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02

사이코드라마 당신 - MBC 심리극 주간 드라마 (이정길)


특이한 드라마였다. 주인공인 정신과 의사가 카메라를 향해 얘기한다. 환자가 나오고 상담을 한다. 환자의 얘기가 극으로 전개되다가 정신과 의사가 개입하면서 상담실로 돌아온다. 다시 환자의 얘기가 이어지고 의사가 질문을 던지고... 마지막에 해설.


사이코드라마 당신. 출처 춘하추동방송 블로그

사이코드라마 당신 (MBC)


: 1984.10.26 ~ 1986.04.25 방영. 이정길, 송옥숙, 한애경 등 출연.


매주 1회 방영 했을 것이다. 기억에 남는 환자(?)는 김수미 배우.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꼈던가 스카프를 둘렀던가 아니면 둘 다 걸친 모습으로 진료실에 등장한다. 자신의 얘기를 늘어놓는데 스스로에게 도취된 느낌이다. 정신과 의사 역의 이정길 배우가 좀 듣다가 김수미의 말을 잘라버린다(너무 가차 없어서 마치 내가 무안을 당한 것 같았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김수미가 말한 게 대부분 꾸며진 얘기였다. 부모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탓에 남의 관심을 끌기 위해 허언을 하게 된 것.



또 생각나는 에피소드에는 이기선 배우가 나온다. 상대 남자는 윤승원(KBS 토지에서 길상이 역) 배우였던 것 같은데 아닐 수도 있다. 둘이 소개팅을 하는데 남자가 계속 머리를 긁는다. 그 손으로 이기선의 손을 덥썩 잡는다. 그 느낌이 너무 불쾌했던 이기선은 손을 마구 닦는다. 그 뒤로 손을 수시로 닦는 강박증에 시달리게 된다. 소개팅에서 겪은 일은 트리거(Trigger)였고 어렸을 때부터 청결을 강조하다 못해 강요한 부모가 근본 원인이었던 것으로......

또 하나는 장면만 기억나는데, 아버지(정욱 배우였던 듯)가 허리에 차고 있던 혁대를 빼서 아들을 때리려 한다. 아버지가 1등만 강요하는 인간이라 시험을 조금 못 본 아들을 팼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모범생 아들이 홱 돌아서 무슨 짓을 저질러 때렸던 것 같기도 하고... 뭐였는지 모르겠다.

인간의 심리와 정신 건강을 직접적으로 다룬 드라마는 현재까지 통틀어 봐도 이 작품이 유일하지 않을까? 매회 아주 흥미진진하게 봤었는데 갑자기 끝난다고 해서 너무 아쉬웠었다. 서핑을 해보니 납량 특집도 했었다는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신 건강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높아진 지금, 이 콘셉트로 드라마를 다시 만들어도 좋을 듯한데 드라마 제작하는 분들 생각은 어떠신지?

* 사이코드라마 당신 방영 목록 



나쁜남자 - 2010년 SBS 수목드라마 (김남길 한가인 오연수)


2009년 MBC 대하사극 '선덕여왕'에서 비담으로 나온 김남길. 충격적이기까지 했던 그의 첫 등장이 잊히지가 않는다. 작가가 비밀 병기라고 장담한 이유가 있었다. 비담 역을 하면서 온갖 매력을 다 발산한 김남길은 그야말로 빵 뜬다. 

왼쪽부터 김재욱,한가인,김남길,오연수,정소민
SBS 나쁜남자. 왼쪽부터 김재욱, 한가인, 김남길, 오연수, 정소민. 공식홈

나쁜 남자 (SBS)


: 2010.05.26 ~ 2010.08.05 방영. 17부작. 스탕달의 '적과 흑' 원작. 이도영, 김재은, 김성희 극본. 이형민 연출. 김남길, 한가인, 오연수, 김재욱, 정소민, 김혜옥, 전국환, 심은경, 정의갑, 하주희, 김민서, 김정태, 박아인, 김응수, 송서연, 추귀정, 주진모, 문가영 등 출연.

