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14

소리의 빛 - KBS TV문학관 (전무송 김성녀 김성겸)


예고를 보자마자 기시감에 시달렸다. 이거 아는 내용인데? 영화 서편제? 아니나 다를까, 같은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었으니 내용이 거의 같을 수밖에.


TV문학관 소리의 빛. 전무송, 김성녀. 유튜브 캡처


UHD로 만나는 티브이문학관 '소리의 빛'


: 제100회. 1983.09.17 방영. 2023.06.26 재방영. 원작 이청준 연작소설 '남도소리'중 2편. 이희우 극본. 김홍종 연출. 전무송, 김성녀, 김성원, 김성겸, 조용원, 여운계, 이일웅, 아역 최호창, 김민희 등 출연.

=== 줄거리 나옵니다. 스포 주의하세요 ===

교도소에서 나온 한 사내(전무송). 선학동이라는 동네를 찾아가서 하룻밤 묵기를 청한다. 사내는 옛 생각에 젖는다.

사내(최호창)의 엄마는 아기를 낳고 죽었다. 아기의 아빠는 사내의 친아빠가 아니고 떠돌던 소리꾼(김성겸)이었다. 소리꾼은 사내의 집과 재산도 다 팔아버리고 엄마까지 죽게 만든 원수였다. 하지만 사내는 그런 죽일 놈을 아버지로 여기며 살아가야 했다. 소리꾼은 사내가 목청이 좋다며 무조건 소리를 배워야 한다고 강요했다. '소리가 하늘에 닿으면 소리 속에서 학이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학을 못 보았으니 네가 대신 봐야 한다'.


사내는 소리꾼이 자는 동안 그를 죽이려 했으나 실패했다. 엄마에 대한 복수심에 활활 불타오르다가도 소리꾼의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흔들렸다. 사내는 복수 대신 의붓아비와 배다른 여동생(김민희)에게서 도망쳤다.  

세월이 흐르고 사내는 전국을 돌며 부녀를 찾아다녔다. 그러다 듣게 된 소식은 거렁뱅이가 된 두 사람을 판소리 애호가 최부잣집에서 받아주었는데, 자신이 병든 것을 알게 된 소리꾼이 폐 끼치는 게 싫어서 떠나버렸다는 것이다. 그때 여동생(조용원)은 이미 맹인이 된 상태였다.

사내는 주막의 남자 주인(김성원)에게 여자 소리꾼[여동생]에 대해 묻지만 주인은 모른다고 시치미를 뗀다. 그러자 사내는 여동생이 어떻게 맹인이 되었는지 말해준다. 소리꾼은 청강수[독약]를 얻어다가 자고 있는 딸의 눈에 떨어뜨렸다. 가슴에 한을 심어준다는 명목으로. 하지만 사내가 보기엔 딸이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고 그런 것일 뿐. 이 얘기를 들은 주인은 분개하면서도 입을 열지 않는다.  


또 세월이 흐르고 사내는 결국 맹인 여자 소리꾼(김성녀)을 만나게 되었다. 여자 소리꾼은 실어증 걸린 것처럼 목청을 닫아버린 상태였는데 사내에게는 거짓말처럼 소리를 들려준다. 사내는 여자에게 어릴 적 얘기만 꺼내고 아는 체를 하지 않는다. 여자도 마찬가지다. 사내가 간 뒤 여자는 다른 사람(이일웅)에게 말한다. 오래비가 다녀갔다고. 아는 체를 하지 않은 건 오래비 눈에 살기가 도는 것을 보아서라고 한다. 아비와 자신을 하나로 느껴서 이번에도 (살인 하기 전에) 도망가버린 것이라고. 사내는 담 뒤에서 여자의 얘기를 다 엿듣고는 그대로 떠나버린다.

급기야 사내는 주막 주인에게 몽둥이를 휘두르며 위협한다. 그제야 주인은 얘기를 들려준다. 여자 소리꾼이 아비의 유골을 갖고 찾아왔었다고. 동네 어딘가에 몰래 묻고는 사라졌는데 그때부터 동네에 다시 학이 날아다닌다고. 얘기를 안 했던 건 여자 소리꾼이 신신당부를 해서였다고 한다. 누군가 자신을 찾으면, 자신에 대한 얘기를 먼저 하기 전에는 절대로 얘기를 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 주인에게서 얘기를 다 들은 사내는 정처 없이 발길을 옮긴다.......

TV문학관 소리의 빛. 김성겸, 조용원. 유튜브 캡처


이유야 어찌 됐든 아비가 딸의 눈을 멀게 만드는 부분은 소름이 돋다 못해 화가 뻗친다. 소설에서는 눈의 기운을 목으로 가게 해서 목소리를 좋게 만들려고 했다는 설명도 있었던 것 같다. 아니 대체 그놈의 소리가 뭐라고. 사내가 어렸을 때부터 소리꾼에게 살의를 품은 게 너무나 이해가 간다. 더구나 여동생까지 장애인으로 만든 것을 알게 되었다면, 아무리 애증의 관계라고 해도 동생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감까지 더해질 것 같다.

복수하고 싶은 대상은 사라지고 만나고 싶은 대상도 사라지고 나이만 먹어버린 주인공의 인생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오랜 세월에 걸쳐 켜켜이 쌓인 복잡다단한 감정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다 보고나니 고구마 백개는 삼킨 것 같지만 깊은 울림과 먹먹함을 주는 작품이다. 추천.
 


* 소리꾼으로 나온 김성겸 배우 하면 '하늘아 하늘아'에서 괴팍한 영조로 나왔던 게 잊혀지지 않는다. 사도세자로 나왔던 정보석이 어찌나 불쌍했던지. 혜경궁 홍씨 하희라도 그렇고. 여기서도 정말 욕 나오는 역으로...... (역사의 평가와는 별개로 드라마 속에서 그랬다는 것이다)


* 영화 서편제는 우리나라 영화 역사상 최초로 일백만명 넘는 관객을 동원한 작품이다. 아직 안 보신 분은 티브이문학관과 비교해서 보는 것도 좋겠다.

* '소리의 빛'이 조용원 배우의 TV 데뷔작이라고 한다. 오랜만에 보니 너무 반갑다.

TV문학관 소리의 빛. 조용원.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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