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대부(오현경)의 집에 느닷없이 오달(김상순)이 찾아온다. 대부는 그가 누구인지 기억도 못한다. 오달은 국민학교 동창 사이라며 어렸을 적 얘기를 늘어놓는다. 몇 십 년 만에 만난 두 사람은 옛날로 돌아간다. 하지만 미국물까지 먹은 대부와 농사만 짓고 산 오달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오달의 가출이 길어지면서 두 사람은 사사건건 부딪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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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경, 김상순 / 웨이브 캡처 |
MBC 베스트극장 제 21회 '막차 탄 동기동창'
: 1991.12.08 방영. 이근삼 원작. 유호 극본. 김승수 연출. 최종수 기획. 송병준 작곡. 오현경, 김상순, 배연정(옆집 무당), 김기현(이사장), 나영진(판사), 이성용/한석규(법정 방청객), 오세준(?).
이 단막극은 1991년 화제가 된 연극을 드라마로 만든 것이다. 나는 당시 이 연극을 직접 보았었다. 고 이어령 님이 문화부 장관이었던 시절 '문화가족'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었는데 그 덕분에 수준 높은 작품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솔직히 내용은 거의 생각이 안 나고 두 남자가 관객을 향해 앉아서 말을 많이 했던 것과 재미있었다는 감상만 남아있다. 사실 이 연극이 특별하게 기억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당시 내 앞줄에 앉았던 두 사람이 서로 얼굴을 가까이 한 채 쉴 새 없이 속닥거렸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들리지 않았으나 웃음 섞인 목소리로 계속 수다를 떠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해서 조명이 켜지자마자 얼굴을 보았는데 진짜 깜짝 놀랐다. 후다닥 자리를 뜨는 여자는 너무 너무 미인이었다. 분명 연예인인데 누구인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미모에 놀라 머리가 마비됨]
옆자리 남자는 인기 스타 배우였다. 그는 곧 관객들에게 둘러싸였다. 사인(sign)을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싸인을 해주었다. 갖고 있던 종이가 연극 초대장 뿐이어서 거기에 싸인을 받았던 거 같은데, 객석에는 종이를 받칠 만한 곳이 없어서 그가 자신의 허벅지를 받침대처럼 썼다. 함께 보러 갔던 가족이 뭘 물어봤던가 무슨 말을 했었는데 대꾸도 잘 해주었다. 그는 매니저로 보이는 일행이 재촉해도 원하는 모두에게 싸인을 해주고 자리를 떠났다.
연극 내내 눈에 쌍심지를 켰던 나는 그의 매너에 반해 팬이 되었다. 그 여자 연예인은 누구인지 뒤늦게 깨달았다. 아마도 당시에 인터넷이 있었다면 바로 목격담이 퍼졌을 것이다. 그 일이 있고 오래지 않아 당시 애청하던 라디오 프로에 그 남자 배우가 나왔다. 청취자와 전화 연결을 한다기에 열나게 신청을 해서 그와 인사까지 나누었는데, 내가 연극 얘기를 꺼내자 생방송에 침묵이 흘렀다. 그러더니 디제이 정원관(소방차 멤버)이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만약 그때 내가 여자 연예인 얘기까지 했었다면 바로 기사가 떴었겠지?
그리고 얼마 뒤에 그 남자 배우의 스캔들이 크게 터졌다. 상대는 극장에서 보았던 바로 그 여자 연예인이었다. 나중엔 TV 연예 프로에 나와서 연인 사이가 맞다고 인정했다. 그때만 해도 두 분이 결혼할 줄 알았는데......
시간이 더 더 흐르면 이 스타 커플이 누구였는지 까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각자의 길을 가고 있기에 이름을 밝힐 수 없다. 내 앞자리의 두 사람이 가끔 생각 난다. 만약 그때 잘 되었으면 어땠을까. 가보지 않은,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궁금증과 아쉬움은 세월이 흘러도 옅어지지 않는다.
써 놓고 보니 작품 이야기가 거의 없...😓 이번에 정보를 찾아보다 2023년에도 이 연극이 공연된 것을 알았다. 주인공 소개를 보니 설정이 바뀌었다. 다음에 언제 또 하면 보러 가볼까?
* 연극은 1991년 서울연극제 작품상 수상. 오현경과 허현호가 각각 대부와 오달을 연기함.
* 서울 장충동에 있는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본 줄 알았는데 혜화동에 있는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공연했었다고? (현재는 아르코 예술극장으로 이름이 바뀜)
* 엔딩 크레딧에 한석규 이름이 보여서 찾아보니 단역으로 잠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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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성용,한석규,김기현 / 웨이브 캡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