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05

가면의 꿈 - MBC 베스트극장 (남성훈 윤예희 한석규)


대기업 이사 탁명식(남성훈)은 가발과 콧수염으로 변장을 하고 거리를 돌아다닌다. 궁극적으로 가는 곳은 어느 포장마차. 젊은 여자 혜란(남나경)이 꾸리는 곳으로 명식은 그녀의 어린 동생들도 잘 챙겨주고 있다. 하루는 포장마차에서 혜란과 어떤 남자가 실랑이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출근길에 그 남자가 같은 회사 직원 양창수(한석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주인공이 얼굴에 가면을 대 보고 있다
MBC 베스트극장 '가면의 꿈' 남성훈

MBC 베스트극장 117회 가면의 꿈


: 1993.12.24 방영. 원작 이청준. 최순식 극본. 최용원 연출. 남성훈 윤예희 한석규 장인환
허윤정 한태일 정태섭 남나경 장송미 김경애 강인덕 정한헌 백승철 배인혜 최범호 최종환 
홍보경(아역) 홍상진(아역) 출연.


명식이 변장에 취미를 갖게 된 건 부부 동반 가면무도회에 다녀온 뒤부터 였다. 부인(윤예희)은 기묘한 취미에 빠진 남편이 마음에 걸리면서도 내버려둔다. 남편이 밤에 나갔다 온 날에는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침대에서도 뜨거워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명식은 포장마차를 찾아갔다가 혜란이 한강에 투신해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는 창수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한다. 고학생으로 해외개발팀 수석 연구원이 된 대단한 인물. 성실하고 유능한 직원. 혜란과 깊은 사이면서 태산그룹 외동딸과 사귀는 사이. 

창수는 경찰(강인덕)에게 자신은 결백하다며 포장마차에서 본 콧수염 남자가 수상하다고 말한다. 혜란이 자살했다는 것을 믿지 않는 명식은 사건 현장을 한참 파헤치다 증거가 될만한 것을 찾아낸다. 그리고 해고된 것을 항의하는 창수에게 일요일날 회사로 찾아오라고 말한다.


일요일이 되고, 명식은 변장 도구를 챙겨서 회사로 간다. 부인은 친구(허윤정)와 함께 그의 뒤를 밟는다. 명식은 변장한 모습으로 창수를 맞이한다. 고학생으로 대기업에 들어가 사장 딸과 결혼한 그였기에 창수의 심리를 꿰뚫어 본다. 창수는 명식의 추리를 듣다가 범행을 인정하는 말을 내뱉는다. 그때 대기하고 있던 경찰이 모습을 드러내고 창수가 끌려 나간다.

이 단막극의 압권은 바로 이 부분이다. 창수는 호락호락 물러가지 않고 엄청난 사실을 폭로한다. 명식이야말로 사장 딸과 결혼하기 위해 혜란의 언니를 버렸다는 것. 혜란의 언니는 명식의 자식을 낳았다는 것. 혜란이 죽은 언니를 대신해 조카를 동생으로 키우고 있었다는 것. 명식의 가면이 무참하게 벗겨지는 순간이다. 또한 그가 왜 새로운 가면 속에서 편안함을 느꼈는지 바로 이해가 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명식은 창수의 가면을 벗겨냈지만 그것은 곧 명식의 가면이었다. 

🎭사🎭족🎭


* 처음엔 명식이 포장마차 주인에게 흑심을 품었나 했는데 실은 어렵게 사는 옛 애인의 가족을 챙겨주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동생들 중 한 명이 자기 자식인 것은 몰랐다. 마지막 장면에는 그 애들을 데려와 함께 사는 듯한 암시가 담겨 있다. 솔직히 부인이 보살&천사 같다는 생각만 든다.😓

* 드라마를 보고 나서 원작 소설 줄거리를 찾아보고 깜짝 놀랐다. 주인공의 성장 배경과 변장을 즐긴다는 설정 말고는 같은 게 없었다. 소설 속 주인공의 직업은 판사이고 결말도 완전히 다르다. 소설을 모티브로 새로 지어낸 수준이다. 이 베스트극장을 보고 소설 읽은 척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명심하세요.

