '막차 탄 동기동창'


: 1991.12.08 방영.  이근삼 원작. 유호 극본. 김승수 연출.  최종수 기획. 송병준 작곡. 오현경, 김상순, 배연정(옆집 무당), 김기현(이사장), 나영진(판사), 이성용/한석규(법정 방청객), 오세준(?).


이 단막극은 1991년 화제가 된 연극을 드라마로 만든 것이다. 나는 당시 이 연극을 직접 보았었다. 고 이어령 님이 문화부 장관이었던 시절 '문화가족'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었는데 그 덕분에 수준 높은 작품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솔직히 내용은 거의 생각이 안 나고 두 남자가 관객을 향해 앉아서 말을 많이 했던 것과 재미있었다는 감상만 남아있다. 사실 이 연극이 특별하게 기억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당시 내 앞줄에 앉았던 두 사람이 서로 얼굴을 가까이 한 채 쉴 새 없이 속닥거렸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들리지 않았으나 웃음 섞인 목소리로 계속 수다를 떠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해서 조명이 켜지자마자 얼굴을 보았는데 진짜 깜짝 놀랐다. 후다닥 자리를 뜨는 여자는 너무 너무 미인이었다. 분명 연예인인데 누구인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미모에 놀라 머리가 마비됨]



옆자리 남자는 인기 스타 배우였다. 그는 곧 관객들에게 둘러싸였다. 사인(sign)을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싸인을 해주었다. 갖고 있던 종이가 연극 초대장 뿐이어서 거기에 싸인을 받았던 거 같은데, 객석에는 종이를 받칠 만한 곳이 없어서 그가 자신의 허벅지를 받침대처럼 썼다. 함께 보러 갔던 가족이 뭘 물어봤던가 무슨 말을 했었는데 대꾸도 잘 해주었다. 그는 매니저로 보이는 일행이 재촉해도 원하는 모두에게 싸인을 해주고 자리를 떠났다.

연극 내내 눈에 쌍심지를 켰던 나는 그의 매너에 반해 팬이 되었다. 그 여자 연예인은 누구인지 뒤늦게 깨달았다. 아마도 당시에 인터넷이 있었다면 바로 목격담이 퍼졌을 것이다. 그 일이 있고 오래지 않아 당시 애청하던 라디오 프로에 그 남자 배우가 나왔다. 청취자와 전화 연결을 한다기에 열나게 신청을 해서 그와 인사까지 나누었는데, 내가 연극 얘기를 꺼내자 생방송에 침묵이 흘렀다. 그러더니 디제이 정원관(소방차 멤버)이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만약 그때 내가 여자 연예인 얘기까지 했었다면 바로 기사가 떴었겠지?

그리고 얼마 뒤에 그 남자 배우의 스캔들이 크게 터졌다. 상대는 극장에서 보았던 바로 그 여자 연예인이었다. 나중엔 TV 연예 프로에 나와서 연인 사이가 맞다고 인정했다. 그때만 해도 두 분이 결혼할 줄 알았는데......

시간이 더 더 흐르면 이 스타 커플이 누구였는지 까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각자의 길을 가고 있기에 이름을 밝힐 수 없다. 내 앞자리의 두 사람이 가끔 생각 난다. 만약 그때 잘 되었으면 어땠을까. 가보지 않은,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궁금증과 아쉬움은 세월이 흘러도 옅어지지 않는다.




써 놓고 보니 작품 이야기가 거의 없...😓 이번에 정보를 찾아보다 2023년에도 이 연극이 공연된 것을 알았다. 주인공 소개를 보니 설정이 바뀌었다. 다음에 언제 또 하면 보러 가볼까?


* 연극은 1991년 서울연극제 작품상 수상. 오현경과 허현호가 각각 대부와 오달을 연기함.

* 서울 장충동에 있는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본 줄 알았는데 혜화동에 있는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공연했었다고? (현재는 아르코 예술극장으로 이름이 바뀜)

* 엔딩 크레딧에 한석규 이름이 보여서 찾아보니 단역으로 잠깐 나온다.

법정에 있는 피고인과 참관인들
왼쪽부터 이성용,한석규,김기현 / 웨이브 캡처

2025-02-04

그들만의 방 - MBC 베스트극장 (양정아 한석규)


지옥철 출근에 질려버린 민정(양정아)은 회사 가까운 곳에 방을 얻기로 한다. 무가지에서 '잠만 잘 분' 광고를 뒤지다 괜찮은 곳을 발견하는데 주인이 남자(한석규)이다. 그럼에도 살림살이를 새로 살 필요 없이 관리비만 부담하면 되는 조건이라 바로 계약한다.

한석규와 양정아가 마주 보고 서있다
웨이브 캡처


MBC 베스트극장 제 140회 그들만의 방


: 1994.06.17 방영. 박종은 극본. 최이섭 연출. 양정아, 한석규, 김나운, 조민기, 김길호, 신귀식, 최은숙, 서갑숙, 오정석 출연.

두 사람이 한 공간에서 12시간씩 나눠 사는 기묘한 동거. 계약 내용은 그렇지만 서로 사정이 생기면서 자꾸 부딪히게 된다. 그러면서 민정과 재현은 점점 가까워지는데......



와, 진짜 30여 년 만에 다시 보았다. 휴대폰은커녕 삐삐도 없는 세상이라니! 얼굴 크기와 맞먹는 무선전화기, MS-DOS 기반의 컴퓨터, 벼룩시장 같은 무료 신문... 그동안 세상이 얼마나 무섭게 바뀌었는지 이 단막극을 보면서 실감했다.

드라마 얘기를 해보자면, 두 사람의 감정선이 자연스럽게 그려지기엔 1시간 남짓한 시간이 많이 모자랐다. 런닝타임이 좀 더 허락되었다면 후반부가 그렇게 갑자기 정리되진 않았을 듯.

엔딩은 기억과 많이 달라서 당황스러웠다. 재현이 민정을 안아 올린 것은 분명히 기억하는데, 그게 하얀 예복과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그런 것이었다니. 더 기가 막혔던 건 재현이 민정을 안아서 뱅글뱅글 도는데 진짜 열 바퀴는 넘게 돈다. 석규님 이때 허리 괜찮으셨나요~~ 설마 NG나서 두 번 세 번 촬영한 건 아니겠지? 연출자 분이 짓궂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랑이 신부를 안아서 돌고 있다
웨이브 캡처


재현 역할은 한석규가 개연성이었다. 누가 봐도 나쁜 짓 할 느낌이 전혀 안 드는 사람이 맡아야 했다. 당찬 이미지의 양정아도 매력적이었다. 숏컷 가발이 어색한 게 흠이라면 흠. 엄한 집에서 독립하기로 마음먹은 의지를 보여주려 머리를 자른 것은 알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다시 보면서 많이[엄청] 웃었다. 다음에는 또 뭘 볼까나?


* 민정이 방황할 때 나오는 노래가 괜찮아서 찾아보니 이주엽의 '운명'이었다. 세상 끝나는 날까지 너를 포기할 순 없어 운명이라는 건 널 보낸 외로움.



