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13

꿈 - KBS TV문학관 (정종준, 하미혜, 박상규)


MBC에 베스트셀러극장이 있다면 KBS에는 TV문학관과 드라마게임이 있었다. KBS는 유튜브에 '옛날TV'라는 채널을 만들어 추억의 드라마를 많이 올려놓았다. <꿈>도 올려져 있어서 실로 몇십 년 만에 다시 보았다. 감동~😭


조신스님과 달희가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TV문학관 꿈. 유튜브 캡처

UHD로 만나는 TV문학관 "꿈"


: 제96화. 1983. 08. 20일 방영. 2023.05.29 재방영. 
김재현 연출. 최경식 극본. 이광수 원작.
정종준, 
하미혜, 박상규, 황민, 이대로, 최주봉, 곽정희, 김기복, 이일웅, 공경구, 임성민, 최현철, 최용호, 박선희, 정민, 이창원, 최재현, 이두섭 출연.


정보를 찾아보며 새롭게 안 사실은 이 화의 원작이 김성동의 소설이 아닌 이광수의 소설 '꿈'이라는 것. 김성동의 '꿈'도 내용은 같다. 진짜 원작을 따진다면 삼국유사에 실려있는 '조신의 꿈' 설화일 것이다. 스포일러 주의를 외치기엔 제목이 이미 강력한 스포다. 그래도 외쳐볼까나? 줄거리 나옵니다. 주의하세요~


조신 스님이 있는 절에 달희라는 여성이 온다. 절에는 달희의 엄마가 모셔져 있다. 조신은 달희와 얘기를 나누다 그녀가 아버지에게 떠밀려 약혼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의 마음은 달희에게 향하고 스님으로 사는 것에 마음이 떠버린다. 조신의 번뇌를 알아챈 큰스님이 달희와 맺어지게 해 줄 테니 3일 동안 기도를 올리라고 한다. 그는 신나게 목욕 재계하고 목탁을 두드리며 열심히 염불을 외운다. 절에서 묵고 있던 달희는 조신을 불러내고, 두 사람은 얘기를 나누다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도망치기로 한다. 

조신 스님이 목탁을 치고 있다
KBS TV문학관 꿈. 유튜브 캡처

조신이 배를 봐 둔 곳에 동료 스님 평목이 와있었다. 평목은 큰스님이 시켰다며 새 장삼을 건네준다. 두 사람은 어딘지 모를 곳에 가서 동네 사람의 도움으로 자리를 잡는다. 아이도 낳고 이제 좀 잘 살아보려는데 평목이 나타난다. 멀리 도망간 줄 알았더니 이렇게 가까이 있었냐면서 달희의 아버지와 약혼자가 두 사람을 찾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준다. 마음이 급해진 두 사람은 다시 도망가는데 그 와중에 아이가 죽고 만다. 세월이 한참 흐르고, 두 사람은 딸을 키우며 살고 있다. 탁발을 다니던 평목은 달희를 닮은 여학생을 보고 따라가는데 그곳에서 달희와 눈이 마주치고 서로를 알아본다.


조신은 평목을 반가워하며 하룻밤 묵어가게 한다. 평목은 달희의 약혼자가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다며 둘이 도망가는 바람에 절이 망하고 그 때문에 자신도 전국을 떠돌게 되었다고 은근히 조신을 탓한다. 더 나아가 자기도 달희한테 마음이 있었다며 이제와 달례를 넘볼 순 없고 딸을 (부인으로) 달라고 한다.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은 소리를 들은 조신은 분노에 겨워 평목을 죽여버린다. 그리고는 마을 어딘가에 자살한 듯 위장시켜 놓지만, 집에서 미처 치우지 못한 평목의 바랑(짐보따리)을 순사가 발견하면서 조신은 감옥에 갇힌다.

그를 찾아오는 사람이라고는 딸 뿐이고 부인은 그 아버지에게 붙들려 오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도망칠 당시 큰스님이 주셨다는 장삼을 입고 조신은 교수대에 선다. 목이 매달리는 순간,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는 조신을 보고 스님들이 껄껄껄 웃는다. 파란만장한 꿈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은 조신은 세상이 그저 다 예뻐 보일 뿐이다. 달희는 약혼자와 집으로 돌아가고 조신은 달희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준다. 그리고 꿈을 꾸기 전엔 망설였던 참선 수행에 기꺼이 들어간다.     


나도 이런 꿈을 꾸면 정신이 확 들 것 같다. 그런데 만약 조신의 꿈 내용이 해피엔딩이었다면?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온 가족 잘 먹고 잘 살다가 극락왕생하는 결말이었다면? 대리만족해 봤으니 그걸로 되었다~ 할 수도 있겠지만, 속세의 삶에 미련을 못 버리고 결국엔 절을 뛰쳐나가는 스토리가 나왔을 수도 있지 않을까?
 
'꿈'이란 말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잠을 잘 때 보는 환각도 꿈이고, 미래에 하고 싶은 희망사항도 꿈이고, 현실성 없는 얘기도 꿈이라 하고. 어릴 때부터 가졌던 꿈을 이룰 가능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데 버리지도 못하고 이루지도 못하고 꿈에 계속 휘둘리며 살고 있으니 이렇게 깨끗이 깰 수 있는 꿈이 부러울 뿐이다.  

KBS 티비문학관 꿈. 왼쪽부터 박길라, 하미혜, 임성민, 박상규. 유튜브 캡처

* 조신의 딸로 나오는 박선희는 '박길라'라는 예명으로 가수로 활동한다. 20대 초반 콘서트 도중 심장 발작으로 돌아가셨다고. 노래를 들어보면 목소리가 정말 맑은데.. 너무 아깝다.

 
* 출연자 중에 임성민이 있길래 설마 했더니 미남 배우의 대명사 그 임성민이 맞았다. 꿈에서는 여주인공의 약혼자로 나오는데 풋풋한 소년미마저 느껴진다. 간경화로 39세에 요절. 드라마를 하차하고 치료에 전념했다면 어땠을지 생각할수록 안타까울 뿐이다.
 
* 평목 스님으로 나온 박상규는 국립극장 전속 배우였다. 그가 주인공으로 나온 '간계와 사랑'이라는 연극을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보았는데 아주 멋있었다. 내 뒷자리에 당시 신인이던 신애라 배우가 앉아있던 게 추억이라면 추억이다.

* 극에 나오는 절은 변산 내소사. 전북 부안군 소재. 사찰과 더불어 전나무숲길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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