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03

영화 세 편 리뷰 - 피그(Pig), 시라노(Cyrano), 리코리쉬 피자(Licorice Pizza)


줄거리가 나올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Spoiler!

니콜라스 케이지가 돼지에게 밥을 먹이고 있다
영화 '피그' 니콜라스 케이지 / 판씨네마

피그(Pig)
 :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 마이클 사노스키 감독.


영화 제목이 '돼지'이지만 주인공은 돼지가 아니다. 돼지는 주인공 로빈과 함께 사는 가족 같은 존재였다. 어느 날 갑자기 돼지가 납치된다. 산 속에 처박혀 살던 로빈은 돼지를 찾기 위해 세상으로 나온다.

그가 왜 은둔 생활을 하는지는 명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돼지를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그의 놀라운 과거가 드러난다. 그는 돼지를 찾아다니면서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니콜라스 케이지의 연기는 끝내준다. 그냥 주인공 그 자체다. '썩어도 준치' 라고 그의 연기력은 녹슬지 않았다. 아니, 더 깊어진 것 같다. 그의 연기만 봐도 관람료가 아깝지 않을 것이다. 영화도 재미와 감동을 함께 갖추었다. 감독의 첫 연출 작품이라니 놀라울 뿐이다. 몰락한(줄 알았던) 배우를 다시 살린 신인 감독.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에게 있어서 마이클 사노스키 감독이 '돼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런닝타임도 91분으로 부담이 적고 한껏 몰입하고 보다 보면 끝이 난다. 짧지만 여운이 긴 영화. 추천!


💔 💔 💔 💔 💔


짝사랑하는 여자 앞에 나서지 못하는 시라노
영화 '시라노' 피터 딘클리지 / 유니버셜 픽쳐스

시라노(Cyrano)
 : 피터 딘클리지, 헤일리 베넷 주연. 조 라이트 감독.


외모에 자신이 없는 남자 시라노는 록산느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한다. 록산느가 첫눈에 반한 남자에게 편지를 대신 써주면서 자신의 목마름을 채우는데...

제라르 드 빠르디유가 연기한 시라노를 아주 오래전에 보았었다. 편지를 채우는 문장들이 기가 막히게 멋지고 좋았었다. 다만 마지막에 숨이 끊어져 가는 시라노가 말을 하는데 도무지 끝나지 않아서 '도대체 언제 죽지?' 몹시 지겨워했던 게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에 새로운 시라노를 볼 때 이 기억이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오만과 편견' 감독과 피터 딘클리지를 믿어본 결과는 역시나 대박(최고)!




뮤지컬 같은 연출과 노래 다 좋다. 배우들 연기력은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 재미있다. 두 시간이 후루룩. 다만 내용이 내용인 만큼 극심한 답답함과 짜증을 느낄 수 있다. 시라노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을 빙자해서 한 여자를 속이는 두 남자도 짜증 나고, 사랑에 눈이 멀어 시라노에게 이것저것 부탁하는 여자도 짜증 나고. 내용을 전혀 모르고 봤다면 짜증으로 폭발해버렸을 지도 모른다. 

정말 마음에 드는 것은 엔딩이다. 스포일러라서 쓰지는 못하겠지만 시라노의 마지막 대사는 그야말로 최고! 사랑에 솔직하지 못한 대가는 너무나 쓰고 아프다. 강력 추천!


🍕 🍕 🍕 🍕 🍕


여름날 여자와 남자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영화 '리코리쉬 피자' / 유니버셜 픽쳐스

리코리쉬 피자(Licorice Pizza)
 : 앨라나 하임, 쿠퍼 호프만 주연.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폴 감독의 작품 중에 '매그놀리아'를 감명 깊게 보았었다. 그의 다른 작품 '마스터'는 어렵다 못해 암호로 가득한 수학 책을 들여다 보는 기분이었다. '리코리쉬 피자'는 예고편을 보니 과거 시대의 일상을 다룬 것 같아서 부담이 없을 줄 알았다.

15살 남자애와 25살 여자의 운명적인 만남과 사랑? 감독이 그리고 싶었던 그림은 이거였을까? 

'성인 여자에게 반해서 들이대는 남자애와 미성년자에게 거리를 두다 결국은 그 애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 여자의 얘기' 라고 요점 정리해버리기엔 영화 속에 담긴 것들이 많지만...... 감독은 대체 왜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일까?




내가 미국에서 태어나 1970년대를 몸소 겪은 사람이라면 그 시절 추억을 곱씹으며 아주 재미있게 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한국인. 철저히 미국 갬성(감성)인 영화를 한참 보고 있자니 내가 왜 이걸 보고 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커플에 몰입을 못 한 건 남자 주인공 개리의 탓이 크다. 너무 철딱서니 없게 느껴져서.

주연 배우들 연기는 좋다. 쿠퍼 호프만은 고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아들이라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어쩐지 누구 닮은 것 같더라니. 연기력은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앨라나 하임은 원래 가수이고 이 영화가 첫 출연작이라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처음부터 연기를 이렇게 잘하다니 반칙이야~ 아울러 영화 속 자매들과 부모 역할 배우의 성씨가 전부 하임(Haim)이었다. 온 가족이 연기를 잘 하다니😄😄😄 

좋은 노래도 많이 나오고 화면 색감도 좋은데 지루하다. 왜 지루한지 모르게 지루하다. 감독 이름이 아니었으면 선택하지 않았을 영화. 유치한 개리와는 다르게 자신이 어른이라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는 알라나의 끝내주던 운전 장면, 이것 만큼은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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