2024-12-24

외등 - KBS HD TV문학관 (기태영 홍수현 정은찬 서영희) + 단막극 페스티벌


고등학생인 영우는 학교짱 노상규 패거리를 따라 기생집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혜주와 처음 마주친다. 그리고 얼마 뒤 집에 들어온 세입자를 보고 깜짝 놀란다. 혜주와 그 엄마였다. 그뿐 아니라 혜주는 영우와 상규가 있는 반으로 전학을 온다. 그렇게 영우, 혜주, 상규 세 사람의 인생은 복잡하게 얽혀버린다.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세수를 하는 영우와 그 옆에 서있는 혜주

외등 (Outdoor Lamp)


: 2005년 5월 29일 KBS 방영. 박범신 원작. 유갑렬 극본. 최지영 연출. 홍수현, 기태영, 정은찬, 서영희, 김동주, 임성언, 이상숙, 안석환, 이효정, 정상훈, 박형재 등 출연. 2006년 11월 04일 불가리아 플로브디프에서 열린 '골든 체스트상(GoldenChest International TV Festival)' 시상식에서 성인 대상 TV영화 부문 동상 수상.


지금까지 본 단막극 중에 가장 많이 다시 본 작품이다. 정확히 몇 번인지는 모르겠고 열 세 번은 넘게 봤을 것이다. KBS에서 처음 방영할 때 보고 완전히 반해버렸다. 그 뒤로 몇 년 간 명절 때나 연말 연초에 재방송을 해주었는데 그때마다 눈에 불을 켜고 본방사수를 했었다. 잘 짜여진 스토리와 아름다운 영상이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명작이었다. 

오래전에 인기 단막극을 모아 (영화제처럼) 극장에서 상영한 적이 있었다. 당시 기사를 찾아보니 행사 명칭이 [2011 단막극 페스티벌]이었다. '외등'이 폐막작이었는데 연출자와 주연 배우도 만날 수 있다기에 얼른 신청했었다. 극장(목동CGV)이 집에서 멀고 처음 가보는 곳이라 헤맸던 기억이 난다. 대형 화면으로 작품을 감상하고 드디어 만남의 시간. 진행자의 소개와 함께 기태영 배우와 최지영 PD가 행사장으로 들어왔는데 내 자리 근처를 지나가는 게 아닌가? 2미터 못 되는 거리에서 본 영우는 아주 멋있었다.



사실 두 분이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관람객에게 질문을 받았는데 아무도 손을 드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자신 있게 손을 들었다. 그때 기 배우가 가수 겸 배우 유진과 결혼한 지 얼마 안 됐던 때라 축하 인사를 했더니 허리 숙여 답인사를 해주었다. 그리고 최PD께 이런 저런 얘기를 했었다. 작품이 너무 좋고, 열 번 넘게 보았고, 피디님 드라마를 보고 싶은데 왜 연출을 안 하시냐 블라블라.... 답을 한참 해주셨는데 세월이 많이 지나서 자세한 워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연출을 다시 해보겠다고 말씀하신 건 잊지 않았다.

[2011년 당시 책임프로듀서(CP)로 활동중. 2012년에 홍수현 주연의 단막극 '또 한번의 웨딩' 연출. 그 뒤로 CP와 연출 병행. 2024년 KBS 일일드라마 '스캔들' 연출]

내가 질문하고 나니 그 뒤로 많은 분들이 손을 들었다. 나중엔 질문이 계속 이어져서 할 수 없이 끊었던 것 같다. 당시 리뷰를 찾아보니 홍수현 배우도 지방 촬영장에서 출발했는데 교통 사정이 안 좋아서 결국 참석 못했다는 슬픈 이야기가.... 그런데 이게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게 더 슬프다😭 행사 다녀와서 인터넷 커뮤니티 어딘가에 기록을 남겼었는데 찾을 수가 없다. 아무래도 지웠나 보다. 사진도 찍었었는데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아무튼 드라마에 반해서 원작 소설도 읽었는데 좀 다른 게 있었다. 역시나 읽은 지 너무 오래 되어서 자세히는 기억이 안 나고 노상규 캐릭터가 드라마보다 더 지독했던 것 같다. 혜주를 사랑하긴 하는데 집착 같은 방법 말고는 사랑할 줄 모르는 인간? 읽으면서 놀랐던 부분이 있었는데 뭐였나...😑

영우의 아버지는 빨갱이로 몰려 죽임을 당한 지식인. 상규는 부와 힘을 가진 매국노 집안의 후계자. 혜주의 엄마는 종군 위안부로 끌려갔다 살아남은 역사의 희생자. 설정만 봐도 이야기가 한 트럭은 나올 것 같지 않은가? 드라마는 시간이 짧다 보니 세 사람의 비극적인 관계에 집중했다. 설마 아직까지 안 보신 분이 있다면 유튜브에서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일단 한번 봐보세요 제발~

그림을 그리는 혜주와 그런 혜주를 보고 있는 영우


* 언제였나 재방송할 때 감독판을 틀어준 적이 있었다. 여러 버전에 대해 확실히 정리해놓은 리뷰 발견! 감사합니다~

* 이번에 서핑을 하다가 깜짝 놀랐다. 어느 분 리뷰에 내가 찍혀있는 사진이 있었다. 그러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오래전에 이미 그 사진을 본 것 같은 느낌이.... 이렇게 홀라당 잊어버리고 다시 놀란 게 너무 웃겼다. 

2024-08-21

순결한 순이 - KBS 드라마시티 (한여운 임주환 정수영)


KBS 드라마시티 '순결한 순이' 

: 2007. 06. 09 방영. 극본 이은주. 연출 강병택. 한여운(안미나), 임주환, 정수영, 이미지, 윤승원, 기연호, 하진 출연. 

 * 스포일러 주의!
캡처 순서는 드라마와 조금 다를 수 있음.
캡처 이미지 저작권자 KBS *


서울 부잣집에 식모로 취직한 순이.
고향에서부터 이름 모를 꽃을 친구처럼 데려왔다.




첫날부터 다정하게 잘 대해주는 주인집 아들 준수.
순이에게 쓰라고 내어준 방도 예쁘게 잘 꾸며져 있다.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 중 
'남 몰래 흘리는 눈물'을 준수와 함께 듣는 순이.

"사랑의 묘약을 함께 마신 사람들은 
영원히 함께, 삶과 죽음까지, 서로 사랑하게 된대"

순이가 타온 차를 마시고는 "사랑의 묘약이 들었나?" 플러팅을 하는 준수.




준수가 라디오를 주었다.
순이는 그에게 점점 빠져들고....




준수 모친이 부산에서 사업하는 남편을 보러 간 날, 
준수는 비에 젖은 순이를 보고 충동에 휩싸인다.




순이의 순결을 훔치는 준수.




사실 준수는 결혼까지 약속한 상대가 있었다.




준수가 결혼하는 것도 모자라 외국으로 떠난다는 말에 순이는 큰 충격을 받는다.