왼쪽부터 한석규 윤예희 허윤정
MBC 베스트극장 '가면의 꿈' 한석규/윤예희/허윤정

* 한석규 배우의 목소리와 발음은 그야말로 독보적이다. 좋은 목소리에 발음이 또렷하고 강약이 분명해서 듣고 있으면 귀가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 윤예희 배우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 친구로 허윤정 배우가 나와서 깜짝 놀랐다. 

* 남성훈-윤예희-한석규 세 배우의 조합이 신기하다. 


2023-12-03

골패 - KBS TV문학관 (백수련 반효정 조용원 남일우)


대학생 은영(조용원)의 집에 할머니(백수련)가 돌아온다. 할머니는 몇 년 동안 미국에 있는 큰딸(김진애) 집에서 지냈다. 원래는 한국의 장남(남일우) 집에서 살았었는데, 미국 영주권을 받아 가족을 초청해달라는 며느리(반효정)의 설득에 마지못해 간 것이었다. 며느리는 시아버지의 제사를 잘 챙기겠다고 약속해놓고는 돌아온 할머니[시어머니]에게는 자신의 종교 때문에 지낼 수 없었다며 딴소리를 한다. 

KBS TV문학관 골패에 나온 백수련과 조용원
KBS TV문학관 '골패' 백수련과 조용원

KBS TV문학관 제168화 골패


: 1985. 02.09 방영. 정건영 원작. 박병우 극본. 박진수 연출. 백수련, 반효정, 조용원, 남일우, 박혜숙, 김진애, 손창민, 곽경환, 나정옥, 박정웅, 이수연, 김영배, 김주호 출연.




한 달 간 와있기로 한 할머니는 은영의 방에서 지낸다. 할머니는 분신 같은 골패를 꺼내 짝을 맞추며 혼자 웃고 떠든다. 은영의 눈에는 그 모습이 마치 귀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 마냥 기괴해 보인다. 은영은 할머니와 가까이 지내면서 할아버지가 얼마나 처참하게 돌아가셨는지 알게 된다.

할머니는 노인정 사람들을 불러다 잔치를 벌이며 미국 생활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자랑을 늘어놓는다. 노인들은 할머니가 주는 외국 과자와 초콜릿을 먹으며 들떠하지만 사실 이것들은 한국의 동묘시장에서 산 것이었다. 그런 연유로 누군가가 '진짜 미제구만' 한 소리에 '그럼 가짜냐'며 몹시 발끈한다. 집에 돌아와서는 노인들 욕을 마구 늘어놓다가 깡소주를 들이붓고는 돌연 며느리에게 소리친다. 미국에서 사람 대접은커녕 가정부로 부려 먹었다고. 며느리를 큰딸로 착각한 할머니는 그야말로 미친 사람처럼 울분을 쏟아낸다. 며느리는 은영에게 (아버지한테) 절대 말하지 말라고 시킨다.



전보를 몇 번 씩 보내도 반응이 없었던 작은딸은 할머니가 미국으로 돌아가기 직전에 겨우 찾아온다. 작은딸은 오빠 부부와 엄마에게 감정이 많았다. 자신이 번 돈으로 오빠의 대학 학비까지 보태줬지만 오빠 부부는 할머니 재산을 다 가져버렸다. 할머니는 너희들이 원하면 안 가겠다며 지옥 같은 미국 생활에 대해 털어놓지만 할머니를 붙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은영은 풀이 죽어있는 할머니에게 골패를 가르쳐 달라고 한다. 할머니는 손녀에게 골패를 주겠다고 한다. 은영은 할머니에게 골패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기에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유산으로 물려받겠다고 한다.

출국하는 날, 할머니는 갖고 있던 보석 중 유일하게 진짜인 목걸이를 며느리에게 걸어준다. 출발 직전 며느리가 달려 나오지만 할머니를 붙잡는 게 아니라 할머니에게 이름표를 걸어주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할머니는 떠나고, 은영은 방을 둘러보며 할머니의 빈 자리를 느끼다가 책상 위에 골패가 남겨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며칠 후, 전화 한 통이 걸려 오는데.......



