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15

화당리 솟례 - MBC 베스트셀러극장 (최민경 김주승)


솟례.
참으로 특이한 이름이다. 이런 이름을 누가 어떻게 왜 짓게 되었을까?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이에 대한 설명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주인공은 처음부터 그냥 솟례이다. 머리에 꽃을 달고 다니는, 어딘가 모자란 처자. 어딜 가나 시선을 집중시키며 구름처럼 아이들을 몰고 다니는 존재. 좋게 말하면 인싸(인사이더. 사람들과 두루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지만 대놓고 말하면 동네 사람들의 '밥'이다. 특히 남자들이 호시탐탐 노리는.

머리에 꽃을 꽂은 솟례
'화당리 솟례' 솟례로 나온 최민경. 유튜브 캡처

MBC 베스트셀러극장 제136회 화당리 솟례


: 1986.11.09 방영. 천승세 원작. 윤시몬 극본. 장수봉 연출. 최민경, 정진, 김주승, 남능미, 안명숙, 김영옥, 박종관, 이계인, 김성찬, 송경철, 박상조, 고영준, 김지영, 정대홍, 문회원, 박희우, 김지원, 박순애, 정혜승, 정명환, 김영석, 맹찬재, 조현이, 이경아 출연.


서울로 도망갔던 솟례가 화당리로 돌아오면서 극은 시작된다. 말하는 것을 보면 구걸로 연명한 느낌인데, 지적 수준이 한참 떨어지는 여자가 한두달도 아니고 1년씩이나 도시에서 어떻게 버텼을지 정말 의문스럽다. 원작 소설을 읽어보면 의문이 풀릴까? 그뿐 아니라 왜 집을 떠났는지, 왜 다시 돌아왔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는 설명을 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 솟례가 종잡을 수 없이 행동하는 바보라고 해도 말이다.



- 스포일러 주의하세요 -

아무튼 솟례의 삶에 비극이 싹튼 건 꽃미남 김주승을 보고 첫눈에 반해버린 뒤부터이다. 극 중 이름을 모르겠는 김주승은 솟례를 보고 한번 웃어주었을 뿐이다. 그 순간부터 솟례에게는 오로지 김주승 뿐이다. 그가 다니는 학교 앞에서 무작정 기다리고 집을 찾아가 스토커처럼 그를 엿본다. 그와 결혼하는 게 인생 최대의 목표가 되어버린 솟례. 세상이 멸망해도 불가능한 꿈이라는 것을 정작 그녀만 모른다.

이런 솟례를 가족처럼 챙겨주는 아주머니가 있어 다행이다 싶었는데, 덕분에 예뻐진 솟례에게 남자들이 대놓고 흑심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솟례가 원하는 것을 주겠다며 그녀의 몸을 탐하는 개자슥들. 솟례는 그렇게 얻어낸 카메라를 김주승에서 떠맡기듯 주지만, 카메라를 갖고 있는 것은 솟례가 친언니처럼 생각했던 아주머니의 딸이었다.



사실 그 카메라가 그 카메라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생긴 게 똑같은 각각의 카메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강간으로 자신이 더럽혀졌다고 생각한 솟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물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김주승과 아주머니 딸이 결혼하는 장면은 솟례의 상상일 수도 있고 실제일 수도 있다. 일이 왜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 누구를 무엇을 탓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하는 솟례. 그래서 그녀가 더 불쌍하게 느껴질 뿐이다.

만약 공중파 단막극이 아니었다면 남자들이 솟례를 탐하는 게 더욱 노골적으로 묘사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솟례를 키워준 할아버지도 '안아준다'는 표현을 쓰는데 성적인 암시가 담긴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아리송하다. 약자 중에서도 약자가 산산이 부서지는 이야기. 세상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제대로 된 보호막이 없는 약자에게는 그저 비정하고 살벌한 곳일 뿐이다.


화당리 솟례에 나온 김주승 배우
지금은 고인이 된 배우 김주승.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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