식모와 살림을 차린 아버지와 자신은 다르다고 선을 긋는 준수.
"너 따위랑 안 살아"




준수가 어떤 인간인지도 모르면서
옆집 식모 영자는 오매불망 준수만 부르짖는다.




눈빛이 달라진 순이.




순이는 대뜸 준수의 방에 들어가 애원한다.
"나도 데려가요"
이에 준수는 자기 좀 살려달라고 죽는 소리를 하고.




결혼을 앞두고 준수는 눈이 멀어버린다.
그 이유는 신과 순이만 안다.




아들의 결혼까지 엎어지자 쓰러져버린 준수 모친.
순이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준수의 부친은 순이에게 모든 것을 맡겨버렸다.
순이를 저주하던 준수는 새 식모를 구했으니 나가라고 한다.




새로 구했다는 식모는 옆집 영자였다.
결국 이 집을 떠나기로 한 순이.
준수는 너무나 조용하다.








순이는 자신이 준비한 '사랑의 묘약'을 마신다.




"잘 있어요, 내 사랑"


눈이 먼 순이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거리를 헤매는 순이 앞에 신문이 날아든다.
식모가 주인집 아들을 죽이고 자살했다는 기사가 실려있다.
눈이 먼 순이는 '사랑의 묘약' 음반을 끌어안은 채
어딘지 모를 곳으로 간다.


💘💘💘

1968년 주인을 독살한 식모의 얘기를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다시 보니 시작부터 끝까지 허튼 대사가 없다. 순이로 나온 한여운의 연기가 대단하다. 섬세한 연출도 돋보인다. 한 가지 문제라면, 순이를 갖고 논 준수가 천하의 개새끼로 보여야 하는데 임주환이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비극이 되어버린 순이의 삶. 과연 누가 순이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

유튜브에서 볼 수 있음. 강추!



Lzzy Cooper가 부른 Una Furtiva Lagrima



2024-07-29

그녀의 화분 NO.1 - MBC 베스트극장 (김선아 정찬 홍일권 김래원)


무역회사에서 전화 연결해주는 일을 하는 현아(김선아)는 본의 아니게 통화 내용을 듣게 된다. 그러다 보니 회사 사람들의 비밀이나 사생활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 현아가 짝사랑하는 총무부의 도훈(홍일권)은 쉬는 날 봉사 활동을 하고 있었다. 현아는 한껏 외모에 신경을 쓰고 그가 가는 청각장애인 학교를 찾아간다. 하지만 그곳 선생과 도훈의 다정한 모습을 보고 절망한다.


김선아가 정찬에게 기대고 있다
웨이브 캡처 / 저작권자 MBC


MBC 베스트극장 제323화 "그녀의 화분 No.1"


: 1998. 07. 31 방영. 윤성희 극본. 김윤철 연출. 김선아, 정찬, 홍일권, 김래원, 전유진, 김복희, 문회원, 차윤회, 이명숙, 최한호, 조향이, 손소영, 이경순 출연.


그래도 말이나 해보자는 심정으로 도훈에게 고백하지만 바로 거절 당한다. 선재(정찬)는 길에서 울고 있는 현아를 보게 된다.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그녀를 지켜보는 시선. 현아는 치한을 피해 자리를 옮기다 선재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 앉아버린다.

사실 두 사람은 청각장애인 학교에 갔던 날 버스에 나란히 앉았었다. 현아가 본 선재는 아이와 수화로 인사를 나누었고, 선재가 본 현아는 그날도 혼자 울고 있었다.

잔뜩 취한 현아는 속상한 마음을 선재에게 털어놓는다. 그가 청각장애인이라 자신의 말을 전혀 듣지 못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선재는 사실을 바로 밝히지 못하고 연기 아닌 연기를 하게 된다.

그 다음날부터 현아에게 매일 화분이 하나씩 배달된다. 보낸 사람 이름도 없고 100부터 거꾸로 카운트 되는 숫자 쪽지만 담겨 있는 미스터리한 화분.



2005년 최고 인기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을 연출한 김윤철 PD의 단막극이다. 처음 봤을 때 완전 감동 받아서 내 마음속 명작 리스트에 올려놓았던 작품인데 이십 여년 만에 다시 보니 흠........

선재 캐릭터가 이렇게 청승 맞게 느껴질 줄이야. 처음부터 현아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게 너무 미안한 건 알겠으나 자신을 위해 수화까지 배우는 사람이면 사라지려 할 게 아니고 더 잘해줘야지~

마지막 장면에서는 물음표가 생긴다. 대본을 찾아보니 선재가 침묵의 세계에 빠져있는 상태라고 하는데, 현아가 그에게 머리를 기댔을 때 그 역시 살짝 움직이기라도 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는 선재와 현아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과연 언제 나올까 거기에만 초점이 가있었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이 놀랍기만 했다. 그런데 이제 다 아는 상태로 다시 보니 선재의 모습이 불만스럽게 느껴진다. 엔딩만 놓고 보면 현아가 선재를 혼자 좋아하는 것처럼 보여서 말이다. 

다시 안 봤으면 마음 속에 애틋하게 남아 있었겠지만, 세월이 흘러 감상이 달라진 것을 확인해보는 것도 나쁘지 만은 않다. 한편으로는 재밌기도 하다. 드라마는 그대로인데 내가 변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연보라색과 노란색 란타나 꽃이 어우러져 있다
출처 픽사베이

* 란타나 꽃이 나온다. 꽃 색깔이 일곱 번 바뀌어 '칠변화'로 불리기도 한다고. 꽃말이 '나는 변하지 않는다'.

2024-06-22

만신 - 시네마틱 드라마 SF8 (이연희 이동휘 남명렬) 웨이브 추천


무려 96.3 퍼센트! 빅데이터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 이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단순히 운세를 넘어서 예언에 가까운 적중률을 보여준다. 이 운세 프로그램의 이름은 만신. '만신 의존증'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이용자들은 이 프로그램이 알려주는 대로 행동한다. 오늘 하루 조심하라는 운세가 나오면 몸을 사리느라 직장에 출근하지 않을 정도다. 만신을 맹신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사회는 혼란에 빠진다.


이연희와 이동휘가 휴대폰을 보며 미소짓는다
SF8 만신 / 웨이브 캡처

시네마틱 드라마 SF8 제4부 만신 


: 2020. .8.21 MBC 방영. 기획 DGK(한국영화감독조합)&MBC. 제작 DGK&수필름. 제공 WAVVE&MBC. 감독 노덕. 각본 한분외&노덕. 프로듀서 강가미. 이연희, 이동휘, 남명렬, 서현우, 윤경호, 박성연, 현봉식, 이연, 김한나, 이호원, 이명옥, 오민정, 박윤호, 김진옥, 최호진, 박세현(우정출연), 김수지(목소리만) 등 출연. 

주인공 토선호(이연희)는 만신을 만든 개발자 김인홍(서현우)을 찾으러 다닌다. 그가 만신 간증회에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지만 만나지 못한다. 대신 만신을 맹신하던 정가람(이동휘)을 알게 되고, 둘이 함께 그를 찾아간다. 김인홍은 만신을 다른 사람에게 넘긴 지 오래라며 현재 소유주를 추적할 수 있는 단서를 알려준다.



