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사는 아파트의 어느 주민이 버렸을 쓰레기봉투를 몰래 가져와 욕실에서 해체해보는 남자. 범죄를 수사하는 형사나 할법한 일이 이 남자에게는 취미이자 중요한 일상이다. 누군가에 대해 알고 싶거든 그 친구를 보라는 말이 있지만, 버리는 쓰레기를 보아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이다. 내 이웃이 버린 쓰레기를 탐하라. 이 남자는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것일까?
KBS TV문학관 곰팡이꽃. 출처 한겨레 |
KBS TV 문학관 '곰팡이꽃'
: 2003.12.28 (일) 방영. 하성란 원작. 김형일 연출. 남궁민, 박현숙, 이두일, 이얼 출연.원작은 1999년에 발표된 하성란의 소설이다. 소설에서는 주인공의 옆집 여자와 그 애인의 얘기가 주로 나오는데, 당시 신문기사(소설이 기술을 만났을 때 - 한겨레 2003.12.25)를 보니 TV문학관에서는 각색이 많이 되었다. 이 단막극만 보고 소설 읽은 척을 하면 절대로 안된다. 본 지 너무 오래되었지만 주인공 남궁민이 쓰레기를 욕조에 펼쳐 놓고 분석하던 장면 만큼은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꼭 이 드라마 때문은 아니지만 우편물이나 고지서 따위를 버릴 때 개인 정보가 적혀있는 부분은 철저히 제거하는 게 버릇이 되었다. 택배 받는 게 일상이 된 뒤로는 송장 없애는 데에 정성을 들인다. 누가 내 쓰레기를 뒤져서 이름과 주소 등을 알아낸다면?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지 않는가~
소설 속 남자는 쓰레기에서 알게 되는 것들이 진짜라고 생각한다. '쓰레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옆집 여자의 애인은 여자가 생크림 케이크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그 집 쓰레기에선 과일만 빼먹은 케이크가 나온다. 주인공 남자가 보기에 그 애인은 여자의 진심을 알지 못한다. 다른 누군가의 '진짜 진심'과 '진짜 진실'을 알고 싶은 남자의 심리가 쓰레기를 파헤치게 만든다. 그 애인이 여자의 쓰레기를 봤다면 여자가 생크림 케이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고 그럼 두 사람은 헤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남자는 생각한다.
살면서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타나기 마련이지만, 그런 사람 모두와 친분을 맺을 수는 없다. 갑자기 다가가 내 안에 너 있다~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무작정 나와 친구 하자고 조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 사람에 대해 알고는 싶은데 친분을 맺을 순 없으니 관음 하는(엿보는) 방식으로 그 사람의 쓰레기를 탐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다면 부딪혀 봐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보기 좋게 거절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No Pain No Gain. 거절이 두렵고 무서워서 시도하지 않으면 얻어지는 것도 없다. (단, 거절 당하는 것을 못 견뎌서 복수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사람은 아예 시도도 하지 말기를)
남의 쓰레기를 뒤져보고 잘 치우기만 한다면, 딱 거기까지만 한다면 따로 누구에게 피해 주는 것도 아니고 뭐 어떤가 싶은 생각도 들긴 한다. 여기서 궁금해지는 것이 쓰레기도 사생활 영역인가? 누군가의 집 안에 있는 쓰레기를 뒤진다면야 그렇겠지만 쓰레기장에서 익명성을 얻은 쓰레기는? 주인의 손을 떠나버린, 말 그대로 버려진 쓰레기를 소유하는 것은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듯한데... 남의 쓰레기를 가져다 분석하는 것을 좋게 볼 수 없는 이유는 우선 방식이 지저분하고(dirty), 누군가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자 하는 그 '악착같음'이 소름 돋기 때문일 것이다.
* 위에 링크한 기사에 따르면, 당시 이 한편에 3억을 들여서 만들었다는데 왜 KBS 홈페이지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을까? 더구나 고화질 HDTV 16:9 화면에 5.1 채널 입체 음향으로 제작했다는데 왜 다시보기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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