인기 절정의 상태에서 다음 작품으로 고른 것이 SBS의 '나쁜 남자'이다. 이 드라마에서 김남길이 웃는 얼굴을 처음 보이는 장면도 느낌이 강렬하다. 재벌 가족이 타고 있던 요트로 김남길이 낙하하는데, 말 그대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나타난 그를 보고 재벌딸 정소민이 첫눈에 반해버린다. (이때 김남길에게 반한 시청자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김혜옥 배우가 환하게 웃고 있다
배우 김혜옥. 출처 연합뉴스

사실 이 드라마는 보다 말았다. 왜 그랬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강력한 스포를 밟았던 것 같다. 그리고 주인공이 파괴하려는 재벌가의 주인이 너무 악독해서 보는 게 괴롭기도 했다. 고상한 외모와 말투로 아무렇지 않게 사람 인격을 짓밟는 연기가 어찌나 살 떨리던지 주연들보다 김혜옥 배우가 더 기억에 남아있다.


또 기억에 짙게 남은 것을 꼽아본다면 오연수와 김남길의 케미. 엘리베이터 장면은 다시 봐도 긴장감이 예술이다. 두 배우가 또 작품을 같이 한다면 닥치고 본방사수 하겠습니다~ SBS 공식홈에 주요 장면들이 아주 잘 정리되어 있다. 단, 클릭하는 순간 스포에 노출됨! ▶▶▶ 나쁜 남자 : 방송 클립 영상 : SBS

복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남자. 그래서 나쁜 남자인데, 누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생각해본다면 그가 정말 나쁜 남자인지 묻게 된다. 불륜이 가져온 비극. 복수는 복수를 낳고 남은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 뿐이다.
* 김남길의 콧수염, 과연 최선이었나?

* 이 드라마에서 정소민을 처음 보았는데 (찾아보니 이 드라마가 데뷔작) 새끼 강아지 마냥 너무 귀여웠다.

* 반항기 다분한 김재욱도 정말 매력적이었다.

* 이제라도 보실 분은 절대로 그 어떤 정보도 찾아보지 말고 보세요. 결말을 알아버리면 볼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2023-10-01

보디가드 - KBS 주말 드라마 (차승원 한고은 임은경 현빈)

 '보디가드' 하면 뭐가 가장 먼저 떠오르시는지? 휘트니 휴스턴과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한 영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국 드라마? 아니면 속옷? 물론 KBS 드라마부터 떠올리는 분도 있을 것이다.

왼쪽부터 임은경, 차승원, 한고은, 현빈
KBS 드라마 보디가드. 왼쪽부터 임은경, 차승원, 한고은, 현빈


보디가드 (KBS)

: 2003.07.05 ~ 2003.09.14 토, 일 방영. 22부작. 전기상, 최지영 연출. 권민수 극본.
차승원, 한고은, 임은경, 송일국, 이세은, 이원종, 마야, 장세진, 임채무, 현빈 출연.

이 드라마에 대해 남아있는 기억은 재미있었다는 것과 한고은이 정말 멋있었다는 것, 그리고 현빈. 검은색 정장 차림의 한고은과 역시 같은 차림으로 그 옆에 나란히 서있는 현빈의 이미지가 어렴풋이 남아있었는데, 줄거리를 읽어보고 크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현빈이 맡은 역이 보디가드가 아니고 스토커였다고? 이럴 수가. 2004년 MBC 드라마 [아일랜드]에서 보디가드 '강국'으로 나온 것과 기억이 뒤섞인 모양이다. 주인공 차승원은 기억도 못하고 현빈이 한고은의 후배로 나왔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푸핫.


미니시리즈에 걸맞아 보이는 이 드라마가 무려 KBS 주말극이었다는 점도 깬다. 격렬한 액션 장면이 많이 나왔었는데, 잔잔한(?) 가족극 시간대에 파격을 줘서 인기였을까? 정확한 시청률은 모르겠지만 굉장히 잘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엇보다 길쭉한 기럭지로 괴한을 날려버리는 한고은이 너무 멋있어서 무술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10분 요약본을 보고 나니 차승원에 대한 기억이 살아나긴 하지만 어떻게 주인공을 홀라당 잊어버릴 수가 있을까?