선호는 동생을 죽게 만든 것이 만신이라고 확신했다. 동생이 마지막으로 받은 운세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지만 동생의 휴대폰은 복구 되지 않았다. 그래서 만신 개발자를 찾아다닌 것인데, 휴대폰이 일부 복구 되었다는 연락이 온다. 그래서 알게 된 진실은 선호를 충격에 빠뜨린다.

선호와 가람은 현재의 만신을 만든 지함(남명렬)을 만나게 되고, 그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만신 업데이트를 단행한다. 성공하면 신과 같은 프로그램이 될 수 있고 실패하면 아예 사라질 수도 있다. 인공지능 만신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한다.


휴대폰에서 운세 앱을 삭제한다
SF8 만신 / 웨이브 캡처


줄거리를 자세히 쓰려다 꾹 참았다. 이런 작품이 다 있었다니! 운세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더 재미있게 본 것 같다. 알려주는 대로 족족 다 들어맞는 운세 앱이 있다면 이것을 과연 쓰지 않을 수가 있을까? 더구나 매일 매일 적중률 100%에 가까운 오늘의 운세를 알려준다면? 이것에 영향 받지 않을 자신이 없다.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고 하면 회사 출근보다 더한 것도 하지 않을 듯하다.

이 작품은 묻는다. 미래를 미리 알게 되는 것이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까, 아닐까. 글쎄...... 안 좋은 미래를 미리 알아서 대비할 수 있다면, 그래서 좋게 바뀐다면 아는 게 나을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드는 의문은, 미래를 미리 알고 다른 선택을 하는 것까지 적용된 운세가 제공된다면? 그렇다면 미래에 대한 조치를 취한 것이 오히려 안 좋게 작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계속하다 보면 미래는 모르는 게 속 편하다는 쪽으로 결론이 내려진다.

SF8은 여덟 명의 감독이 SF 소재로 한 편씩 연출한 단막극이다. 제목 그대로 영화 같은 드라마이다. 런닝타임도 50분 조금 넘으니 시간 부담이 적다. 추천~


* '노덕'이라는 감독 이름을 보고 남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고정관념을 버려야겠다.

* 극중에 가미제과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아무래도 프로듀서의 이름에서 따온 듯.

* 같은 제목의 다큐 영화가 있다. 무속인 故 김금화 만신의 삶을 조명했다. 

* 유전자 검사 한번으로 내 평생의 짝을 찾는 영국 드라마 '더 원'이 생각났다. 리뷰 보기

2024-05-07

제목을 모르겠는 KBS 특집 드라마 - 조수 간만의 차이 연구한 아이들

 
어렸을 때 본 특집극인데 제목도 주연 배우들 이름도 모르겠다. 오래전에 검색해봤을 때에는 분명 이 드라마 정보를 찾았었는데 지금 다시 찾아보니 나오는 게 없다. 그래도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작품이라 뭐라도 적어놓기로 한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어느 섬의 선생님과 초등학생 두 명이 매일 밀물 썰물 발생 시간을 관찰한다. 오랜 기간에 걸쳐 알아낸 사실을 무슨 과학 관련 대회에 낸다. 이들의 연구는 큰 주목을 받는다. 그리고 가장 큰 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한다.

아마도 초등학생 아니면 중학생 때 이 드라마를 보았는데, 주인공들이 나와 비슷한 나잇대이고 실제 있었던 이야기라 더 크게 감동을 받았던 것 같다. 어린아이 둘이 매일 밤인지 새벽인지 바다만 바라보고 있던 게 주로 생각난다. 비가 와도 날씨가 안 좋아도 예외는 없었다. 하루는 아이들이 늦잠을 잤던가 시간을 놓쳐서 선생님에게 크게 혼나기도 한다. 그렇게 고생을 거듭하다 가장 큰 상에서 이들이 불렸을 때 감동이 팍!

구글링을 해보니 고맙게도 관련 기사가 나온다. 1982년 전국과학전람회에서 작은 섬의 어린이들이 대통령상 수상. 초등학생이 이 대회에서 대상을 탄 것은 처음 있는 일. 

어느 기사는 몇 개월 동안 관측했다 하고 또 어느 기사는 1년에 걸쳐 했다 하고 어느 쪽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최소 몇 달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바다에 매달려 있던 것은 분명한데, 요즘 같았으면 이런 연구가 과연 가능했을까 싶다. 생각해보니 동네 어른이 화를 내는 장면이 있었던 것 같고. 21세기에 이랬다간 아동 학대 얘기가 나오지 않았을지...😓 이 연구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어린 학생들이 감당하기엔 정말 힘들었을 게 분명해서 한마디 붙여보았다. 나이를 먹으니 감상이 달라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어린이 두 명이 밀물 썰물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출처 강진일보

2024-02-11

나비 - MBC 베스트극장 (류수영 조윤희)

루게릭병
: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ALS/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야구선수 루 게릭이 투병하면서 알려지게 된 병. 알 수 없는 이유로 운동신경 세포가 손상되면서 근육에 힘이 빠져 서서히 움직일 수 없게 된다. 말기에는 음식물을 삼키고 숨을 쉬는 것도 어려워진다.


두 남녀가 침묵 속에 앉아있다
MBC 베스트극장 '나비' 조윤희, 류수영

MBC 베스트극장 제567화 나비


: 2004.02.06 방영. 드라마 '다모' 팬픽-김인숙 원작. 손은혜 극본. 이재규 연출. 류수영, 조윤희, 김정학, 유지인, 김갑수, 박준희, 서대한, 김소영 출연.

🦋 스포일러 심합니다 주의하세요 🦋

지원은 자신이 루게릭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의사이자 오빠인 현수는 지원에게 더욱 신경을 쓴다. 사실 두 사람은 친남매는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현수의 아빠가 여자아이를 집에 데려왔다. 그날부터 아이는 현수의 동생이 되었다.

집안에 먹구름이 낀 것은 지원이 누구의 자식인지 밝혀지면서부터다. 지원은 현수 아빠가 과거에 사랑했던 여자의 딸이었던 것. 남편 친구의 딸인 줄로만 알았던 현수 엄마는 지원을 집에서 내보낸다.



졸지에 버림받은 지원은 음악에 더욱 매달린다. 그리고 현수의 친구와 결혼까지 한다. 현수는 애인이 있었지만 마음을 주지 못하고 결혼을 계속 미룬다.

지원은 다시 혼자가 되고, 현수는 누구보다 지원을 챙겨주며 곁에 있으려 한다. 엄마에게서 현수를 놓아달라는 말을 들었던 지원은 현수를 밀어낸다. 하지만 현수는 더 이상 마음을 접지 못하고 꾹꾹 눌러왔던 진심을 토해낸다. 가족으로써가 아닌 지원을 사랑한다고......