🎲 🎲 🎲

아주 어렸을 때 보았으나 몇몇 장면들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특히 할머니를 박대하던 모습들. 마침 KBS 유튜브 채널에 올려져 있어서 다시 보니 작은 딸의 냉담함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며느리가 악역을 도맡고 있지만, 그렇다고 부인의 행동에 이렇다 할 행동도 취하지 않는 장남이 더 문제라는 생각도 든다. 짧은 내용에 세대 갈등, 고부(시어머니와 며느리) 갈등, 종교 갈등, 가족 간의 갈등이 한데 뒤섞여 담겨 있다. 그뿐만 아니라 1980년대에 불었던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허상 꼬집기까지. 만약 KBS UHD TV문학관 시리즈가 또 기획 된다면 이 작품도 꼭 넣어주시면 좋겠다.


손창민과 조용원이 길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KBS TV문학관 '골패' 손창민과 조용원

* 은영의 친구로 나오는 미남 배우는 손창민! 
* 할머니로 나온 백수련 배우는 며느리와 아들로 나온 반효정, 이일우 배우보다 젊다. 
* 장남 가족이 사는 저택은 TV문학관 젊은 느티나무에 나온 곳과 같아 보인다.
* 후반에 롱테이크(long take) 연출이 인상적이다.



2023-11-30

우리나라 배우의 호칭에 대해


추억의 한국 드라마 리뷰를 쓸 때는 출연 배우의 이름 뒤에 '배우'를 붙였다.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이름을 알면 그것으로 부르면 되는데, 거의 기억이 나지 않으니 배우의 이름을 쓴 경우가 많았다. 또 연세가 많거나 돌아가신 분은 -님으로 부르기도 했다.

이렇게 계속 의식해서 쓰다 보니 피곤함이 느껴졌다. 배우 분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 이상, 등장인물로만 대할 땐 이름만 쓰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는 필요할 때만 '배우'를 붙일 것이다. 존칭이 필요할 땐 -님을 쓸 것이다. 글을 쓰다 보면 또 갈팡질팡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22.10.22일 예전 블로그에 썼던 글)

2023-11-27

전두환의 손자를 응원한다 - 영화 서울의 봄 흥행에 부쳐 (+ MBC 제5공화국)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2023년 초,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씨가 할아버지와 자기 가족들의 죄를 직접 폭로하고 나섰다. 가족들이 자신을 정신이상자로 몰아갈 것이 뻔하다며 정신건강 관련 문서도 미리 공개했었다. 내부자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을 SNS와 라이브 방송을 통해 밝히며 재수사를 요구했었는데, 2023년 말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전우원씨의 마약 관련 혐의에 대해서만 재판이 진행 중이다.


역사의 인물로 분장한 황정민과 정우성
영화 서울의 봄


난 전두환이라면 학을 떼는 사람이다. 그가 대통령이던 시절, 북한을 상대로 댐을 세우지 않으면 남한이 물바다가 된다고 겁을 잔뜩 줘서는 전 국민에게 돈을 거뒀었다. 초등학생(국민학생)은 1인당 500원을 내야 했는데, 당시 우리집은 단돈 100원도 짜내기 힘들 만큼 어려웠다. (요즘 1천 원 안팎의 콘 아이스크림이 그 당시에 100원 정도 했음)



결국 돈을 다 못 내자 선생님이 대놓고 짜증을 내셨는데 그 표정과 말투가 아직도 생각난다. 나중에 커서 그 댐 얘기가 전부 거짓말이었고 그 돈이 다 어디로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전두환 ㄱㅅㄲ에게 진심으로 분노가 치밀었다. 그나마 초등생에게 할당된 액수가 가장 적었던 것 같은데, 전국에서 걷힌 돈이 과연! 대체! 얼마였을까? 검은 돈 챙긴 게 비단 이것뿐이겠냐 만은.

MBC 정치 드라마 제5공화국의 주요 인물들
MBC 정치 드라마 제5공화국

이덕화가 전두환으로 나왔던 MBC 드라마 '제5공화국'도 보다 말아버렸다. 연기인데도 그 ㄱㅅㄲ를 보는 게 괴로웠다. ㄱㅅㄲ는 저지른 죄에 비하면 저세상으로 너무 편하게 가버려서 신이 원망스럽지만 그 손자 만큼은 계속 응원해보려 한다.