드라마만큼이나 인기 많았던, 지금도 들으면 아! 할 주제가 '쿨하게'를 링크하려니 저작권자가 정식으로 제공하는 뮤직비디오가 없다. 차승원 동생 역으로 수준급 연기까지 보여줬던 가수 마야의 공식 유투브 채널에도 이 노래가 없다. 대신 피처링한 거북이의 채널에서 저작권자가 확실히 표시된 버전을 발견하고 링크해본다. (RIP 터틀맨 임성훈)


내 목숨을 걸고 누군가를 지킨다는 것. 나에겐 그럴 만한 대상이 있나? 나는 누군가에게 그럴 만한 대상인가? 전자는 답이 바로 나오지만 후자는 모르겠다. 어쩌면 영원히 모를 지도.

* 이 드라마에서의 현빈은 어쩌면 안 보는 게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기억에 짙게 남은 것을 보면... 잘 생기긴 했구나. 수영복만 입고 나오는 장면도 있다.

* 연출자 전기상 PD는 2018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 사진 출처
https://blog.naver.com/hkmkjh/120010204411
https://blog.naver.com/emha03/90019906978 (현빈)



2023-09-28

세잎클로버 - 2005년 SBS 월화드라마 (이효리 김강우 류진 김정화)

가수로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슈퍼스타 이효리가 장편 드라마의 주연을 맡는다?! 이 점 하나만으로도 드라마 '세 잎 클로버'는 시작 전부터 화제 그 자체였다. 가수로서의 인기를 연기자로서도 이어나갈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뚜껑이 열렸는데....


왼쪽부터 류진,김정화,이효리,김강우가 나란히 서있다
왼쪽부터 류진,김정화,이효리,김강우. 나무위키

세잎클로버 (2005)

: 2005.01.17 ~ 2005.03.15 방영. 16부작. 정현정, 조현경 극본. 장용우(4회까지), 이재원 연출. 이효리, 류진, 김강우, 김정화, 이훈, 이보희, 천호진, 김영옥, 김용림, 조미령, 장항선, 김성은, 윤혜경 출연.

당시 나는 KBS에서 방영하는 '쾌걸춘향'에 열광하고 있었다. 톱스타 없는 출연진에 새로울 게 있을까 싶었던 춘향전의 변주는 회를 거듭할수록 시청률이 올라가더니 그야말로 초 인기 드라마가 되었다. '쾌걸춘향'에 찬사가 쏟아질수록 비교 대상으로 더 두드려 맞는 '세잎클로버'의 주연 배우 이효리가 안쓰럽기도 하고 기사에서 떠드는 대로 정말 그렇게 연기를 못하는지 궁금해서 이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이효리의 연기는 생각보다 괜찮았다(물론 이런 감상은 주관적인 것이긴 하지만). 다만 문제는 공장 노동자인 주인공으로 안 보이고 그냥 '이효리'로 보인다는 것. 헤어스타일이라도 긴 생머리가 아닌,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면 좀 나았을까? 역할이 화려하거나 아예 연예인 같은 역이었다면 어땠을지. 역할 자체가 이효리와 너무 어울리지 않았다.

* 그리고 2년 뒤인 2007년 2부작 드라마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에 나왔는데, 이 특집극은 장면 장면이 뮤직비디오 같았다는 것과 참 지루했다는 것만 기억에 남아있다. 뮤비와 CF 감독으로 유명했던 차은택 연출.

* 캐나다로 입양 간 개들이 잘 지내는지 직접 찾아가 만나보는 tvN '캐나다 체크인'. 정말 좋은 프로그램이다. 역시 이효리.




토지 - KBS 주말 대하드라마 (최수지 윤승원)

고 박경리 작가님이 26년의 세월을 들여 집필한 장편소설 '토지'.

읽어보진 않았다 해도 이 작품의 존재를 아는 분들은 많을 것이다. 2022년 현재까지 드라마로는 총 세 번 제작되었는데 그중 두 번은 소설이 완결 나기 전에 만들어졌다. 세 번째 리메이크 작품인 SBS 토지도 나온 지 벌써 20년을 향해가는데 앞으로 또 드라마로 만들어질 수 있을까?