MBC 드라마 '다모'는 시청률이 높지는 않았지만 숱한 폐인을 만들어낸 저주받은 걸작이다. 팬픽도 많이 나왔었는데 그 중 한 작품을 다모 연출자인 이재규 PD가 직접 단막극으로 만든 것이 '나비'이다. 결말만 보아도 지독하게 비극이다. 다모에 이어 그 파생작까지 비극으로 만들다니 너무했다 싶기도 하다.

사고난 차에서 피 묻은 주인공의 손
MBC 베스트극장 '나비' Sad Ending

피가 섞이지 않은 남매의 러브스토리는 이제는 너무 흔해져서 별 감흥도 없지만, 유독 이 작품이 기억에 남은 건 엔딩이 충격적이어서다. 서로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으나 바로 얼마 뒤에 쾅. 현수가 지원의 손을 잡으려고 손을 뻗지만 못 잡고 힘이 빠진다. 햐, 감독님 너무하네. 그들에게 남은 시간은 더 이상 없어 보이는데 손이라도 잡게 해주시지. 철저히 가혹해서 더 기억에 남은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엔딩에 깔리는 노래가 너무 처연해서 찾아보니 이런 가사가 있다. But let them say whatever they will I love my love with a free good will. 그들이 뭐라 하든 나는 내 사랑을 계속할 거예요. 가수와 곡 제목은 Meav의 One I Love.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어디에선가 힘든 사랑을 하고 있는 분들을 응원해본다(단, 불륜 빼고). 사랑이 대체 뭐길래 이렇게 인생 전부를 걸기도 하는 것일까? 모른다.... 모르겠어.......



* 동생 먹인다고 열심히 요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류수영의 셰프 기질이 엿보이는 듯하다.

류수영이 요리를 하고 있는 드라마 장면
MBC 베스트극장 '나비' 류수영의 요리 장면



* 조윤희가 주연한 영화 '동거, 동락'을 좋아했다. 개봉 당시 김동욱의 팬이어서 dvd까지 산 것인데, 조윤희의 연기가 좋았다. 지금은 본지 너무 오래 되어 스토리도 생각 안 날 지경이지만. 찾아보니 설정이 이 단막극과 통하는 점이 있다. 

* MBC 드라마 '환생-NEXT'에서 류수영이 몽골 장군 카사르로 나온 고려 편만 보았었는데, 고려 기생 자운영(박예진)과의 사랑 이야기가 너무 애절해서 잊혀지지가 않는다. 방영 당시 이 커플에 대한 인터넷 반응이 아주 뜨거웠었다. 


2023-12-05

가면의 꿈 - MBC 베스트극장 (남성훈 윤예희 한석규)


대기업 이사 탁명식(남성훈)은 가발과 콧수염으로 변장을 하고 거리를 돌아다닌다. 궁극적으로 가는 곳은 어느 포장마차. 젊은 여자 혜란(남나경)이 꾸리는 곳으로 명식은 그녀의 어린 동생들도 잘 챙겨주고 있다. 하루는 포장마차에서 혜란과 어떤 남자가 실랑이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출근길에 그 남자가 같은 회사 직원 양창수(한석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주인공이 얼굴에 가면을 대 보고 있다
MBC 베스트극장 '가면의 꿈' 남성훈

MBC 베스트극장 117회 가면의 꿈


: 1993.12.24 방영. 원작 이청준. 최순식 극본. 최용원 연출. 남성훈 윤예희 한석규 장인환
허윤정 한태일 정태섭 남나경 장송미 김경애 강인덕 정한헌 백승철 배인혜 최범호 최종환 
홍보경(아역) 홍상진(아역) 출연.


명식이 변장에 취미를 갖게 된 건 부부 동반 가면무도회에 다녀온 뒤부터 였다. 부인(윤예희)은 기묘한 취미에 빠진 남편이 마음에 걸리면서도 내버려둔다. 남편이 밤에 나갔다 온 날에는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침대에서도 뜨거워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명식은 포장마차를 찾아갔다가 혜란이 한강에 투신해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는 창수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한다. 고학생으로 해외개발팀 수석 연구원이 된 대단한 인물. 성실하고 유능한 직원. 혜란과 깊은 사이면서 태산그룹 외동딸과 사귀는 사이. 

창수는 경찰(강인덕)에게 자신은 결백하다며 포장마차에서 본 콧수염 남자가 수상하다고 말한다. 혜란이 자살했다는 것을 믿지 않는 명식은 사건 현장을 한참 파헤치다 증거가 될만한 것을 찾아낸다. 그리고 해고된 것을 항의하는 창수에게 일요일날 회사로 찾아오라고 말한다.


일요일이 되고, 명식은 변장 도구를 챙겨서 회사로 간다. 부인은 친구(허윤정)와 함께 그의 뒤를 밟는다. 명식은 변장한 모습으로 창수를 맞이한다. 고학생으로 대기업에 들어가 사장 딸과 결혼한 그였기에 창수의 심리를 꿰뚫어 본다. 창수는 명식의 추리를 듣다가 범행을 인정하는 말을 내뱉는다. 그때 대기하고 있던 경찰이 모습을 드러내고 창수가 끌려 나간다.

이 단막극의 압권은 바로 이 부분이다. 창수는 호락호락 물러가지 않고 엄청난 사실을 폭로한다. 명식이야말로 사장 딸과 결혼하기 위해 혜란의 언니를 버렸다는 것. 혜란의 언니는 명식의 자식을 낳았다는 것. 혜란이 죽은 언니를 대신해 조카를 동생으로 키우고 있었다는 것. 명식의 가면이 무참하게 벗겨지는 순간이다. 또한 그가 왜 새로운 가면 속에서 편안함을 느꼈는지 바로 이해가 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명식은 창수의 가면을 벗겨냈지만 그것은 곧 명식의 가면이었다. 

🎭사🎭족🎭


* 처음엔 명식이 포장마차 주인에게 흑심을 품었나 했는데 실은 어렵게 사는 옛 애인의 가족을 챙겨주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동생들 중 한 명이 자기 자식인 것은 몰랐다. 마지막 장면에는 그 애들을 데려와 함께 사는 듯한 암시가 담겨 있다. 솔직히 부인이 보살&천사 같다는 생각만 든다.😓

* 드라마를 보고 나서 원작 소설 줄거리를 찾아보고 깜짝 놀랐다. 주인공의 성장 배경과 변장을 즐긴다는 설정 말고는 같은 게 없었다. 소설 속 주인공의 직업은 판사이고 결말도 완전히 다르다. 소설을 모티브로 새로 지어낸 수준이다. 이 베스트극장을 보고 소설 읽은 척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명심하세요.

왼쪽부터 한석규 윤예희 허윤정
MBC 베스트극장 '가면의 꿈' 한석규/윤예희/허윤정

* 한석규 배우의 목소리와 발음은 그야말로 독보적이다. 좋은 목소리에 발음이 또렷하고 강약이 분명해서 듣고 있으면 귀가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 윤예희 배우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 친구로 허윤정 배우가 나와서 깜짝 놀랐다. 

* 남성훈-윤예희-한석규 세 배우의 조합이 신기하다. 