* 2023년 11월 22일 영화 '서울의 봄' 개봉. 개봉 6일 만에 전국 관객 200만명 돌파. 군인 전두환이 쿠테타에 성공해 저 맘대로 대통령이 되어 나라를 휘청이게 만든 역사는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역사는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2023-11-23

넷플릭스 범죄 다큐 추천 - 누가 질 댄도를 죽였나? (Who Killed Jill Dando?)


1999년 4월 26일, 영국에서 아주 유명한 인물이 자택 앞에서 총에 맞아 사망한다. 그의 이름은 질 댄도. BBC 방송사의 유능한 진행자이자 '크라임워치'라는 범죄 제보 프로그램을 맡고 있었다. 대낮에 주택가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영국은 큰 충격에 빠지고 경찰은 대대적인 수사에 들어간다. 

여성 앵커 질 댄도가 환하게 웃고 있다
Who Killed Jill Dando? / 넷플릭스 공식홈 캡처

누가 질 댄도를 죽였나?

: 2023년 9월 공개. 넷플릭스 오리지널. 3부작. 실화를 다룬 범죄 다큐멘터리.

당시 질 댄도는 자택이 아닌 약혼자의 집에서 살고 있었다. 팩스로 온 문서를 보러 잠시 집에 들르는 타이밍에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래서 경찰은 그녀의 스케줄을 잘 알고 있을 만한 주변 인물들부터 조사한다. 하지만 별다른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는다.


사건 현장에서 수집된 쓸만한 목격담은 두 가지였다. 검정색 머리의 남자가 뛰다가 버스 정류장에서 멈춰 섰다는 것과 파란색 레인지로버가 급히 떠났다는 것. 하지만 어이 없게도 사건 당시 그 정류장을 지나간 버스들의 CCTV를 빨리 확보하지 않아 경찰이 움직였을 땐 이미 다 지워진 상태였다. 

범인이 금방 잡힐 것 같았던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질 댄도가 애정을 갖고 진행했던 '크라임워치'에서 질 댄도를 죽인 범인을 수배한다. 제보가 쏟아져 들어오지만 이번엔 너무 많은 정보가 수사를 힘들게 만든다. 버스 정류장의 남자가 자기 같다는 사람까지 나타났으나 조사 끝에 범인에서 제외된다. 마약 조직 개입, 국제적인 문제의 발언에 대한 보복이라는 제보도 들어오지만 거짓 또는 신빙성이 없다고 판명된다. 

그러던 중 수사망에 포착된 유력한 용의자 배리. 그를 캐면 캘수록 수상한 점이 쏟아져 나온다. 급기야 유죄 판결을 받고 감옥에 갇힌다. 하지만 재심을 받고 8년 만에 다시 풀려난다. 담당 형사는 여전히 그가 범인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그는 절대로 질 댄도를 죽이지 않았다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질 댄도를 죽인 진짜 범인은 과연 누구일까? 



다큐 초반과 마지막에 나오는 영상이 있는데, 질이 어떤 방송에서 '크라임워치를 보면 걱정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고 답을 하는 장면이다. "걱정되죠, 그런데 사실 그런 범죄는 드물어요. 거리에서 나도 같은 일을 당할 거란 생각은 안 하죠".

이 다큐멘터리를 보는 동안 생각나는 드라마가 있었는데 바로 '멘탈리스트'이다. 주인공 제인은 방송에서 범죄자 레드 존에 대해 한 마디 했다가 그에게 부인과 딸을 잃는다. 질 댄도 역시 저 발언 때문에 범인의 타겟이 된 것은 아닐까? 자신을 신(God)이라 여기고 사람 목숨을 장난감처럼 갖고 노는 과대망상자가 저 말에 꽂혀버린 건지도 모른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너도 같은 일(범죄)을 거리에서 당하게 해주마'. 그렇게 질 댄도를 죽일 계획을 세우고 길거리에서 실행. 1999년부터 현재까지 미제 사건으로 남았으니, 범인은 얼마나 신이 났을까? 만약 자유로운 몸이라면 이 넷플릭스 다큐도 나오자마자 보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 정도면 '내가 죽였다'고 동네방네 광고하고 싶을 것이다. 진짜 좀 그래주면 좋겠다.

너무나 아까운 사람이 한낮 범죄자 따위에게 희생되었다. 앞으로 얼마의 세월이 더 걸리든 범인이 꼭 잡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