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숱한 드라마를 봐왔고 앞으로도 보겠지만 이 드라마만큼은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덕질'이라는 것을 해본 작품이기 때문이다. 유지태와 최지우 두 배우에게 어느 정도 호감은 있었으나 열렬한 팬은 아니었다. 공식 포스터만 보았을 때도 두 배우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드라마 시청 2회 만에 이 커플의 열렬한 팬이 되고 말았으니....
스타의 연인 (SBS)
: 2008.12.10~2009.02.12 방영. 20부작. 원작 일본 드라마 '스타의 사랑'. 오수연 극본. 부성철 연출. 최지우, 유지태, 이기우, 차예련, 이준혁, 성지루, 정운택, 심은진, 양희경, 신민희, 곽현화, 최필립 출연. 기태영 특별 출연.
인기 최고의 톱스타 배우 이마리와 가난한 국문과 대학원생 김철수. 이 둘이 만나게 된 계기는 이마리의 소속사에서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책을 내기로 하면서이다. 그런데 이마리에 대한 책을 내는 게 아니고 이마리가 책을 쓰는 것이다. 그것도 세계 유명 문학 작품들에 대해. 평소에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면 모를까 이마리는 책과 거리가 먼 캐릭터였다. 외모로 승부하는 배우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대필자까지 구해서 책을 쓰게 하는 설정이 별로 와닿지가 않았다. 이마리가 문학 작품들에 별 조예가 없다는 게 티가 나면 바로 대중의 의심을 살 것이고 비밀이 탄로날 경우 순식간에 공든 탑이 무너질 수도 있는데, 그 위험 부담을 다 떠안고 책을 내서 얻는 게 그렇게 큰지 납득이 잘 되지 않았다.
의구심까지 잔뜩 안고 본 드라마였지만 환상적인 배경 속에서 시작되는 두 사람의 로맨스는 사람을 곧 노예로 만들었다. 극 초반은 일본에서 찍었는데 나오는 곳마다 근사해서 직접 가 보고싶은 열망마저 생겼었다. 특히 관람차에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너무 아름다워 그 누구와든 감상을 나누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디시인사이드의 스타의 연인 갤러리(줄여서 스연갤)에 가게 되었다. 디시는 덕질의 성지 같은 곳이었다. 스연갤에 가보니 나처럼 노예가 된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태어나 처음 해보는 덕질은 단순히 재미있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 엄청난 각성 상태였다. 드라마가 방영하는 날에는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갤러리에서 놀았고 유지태 배우의 갤러리에서도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지금 돌이켜보면 뭘 그렇게 올려댔는지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이다.
이 당시 유지태 배우의 팬클럽 행사에도 가게 되었다. 기존 팬클럽 회원들과 갤러리 이용자들이 함께 모인 자리였다. 여러 이벤트를 했었는데 다른 건 기억이 안 나고 참석자들의 폰 번호를 몇 개 뽑아 그 자리에서 유 배우와 통화를 했었다. 처음으로 울린 게 내 휴대폰이었다. 그런데 장내가 너무 시끄러워서 유 배우가 무슨 말을 했는지 거의 듣지 못했다. 그가 배우를 하기 전에 했던 무용에 관련된 질문을 했었는데... 유 배우가 '생각해 보겠다'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다(통화 녹음을 했어야 했는데?). 그 다음으로 연결된 분이 드라마 속 철수의 (간지러운) 대사를 해달라고 했다. 참석자들 반응이 엄청났다. 그때 깨달았다. 머리 위 하트 같은 걸 요청했어야 했다는 것을.
드라마에서 철수가 쇼팽의 녹턴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장면이 있는데, 본인의 연주를 유 배우에게 들려주고 싶다며 외국(일본이었나)에서 오신 분이 있었다. 피아노 앞에서 그분이 바짝 긴장을 하신 게 멀리서도 느껴졌다. 덕후의 꿈을 이룬 순간 얼마나 기뻤을까? 어디선가 잘 지내고 계시기를.
스타의 연인 마지막회는 팬들이 영화관에 함께 모여서 보았다. 솔직히 드라마에는 거의 집중을 하지 못했다. 최지우 배우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게 마냥 신기했고 단관 행사 자체가 비현실 같았다. 유 배우는 몸이 안 좋아서 참석하지 않았고 오수연 작가도 선물만 보내셨다. 부성철 연출자가 감사 인사를 하셨었고 이준혁 배우도 그 자리에 있었다.
행사가 끝나고 최지우 배우와 마주친 곳은 화장실이었다. 세면대에서 손을 닦고 나가려는 최 배우에게 체면 불고하고 말을 걸었다. 스타의 연인 정말 잘 봤다고. 분명 그녀의 얼굴을 코 앞에서 봤는데 그 부분만 블러 처리된 듯 기억이 없다. 키가 크고 늘씬했다는 기억만.
이렇게 정리해보니 이 정도면 정말 성공한 덕질이었구나~ 싶다. 드라마와 그 팬들과 한 몸처럼 살아 움직였던 기억. 그 시절의 열정이 새삼 그리워진다.
이렇게 정리해보니 이 정도면 정말 성공한 덕질이었구나~ 싶다. 드라마와 그 팬들과 한 몸처럼 살아 움직였던 기억. 그 시절의 열정이 새삼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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