2023-12-03

골패 - KBS TV문학관 (백수련 반효정 조용원 남일우)


대학생 은영(조용원)의 집에 할머니(백수련)가 돌아온다. 할머니는 몇 년 동안 미국에 있는 큰딸(김진애) 집에서 지냈다. 원래는 한국의 장남(남일우) 집에서 살았었는데, 미국 영주권을 받아 가족을 초청해달라는 며느리(반효정)의 설득에 마지못해 간 것이었다. 며느리는 시아버지의 제사를 잘 챙기겠다고 약속해놓고는 돌아온 할머니[시어머니]에게는 자신의 종교 때문에 지낼 수 없었다며 딴소리를 한다. 

KBS TV문학관 골패에 나온 백수련과 조용원
KBS TV문학관 '골패' 백수련과 조용원

KBS TV문학관 제168화 골패


: 1985. 02.09 방영. 정건영 원작. 박병우 극본. 박진수 연출. 백수련, 반효정, 조용원, 남일우, 박혜숙, 김진애, 손창민, 곽경환, 나정옥, 박정웅, 이수연, 김영배, 김주호 출연.




한 달 간 와있기로 한 할머니는 은영의 방에서 지낸다. 할머니는 분신 같은 골패를 꺼내 짝을 맞추며 혼자 웃고 떠든다. 은영의 눈에는 그 모습이 마치 귀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 마냥 기괴해 보인다. 은영은 할머니와 가까이 지내면서 할아버지가 얼마나 처참하게 돌아가셨는지 알게 된다.

할머니는 노인정 사람들을 불러다 잔치를 벌이며 미국 생활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자랑을 늘어놓는다. 노인들은 할머니가 주는 외국 과자와 초콜릿을 먹으며 들떠하지만 사실 이것들은 한국의 동묘시장에서 산 것이었다. 그런 연유로 누군가가 '진짜 미제구만' 한 소리에 '그럼 가짜냐'며 몹시 발끈한다. 집에 돌아와서는 노인들 욕을 마구 늘어놓다가 깡소주를 들이붓고는 돌연 며느리에게 소리친다. 미국에서 사람 대접은커녕 가정부로 부려 먹었다고. 며느리를 큰딸로 착각한 할머니는 그야말로 미친 사람처럼 울분을 쏟아낸다. 며느리는 은영에게 (아버지한테) 절대 말하지 말라고 시킨다.



전보를 몇 번 씩 보내도 반응이 없었던 작은딸은 할머니가 미국으로 돌아가기 직전에 겨우 찾아온다. 작은딸은 오빠 부부와 엄마에게 감정이 많았다. 자신이 번 돈으로 오빠의 대학 학비까지 보태줬지만 오빠 부부는 할머니 재산을 다 가져버렸다. 할머니는 너희들이 원하면 안 가겠다며 지옥 같은 미국 생활에 대해 털어놓지만 할머니를 붙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은영은 풀이 죽어있는 할머니에게 골패를 가르쳐 달라고 한다. 할머니는 손녀에게 골패를 주겠다고 한다. 은영은 할머니에게 골패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기에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유산으로 물려받겠다고 한다.

출국하는 날, 할머니는 갖고 있던 보석 중 유일하게 진짜인 목걸이를 며느리에게 걸어준다. 출발 직전 며느리가 달려 나오지만 할머니를 붙잡는 게 아니라 할머니에게 이름표를 걸어주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할머니는 떠나고, 은영은 방을 둘러보며 할머니의 빈 자리를 느끼다가 책상 위에 골패가 남겨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며칠 후, 전화 한 통이 걸려 오는데.......



🎲 🎲 🎲

아주 어렸을 때 보았으나 몇몇 장면들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특히 할머니를 박대하던 모습들. 마침 KBS 유튜브 채널에 올려져 있어서 다시 보니 작은 딸의 냉담함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며느리가 악역을 도맡고 있지만, 그렇다고 부인의 행동에 이렇다 할 행동도 취하지 않는 장남이 더 문제라는 생각도 든다. 짧은 내용에 세대 갈등, 고부(시어머니와 며느리) 갈등, 종교 갈등, 가족 간의 갈등이 한데 뒤섞여 담겨 있다. 그뿐만 아니라 1980년대에 불었던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허상 꼬집기까지. 만약 KBS UHD TV문학관 시리즈가 또 기획 된다면 이 작품도 꼭 넣어주시면 좋겠다.


손창민과 조용원이 길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KBS TV문학관 '골패' 손창민과 조용원

* 은영의 친구로 나오는 미남 배우는 손창민! 
* 할머니로 나온 백수련 배우는 며느리와 아들로 나온 반효정, 이일우 배우보다 젊다. 
* 장남 가족이 사는 저택은 TV문학관 젊은 느티나무에 나온 곳과 같아 보인다.
* 후반에 롱테이크(long take) 연출이 인상적이다.



2023-11-30

우리나라 배우의 호칭에 대해


추억의 한국 드라마 리뷰를 쓸 때는 출연 배우의 이름 뒤에 '배우'를 붙였다.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이름을 알면 그것으로 부르면 되는데, 거의 기억이 나지 않으니 배우의 이름을 쓴 경우가 많았다. 또 연세가 많거나 돌아가신 분은 -님으로 부르기도 했다.

이렇게 계속 의식해서 쓰다 보니 피곤함이 느껴졌다. 배우 분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 이상, 등장인물로만 대할 땐 이름만 쓰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는 필요할 때만 '배우'를 붙일 것이다. 존칭이 필요할 땐 -님을 쓸 것이다. 글을 쓰다 보면 또 갈팡질팡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22.10.22일 예전 블로그에 썼던 글)

2023-11-04

사랑한다면 그녀처럼 - MBC 베스트극장 (남주희 손현주 임호)


29년을 살아오면서 연애 한번 못한 주인공 남희. 중병에 걸리자 지금까지 못해본 것들을 해보기로 결심한다. 제일 먼저 그녀가 한 일은 3개월 동안 애인 노릇 해줄 남자를 구한 것.


남희와 성준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MBC 베스트극장 '사랑한다면 그녀처럼' 남주희 손현주


MBC 베스트극장 제288회 '사랑한다면 그녀처럼'


: 1997. 10.17 방영. 구선경 극본. 오경훈 연출. 남주희, 손현주, 임호, 강성연, 김기현, 이재훈, 이은철 등 출연.

방영 당시 재방송을 본 것 같은데 그마저도 중간부터 보았었다. (지금이야 웨이브에서 얼마든지 베스트극장을 볼 수 있지만) 다시 볼 방법이 없었던 시절엔 한번 보고 싶어지면 어찌나 안달이 나던지 유독 이 화가 그랬었다. 근 25년 만에 다시 보니 이럴 수가. 남희가 너무 불쌍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드라마 속 그녀는 누구보다 결단력 있고 강단 있는 캐릭터였다. 만약 다시 보지 않았다면 남희를 그저 바보 같고 가련한 여자로만 계속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 스포일러 주의하세요 =====



진상들을 견디며 사는 은행원 남희(남주희)에게 그나마 낙이 있다면 짝사랑하는 남자 성준(손현주)을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룸메이트의 애인이다. 속물 같은 친구는 양다리를 걸치고, 위암 선고를 받은 남희는 성준에게 마음이나 고백해보려 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친구가 나타나 그를 다시 차지하고, 체념한 남희는 외모가 괜찮은 기훈(임호)을 고용해 가상 연애를 시작한다.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며 유흥을 즐기던 기훈은 처음엔 봉 잡았다고 좋아하지만 점점 남희의 순수함에 끌리게 된다. 그러던 중 남희는 진짜 솔로가 된 성준과 가까워지게 되는데.......