서희로 분장한 최수지가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KBS '토지' 서희 역의 최수지. 출처 뉴스핌

토지 (KBS)

: 1987.10.24 ~ 1989.08.06 토요일, 일요일 방영. 총 103부작. 박경리 원작. 최수지, 윤승원, 반효정, 박원숙, 임동진, 선우은숙, 연운경, 김영철, 연규진, 김성녀, 태민영 등등 (출연 배우가 정말 많음)

토지의 '최서희' 하면 누가 가장 먼저 떠오르시는지? 아마도 많은 분들이 '최수지'를 외치지 않을까 싶다. 나부터도 서희는 곧 최수지 배우라고 생각하니까. 1대 한혜숙 배우가 연기한 서희는 보지 못했고, 3대 김현주 배우는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2대 최수지와 비교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작가님의 따님(고 김영주 토지문화재단 이사장) 인터뷰에서 본 것 같은데, 박경리 작가님이 최수지를 보고 '네가 바로 서희다'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드라마를 보기 전에 소설을 먼저 읽었다면 서희를 어떤 이미지로 상상했을지 모르겠지만, 소설을 읽어보니 최수지는 정말 서희의 현신 같았다. 미인이면서 강단 있고 서늘하고 도도한 느낌. 나이를 계산해보니 그녀가 이 큰 역할을 맡은 게 스무 살 때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젊다 못해 어린 나이에 대단했다.



또 KBS 토지 하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역이 있는데 바로 '임이네'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박원숙 배우가 연기한 임이네. 척박한 땅에서도 악착같이 뿌리를 내려 어떻게든 살아남는 잡초 같은 여자. 속셈이 감춰져 있는 웃음을 흘릴 때면 소름이 끼치다가도 한편으론 그 무시무시한 지독함에 연민마저 느끼게 만드는 복잡한 캐릭터를 어찌나 잘 보여주셨는지 임이네가 나온 장면들은 기억이 진하게 남아있다. 연말 KBS 연기대상에서 임이네 역으로 최우수상을 타셨을 때 얼마나 박수를 쳤는지 모른다. (만약 그때 상을 다른 배우한테 줬다면 TV 안으로 쳐들어갔을지도)

서희 아역으로 나온 이재은 배우의 똑부러지던 연기도 잊을 수 없고 청소년 서희 역의 안연홍 배우가 "찢어 죽이고 말려 죽일 테야!" 절규하던 것도 잊을 수 없다. 청소년 봉순이로 나왔던 귀염상의 김수정, 정말 예뻤던 성인 봉순이 역의 전미선 두 배우도 그립고 혈혈단신 서희 곁을 묵묵히 지켜주던 길상 역의 윤승원 배우 정말 듬직하니 멋있었다~ (토지 전작 '내 마음 별과 같이' 때부터 팬이었음)


KBS 토지에서 길상 역을 맡은 윤승원
길상 역의 윤승원. 출처 클리앙

반면 사람 속을 뒤집어 놓았던 월선(선우은숙)과 용이(임동진), 그리고 그의 부인 강청댁(연운경). 첫사랑에 죽고 못 사는 남편 때문에 미쳐 날뛰던 강청댁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리고 서희네 집을 집어삼키는 조준구(연규진)와 그의 부인 홍씨(김성녀)도 너무나 사악했던 나머지 잊을 수가 없다.

KBS 토지는 웨이브(Wavve)에 전편이 올라와 있다. 복습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소설을 다 읽기 전에는 다시 보지 않으려고 한다. 4권을 도통 못 넘기고 있지만 어찌 됐든 끝까지 읽고 싶다. (할 수 있을까?😓)

세상 사는 게 무엇인지 운명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토지를 보세요.


* 통영에 박경리 기념관이 있는데 그 뒷산에 작가님의 묘소가 있다.

박경리 작가가 채소를 다듬고 있다
박경리 작가님. 출처 박경리기념관 홈페이지

박경리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kbs 토지 광고물
드라마 토지 팸플릿. 출처 박경리기념관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