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23

연인 - 1993년 KBS 주말 드라마 (신애라 김주승 이효정 이휘향)


이 드라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한자로 쓴 제목과 015B(공일오비)가 부른 주제가이다. 지금 들어도 촌스럽지 않은 멜로디와 호소력 짙은 장호일의 보컬이 아주 잘 어울렸다. "누가 그런 말을 해~ 추억만으로도 살 수 있다고~ 사랑은 가도 세상은 끝나는 건 아니잖아~". 가사는 최연지 작가가 직접 썼다.

드라마 연인의 주인공 네 사람.
KBS 드라마 '연인'

연인 (KBS)

: 1993.05.01~10.17 방영. 50부작. 최연지 극본. 김수동, 홍종현 연출. 신애라, 이효정, 김주승, 이휘향, 전혜진, 김응석, 황정아, 이낙훈, 남능미, 김창숙, 최정훈, 조민수 등 출연.


방영 당시 나는 24시간 공부에 올인해도 모자랄 때였는데, 좀 과장해서 말하면 이 드라마에 완전히 미쳐있었다. 검사, 변호사, 기자, 화가, 동시통역사, 골프 선수 등 캐릭터들의 직업이 하나같이 멋있어서 장래희망이 바뀔 뻔했다. 특히 동시통역사로 나온 전혜진(마리 역)은 트렌디한 도시 여성 그 자체였다. 매 회마다 어떻게 입고 나오는지 보는 재미도 컸다. 

 
내용 면에서는 이효정(상훈 역)이 친구의 애인인 신애라(희경 역)만 묵묵히 바라보는 게 왜 그렇게 좋았는지 모르겠다(두 사람이 함께 나오는 장면은 녹화까지 했었는데 이제와 그 테이프들을 다시 볼 엄두는 나지 않는다😓). 김주승(건우 역)이 오래 사귄 희경을 저버리고 첫눈에 반한 연상녀 이휘향(연희 역)과 결혼하는 전개도 나름 충격적이었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서 이런 경우를 실제로 보았었는데, 그놈 생각하면 지금도 쌍욕이 나온다. 드라마와 현실은 엄연히 다른 것.  
 

 
유독 기억에 남아있는 장면이 있다. 상훈이 김소월의 시 '금잔디'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화자가 색맹이지 않을까 결론을 내렸었는데 왜 그렇게 추리했는지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시를 다시 읽어보니 '심심산천에 붙는 불'이라는 표현이 있다. 초록색 잔디를 붉은 불(fire)에 비유해서 그랬던 것일까? 상훈이 희경에게 마음을 고백하는 (정작 중요한) 장면은 생각도 잘 안 나는데 어찌 이 장면은 잊혀지지가 않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나 말고도 같이 미쳐있던 애들이 있어서 체감 시청률은 그야말로 30% 이상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MBC 드라마 '아들과 딸'과 '엄마의 바다'에 밀렸다고 한다(근데 이 두 편도 다 봤는데 공부는 언제 했나...). 여튼 저튼 아무튼 힘든 시기를 견디는 데에 도와준 드라마여서 머리보다는 가슴에 남은 듯하다. 
 
KBS 유튜브 채널 '같이삽시다'에 첫 회와 마지막 회가 올라와 있다. 연인 다시 보고 싶으신 분은 이거라도 보세요.
 

 
* 캡처하느라 마지막 회를 조금 보았는데, 여섯 살인가 위인 연희(이휘향)가 건우(김주승)에게 존댓말을 쓰고 건우는 반말을 한다. 결혼 전에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 작가님 근황을 찾아보니 2019년에 '행복한 여자는 글을 쓰지 않는다'라는 책을 냈다.

* 015B는 1993년 당시 인기 절정을 달리던 정석원, 장호일 2인조 프로젝트 그룹이었다. 친형제이면서 공식적으로는 친형제인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SBS 주병진쇼에서 주병진이 대놓고 물어봤으나 두 사람은 대답하길 거부했다. 정석원이 뭐라고 한참 말했는데 워딩은 생각나지 않는다. (장호일이 형이고 본명은 정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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