이 극에서 무엇보다 눈에 띈 것은 '녹색'이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좋은 감정의 신호를 '그린 라이트(green light)'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이 말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은 2013년에 방영한 연애 상담 프로그램 '마녀사냥'의 영향이라고 한다(위키백과). 뭐 그렇다고 2013년 이전엔 녹색에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현재 쓰이는 '그린라이트'와 상통하는 의미로 녹색이 극에 등장하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남희와 기훈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MBC 베스트극장 사랑한다면 그녀처럼. 남주희 임호

남희가 성준에게 건네는 머그컵에 녹색이 들어있다. 성준이 좋아하는 카페의 이름은 그린 위치. 남희와 함께 쓰는 성준의 우산 색깔도 녹색이다. 남희에게 진심이 된 기훈이 입고 있는 재킷의 색깔도 녹색. 이쯤 되면 기훈의 스포츠카와 남희가 그를 처음 만난 날 입은 옷의 색깔이 붉은색인 게 우연은 아닌 것 같다.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 번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도 하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 양희은의 노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중에서

남희의 연애 버킷 리스트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도 있었다. 그녀가 이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준 것은 정작 사랑 따위에 질색하던 기훈이었다. 사랑을 포기한 남희가 스스로를 동정하듯 부르는 노래에서는 쓸쓸함이 짙게 묻어난다. 남희가 '잊지 못할 사람'을 생각하며 노래하는 동안 기훈은 '잊지 못할 이별'을 하고 성준은 '잊지 못할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는 장면. 이 화에서 가장 압권이다.

리뷰를 쓰다 보니 남희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좋아한 것은 기훈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남희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저 행복해졌기만을 바라 본다.


* 기존 리뷰 중에 여주인공이 죽는다는 식으로 써놓은 게 있었다. 드라마를 보긴 한 걸까?
* 자신이 불치병에 걸린 줄 알고 하고싶은 거 다 해보다 인생이 좋게 풀리는 내용의 영화 '라스트 홀리데이'도 추천해본다.



한 잎의 여자 - MBC 베스트극장 (김현정 천정명 이영호)


베스트셀러극장이 베스트극장으로 바뀌어도 MBC 단막극의 명성은 계속 이어졌다. 베스트셀러극장은 반드시 '원작'이 있어야 했다는데 베스트극장에선 그 굴레를 벗은 것이다. 단막극은 신인들의 등용문이자 무대였다. MBC가 드라마 왕국으로 군림할 때 베스트극장도 성했던 게 우연만은 아닐 텐데. 들인 비용에 비해 시청률이 낮으니(요즘말로 가성비가 Hell) 현재 공중파 TV 채널에서는 특집극을 제외하고 단막극을 찾아볼 수가 없다.

옥희의 머리에 붙어있는 나뭇잎을 떼어주는 손
MBC 베스트극장 한 잎의 여자. 웨이브 캡처

MBC 베스트극장 제486회 한 잎의 여자


: 2002. 4.12 방영. 고동선 연출. 신경희 극본. 김연희 윤색. 김현정, 천정명, 나문희, 이영호, 양택조, 이세은 출연.

'한 잎의 여자'하면 오규원의 시가 먼저 떠오른다. 시를 읽어보면 왠지 연약하고 순수한 여자가 연상되는데 화자의 시선에선 슬픔이 가득 느껴진다. 이해가 안 가는 표현도 있지만 시인은 고인이 되신지 오래라 물어볼 수가 없다. 아무튼 같은 제목의 베스트극장 주인공 옥희는 시 속의 여자와 닮은 느낌이다.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 스포일러 심합니다. 주의하세요 ===

옥희는 스물두살이지만 정신 연령은 열 살 정도에 머물러 있다. 엄마가 기차선로에서 놀고 있던 옥희를 밀쳐내고 그 자리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그 트라우마로 옥희는 어른이 되지 못했다. 다행히 좀 사는 동네 아주머니가 옥희를 거둬 키워줬지만 옥희가 좋아하는 그 집 아들 성재는 옥희의 몸만을 탐할 뿐이다.

어느 날 동네에 봉수가 나타난다. 가겟집 아들인데 성재와 다투고 학교에서 쫓겨났다. 그 길로 고향을 떠나 조폭 막내 노릇을 하다가 상대 조직의 보스를 찌르고 집으로 도망 온 것이다. 오랜만에 보는 옥희가 그의 상처에 관심을 가져준다. 계산할 줄 모르고 천진난만한 옥희가 자꾸 그의 눈에 들어와 밟힌다.


봉수가 옥희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MBC 베스트극장 한 잎의 여자. 웨이브 캡처

봉수는 자신을 만나러 온 조폭 동료가 옥희를 끌고 가자 필사적으로 따라가 구해낸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된다. 옥희의 오빠는 성재에서 봉수로 바뀐다. 봉수는 옥희를 지켜주고만 싶다. 하지만 이들을 둘러싼 현실은 가혹하기 그지없다. 옥희는 자신이 아이를 가진 것도 모른다. 봉수는 자신이 저지른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약속된 돈을 받고 상대 조직의 보스를 다시 죽이려 하다가 쫓기게 된 봉수는 옥희가 보고 싶어 하는 바다로 함께 도망을 가려 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봉수를 쓰러뜨린 것은......




사실 20년 전에 본 기억만으로 리뷰를 쓰려고 했었다(여기는 드라마 기억 저장소니까). 한데 쓸만한 이미지가 없어서 캡쳐도 할 겸 다시 보다가 내 기억과 다른 게 많아서 깜짝 놀랐다. 옥희를 키워준 아주머니로 나온 배우가 김영옥 님이 아니라 나문희 님이었다. 마지막 장면도 옥희가 오빠를 부르면서 어딘가를 헤매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정작 극에서는 옥희가 기차 플랫폼에 쭈그려 앉아 숫자를 세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다르게 기억할 수가 있을까?


