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06

월광 - MBC 베스트셀러극장 (김인문 김해숙 심양홍)

이 단막극을 기억하는 건 살구색이 난무하는(?) 장면 때문이다. 달빛만이 살아있는 밤을 틈타 동네 외진 곳에서 만나는 두 남녀. 옷을 벗어던지고 살을 비비는데 그 장면이 당시엔 그렇게 야해 보일 수가 없었다. 내용은 다 까먹고 오로지 이 장면만 머릿속에 남아있었으나 배우들이 누군지 알고 있어서 제목을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왼쪽부터 고 김인문, 김해숙, 심양홍
왼쪽부터 고 김인문, 김해숙, 심양홍. 출처 티비리포트/오마이뉴스/SBS


MBC 베스트셀러극장 제 118회 '월광'


: 1986. 6. 15 방영. 오유권 원작. 고 김인문, 김해숙, 심양홍, 박은수 출연.

원작은 오유권 작가의 소설 '월광'. 이 작가분은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데 우리말 큰사전을 세번씩이나 필사하면서 혼자 공부하셨다고 한다. 남긴 작품이 수백 편이고 그중 1백 여 편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에 쓰신 거라고 한다. 우리나라 소설을 꽤나 읽었다고 자부하지만 솔직히 낯선 이름이다. 유튜브에 낭독판이 있어서 들어보니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나 김유정의 '봄봄'이 생각날 만큼 토속적이다. 어찌 이런 작가를 모르고 살았을까?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 스포일러 주의! -



줄거리는 이렇다. 시아버지와 며느리, 그리고 두 아이가 한 집 한 방에서 같이 산다. 아들이자 남편은 좌익 사람들을 고발하는 일을 하다가 산속으로 도망친 건지 잡혀간 건지 죽은 건지 소식이 없다. 매일 밤 며느리가 소변보러 나갈 때마다 그 소리에 깨서는 민망함에 얼굴이 달아오르던 진 노인은 어느 날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며느리를 따라나선다.

불길한 예감은 잘 들어맞는다고 며느리는 동네의 사내와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 으슥한 보리밭에서 뼈와 살이 타는 시간을 보내고 돌아가는 사내를 진 노인은 불러 세운다. 놀랍게도 주먹을 날리는 대신 며느리에게 다시 가보라고 하는데...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한 진 노인은 며느리가 새로운 짝을 만나길 바란 것이다. 하지만 하필 그때 어둠 저편에서 나타난 사람은 바로바로바로 아들...! 허허, 이 죽일 놈의 타이밍 어쩌란 말인가.


* 유튜브에 찾아보니 KBS에서 만든 단막극이 올려져 있다. 변희봉, 권재희 주연. 재미있어 보인다. (2023.09.18 변희봉 배우 타계)

* 이 단막극에서 심양홍 배우를 처음 봤는데 너무나 동네 아저씨 느낌이라 배우가 아닌 줄 알았다; 이후로 일요 아침 드라마 '한지붕 세 가족'에 등장. 찾아보니 국문학 전공이신데 왜 전직이 음대 교수였다는 헛소문이 났던 걸까?

* 비록 머릿속에 남은 것은 19금 장면 뿐이었지만 그 덕분에 새로운 작가와 작품을 알게 되었다. 사전 필사 얘기를 들으니 고 김소진 작가가 떠오른다. 이 분도 사전을 통째로 옮겨 적었다고 한다. 순수문학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소설들을 썼었는데 안타깝게도 병으로 일찍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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