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16

눈길 - KBS TV문학관 (안영주 민욱 염복순)


서울에서 바쁘게 살고 있는 경수(민욱)는 형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오랜만에 시골에 내려간다. 1년에 한번 갈까 말까 한 그곳엔 어머니(안영주)가 있었다.


어머니가 아들을 눈으로 배웅하고 있다
KBS TV문학관 눈길. 웨이브 캡처

UHD로 만나는 TV문학관 "눈길"


: 제 115화. 1984.01.07 방영. 2023.07.03 재방영. 이청준 원작. 이은교 극본. 김재현 연출. 안영주, 민욱, 염복순, 남윤정, 신수강, 김인문, 반문섭, 이한승, 김상낙, 박현정, 안광진, 박상만, 전영미, 아역 권오현, 이종민, 박헌성 출연.


경수의 어머니는 아들과 둘째 며느리(염복순), 손자(이종민)를 몹시 반긴다. 경수는 어머니를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목소리를 높인다. 이[치아]를 치료하라고 보낸 돈을 어머니가 생활비로 썼다고 하는 것이다. 경수는 생활비를 따로 챙겨드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 큰 돈을 어디에 썼는지 아들에게 말하지 않는다.  

제사 준비로 바쁜 집에 이장(김인문)이 찾아와 집 수리에 동참하라고 채근한다. 어머니는 아들이 들을 새라 그의 말을 끊는다. 솔직히 이 집에서 목돈이 나올 구멍은 경수 뿐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에게 부담이 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원래부터 집안 형편이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큰 아들 용수(반문섭)가 도박에 미쳐 전 재산을 날린 탓이었다. 부인(남윤정)이 사경을 헤맬 때도 그는 도박판에 있었다. 화가 날 대로 난 어머니는 아들이 대문을 부술 듯 두들겨도 열어주지 않았다. 용수는 동네 움막 같은 곳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경수는 동네 사람들과 술을 마시다 어머니가 어디에 돈을 썼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술에 잔뜩 취해서는, 자신을 마중 나온 어머니에게 반복해서 얘기한다. "나는 어머니에게 빚진 거 없다"고. 어머니는 길을 되짚어 가며 아들이 흘린 신발을 찾아온다. 이를 본 경수의 부인은 어머니에게 냉정한 남편이 야속할 뿐이다.

사실 어머니는 아들이 준 돈으로 자신이 묻힐 땅[집터]과 수의, 꽃상여를 마련해 놓았다. 손자들은 언제 새집을 짓느냐고 묻는다. 어머니는 2층으로 집을 짓고 마당에는 잔디도 입힐 거라고 답해준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환호하고 어머니는 혼자만 아는 웃음을 짓는다. 경수의 부인은 시어머니가 과거 얘기를 꺼내도록 자꾸 묻는다. 

어머니와 아들이 눈길을 걸어가고 있다
KBS TV문학관 눈길. 웨이브 캡처

다른 지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던 경수(권오현)가 급히 집에 온다. 텅 빈 방에는 경대 하나만 남아있다. 밤에 눈이 펑펑 내리고 어머니는 아들의 신발에 쌓인 눈을 턴다. 다음날, 떠나는 아들을 배웅하던 어머니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버스 정류장까지 가게 된다. 그리고 눈밭에 남아있는 두 사람의 발자국을 친구 삼아 돌아간다.

이때 집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간 상태였다. 하지만 새 주인에게 부탁해서 하룻밤 아들과 지낸 것이다. 경수도 집에 문제가 생긴 것을 알고 달려온 것일 텐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어머니는 담담히 회상한다. 다른 방에서 어머니의 얘기를 듣고 있던 경수는 눈물을 흘린다. 그간 형 대신 가장 노릇하며 어머니에게 냉정했던 자신에 대한 참회였다. 


* 줄거리를 써 놓고 보니 어찌 보면 평범하다. 소설에서는 아들이 어머니를 '노인'으로 지칭한다고 하니 감정의 골이 더 크게 그려지는 모양이다. 자식이라면 부모를 돌보는 게 도리이긴 하지만, 혼자 힘으로 출세해 오랜 세월 가장 역할을 하고 있는 자식이라면 그 고단함과 고충에서 비롯되었을, 어머니에 대한 원망도 이해가 간다. 티브이 문학관 '눈길'은 아들이 어머니의 사랑을 새삼 느끼고 우는 것까지만 보여준다. '어머니 제가 앞으로는 자주 자주 뵈러 올 게요 부디 건강하세요' 따위의 대사는 이어지지 않는다. 절제 되고 깔끔한 연출이 돋보인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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