죽어가는 봉수와 봉수를 기다리는 옥희
MBC 베스트극장 한 잎의 여자. 웨이브 캡처

가장 깼던(?) 부분은 죽었다고만 생각한 봉수가 부감으로 잡은 장면에서 움직인 것이다. 아, 여운 바사삭! 그래도 얻은 게 있다면, 지금까지 옥희가 너~어무 불쌍했었는데 봉수가 살았을 수도 있으니 이 비극적인 커플에게 희망이 생겼다는 것이다. 다시 보아서 뭔가가 사라졌지만 또 뭔가가 생겼다. 쌤쌤(same same). (아직 안 보신 분께는 강력 추천! MBC 베스트극장은 웨이브에서 편하게 볼 수 있습니다)


옥희가 거울을 들여다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MBC 베스트극장 한 잎의 여자. 웨이브 캡처

실제로도 영혼이 맑아보이는 김현정 배우의 근황을 찾아보니 화가로 활동 중이었다. WOW! 천정명 배우는 2022년 6월에 주짓수 최고 레벨인 블랙 벨트를 받았다고 한다. WOW! 두 배우가 극에서 얼마나 풋풋한지 젊음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아역배우 박은빈-이재응-이세영
MBC 베스트극장 한 잎의 여자. 웨이브 캡처/다음이미지

* 박은빈 배우가 옥희의 아역으로 나온다. 깜놀! 가게에서 과자 훔치는 아이가 있었는데 얼굴을 보니 아역 배우 시절 연기 잘하기로 이름났던 이재응이다. 이세영 배우와 함께 나온 KBS TV문학관 '소나기'에서 소년 역을 했었다.

* 나쁜 오빠 성재 역의 이영호 배우가 쓴 '한 잎의 여자' 촬영 일기가 있다.
https://www.imbc.com/broad/tv/drama/best/best_note/1315669_2629.html

* 고동선 PD의 인터뷰를 보니 자신이 연출한 단막극 중에서 '한 잎의 여자'를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2023-11-03

나나, J를 만나다 - MBC 베스트극장 (신지수 정찬)


열일곱 살의 가출 소녀 나나와 서른 살의 부랑자 J(제이).

나나는 성인 행세를 하며 조건만남으로 돈을 벌고 있었다. J도 그렇게 만나게 되었지만, 그는 지금까지 상대했던 놈들과는 다르게 나나가 미성년자인 것을 알고는 거절한다. 영양실조로 쓰러진 나나를 차마 외면하지 못한 J는 보호자처럼 나나를 계속 챙겨주게 되고. 나나는 찔러보는 심정으로 임신 중절 수술비를 빌려달라고 하는데 J가 정말 돈을 마련해준다.


제이가 나나를 위로하고 있다
MBC 베스트극장 나나 J를 만나다. 웨이브 캡처

MBC 베스트극장 제526회 나나, J를 만나다


: 2003. 3. 14 방영. 신현창 연출. 박정화 극본. 정찬, 신지수, 김용희, 구혜령 출연.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나나가 병원에 같이 가 달라는 부탁까지 하자 J는 내가 아이 아빠냐며 성질을 부린다. 그래놓고는 수술이 끝날 때까지 나나를 기다린 것도 모자라 자취방에 데려와 미역국을 끓여준다. 오랜만에 받아보는 인간적인 대접에 나나는 펑펑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점점 마음을 열게 되는데......

당시 방영이 끝나자마자 MBC 베스트극장 시청자 게시판을 들여다보았는데 그야말로 난리가 났었다. 두 사람이 이루어지는 2탄을 꼭 만들어 달라고 요청이 줄을 이었다. 나도 같은 의견을 보탰었다. 세월이 흘러 두 사람이 재회하는 장면을 상상하며 스토리를 지어보기도 했다. 그 어떤 화보다 여운이 정말 오래갔었다.

나나가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가 뒤를 돌아본다
MBC 베스트극장 나나 J를 만나다. 웨이브 캡처

한데 근 20년 만에 다시 보니 예전과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나기를 그렇게 바랐었는데, 지금은 두 사람의 차이가 더 부각되어 보인다고 할까? 13년이나 되는 나이 차이도 그렇고, 제법 사는 집 딸인 '찬주(나나)'와 새 삶을 살기 위해 정처 없이 떠난 '준(J)' 사이에 예상되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괜히 상상이 된다. (다시 보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텐데...)

만약 소원대로 2탄이 나왔었다면 어땠을까? 이렇게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드라마로 남을 수 있었을까? 희망 없던 두 사람이 만나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는, 쌍방 구원 서사물 중에서는 강력하게 추천할만한 작품인데 결말이 확실히 지어졌었다면 과연...?

- 추억의 드라마를 다시 보고 감상이 변하는 걸 느끼는 게 그다지 좋지가 않다. 생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옛 감상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이별의 왈츠 - MBC 베스트극장 (우희진 지진희)


야구를 그만두고 택시기사를 하고 있는 신기태. 어느 날 과거에 잠시 만났던 구민정을 승객으로 맞이하고 반가워한다. 하지만 구민정의 표정은 좋지가 않고. 급기야 그녀는 기태의 아이를 낳았다고 폭탄선언을 하는데...!

택시기사 지진희와 승객 우희진
MBC 베스트극장 이별의 왈츠. 지진희, 우희진. MBC 공식홈


MBC 베스트극장 542회 이별의 왈츠


: 2003. 07. 11 방영. 이정선 극본. 신현창 연출. 우희진, 지진희, 남상훈, 김철기, 임승대, 이영희 출연.



이 화도 정말 재밌게 봤었는데 제목을 기억 못 하고 있었다. 그런데 찾고 보니 제목이 왜 '이별의 왈츠'인지 모르겠다. 짧게 만났다가 흐지부지 관계가 끊겨버린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얘기니까 왈츠를 긍정적인 의미로 보면 되겠지만, 그럼에도 제목과 내용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만 든다. 이별의 왈츠라고 하면 왠지 헤어지는 일만 남은 연인이 떠오른다고 할까?

------ 스포일러 주의 ------

아무튼 20년 만에 다시 보고 나니 처음 봤을 때와는 감상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또다시 느꼈다.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숨긴 채 결혼하려는 구민정을 보니 이거 완전 사기 결혼이잖아~ 소리만 나온다. 아무리 아이를 친부한테 맡긴다 해도 직접 낳은 아이가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데 이걸 배우자 될 사람에게 밝히지도 않고 결혼이라니 Oh No~~~

그런 구민정의 심리를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만약 이런 일을 겪는다면? 이건 무조건 결별이다. 믿음 없는 사람과 어떻게 평생을 같이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구민정이 자기 자신만 아는 캐릭터는 아니지만(그랬다면 인생의 걸림돌이 될 아이를 어떻게든 안 낳았을 듯), 신기태가 워낙 바보같이 착한 캐릭터이다 보니 구민정이 더 이기적으로 보이긴 하다. 결국 구민정의 마음을 돌리게 만드는 것은 신기태의 사려 깊은 마음씨. 정혼자가 그녀의 아이를 자기 자식처럼 키우겠다고 했음에도 구민정은 조건을 쫓던 자신을 벗어던지고 신기태에게로 간다. Happy Ending~

지진희,우희진,남상훈
MBC 베스트극장 이별의 왈츠. 지진희, 우희진, 남상훈. 웨이브 캡처

부드러운 미소가 매력인 지진희와 조각 같은 외모의 우희진, 너무나 귀여운 남상훈 아기까지.. 내용도 내용이지만 보는 눈이 즐거운 작품이었다. 아기는 이제 20대 청년이 되었겠구나. 세월 참.

* 비슷한 설정으로 SBS 드라마 '온니 유'가 있다. 조현재, 한채영이 아주 잘 어울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