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16

아네모네 마담 - KBS TV문학관 (정영숙 홍요섭 김보미)


밤 아홉시만 되면 아네모네 찻집에 나타나는 어느 대학생. 그는 늘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틀어 달라 신청하고는 마담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가버린다. 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마담과 대학생이 손을 맞잡고 있다
KBS TV문학관 아네모네 마담. 예고편 캡처

UHD로 만나는 TV문학관 "아네모네 마담"


: 제 205화. 1985.11.16 방영. 2023.07.16 재방영. 주요섭 원작, 박병우 극본. 이윤선 연출.
정영숙, 홍요섭, 김보미, 김진애, 김종결, 양재성, 김진태, 권성덕, 황범식, 반석진, 김기복, 이원발, 강양례, 홍순석, 유영희, 고아라 출연.





아네모네 다방을 운영하는 영숙(정영숙)은 매일 같은 시간에 나타나는 대학생(홍요섭)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는 영숙을 뜨거운 눈길로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건네지 않는다. 마담은 점점 그 이름 모를 대학생에게 마음이 기운다. 그가 고백해오기 만을 기다리며 상상의 나래를 마구 펼친다. 영업이 끝나고 텅 빈 다방에서 그가 늘 앉는 자리를 맴돌며 사랑을 고백하기도 한다. 

옷에 신경을 쓰고 평소에 안 하던 귀걸이까지 하는 영숙을 보며 너도나도 한마디씩 한다. 영숙은 그에게 귀걸이로 멋을 낸 자신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대학생은 무슨 이유인지 갑자기 발길을 뚝 끊는다.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는 영숙은 그저 속이 탈 뿐이다. 

그렇게 답답하고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그 대학생이 돌연 낮에 찾아온다. 영숙은 그를 위해 미완성 교향곡을 틀어준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큰소리를 내더니 전축에서 레코드 판을 꺼내 사정 없이 부숴버린다. 일행인 친구(김기복)가 그를 다급히 데리고 나간다. 

그날 저녁, 대학생의 친구가 찾아와 자초지종을 말해준다. 사실을 알게 된 영숙은 큰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짧지만 달콤했던 꿈에서 깨어난다.




반전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자세히 쓰지 않았다. 이왕이면 드라마를 직접 보시길 바란다. 마담이 대학생을 예술가로 상상하는 장면이 유독 재미있다. 주 줄거리 외에 다방 단골 예술가들의 얘기도 쏠쏠한 재미를 준다. 무용가(김진애), 시인(김진태), 화가(김종결), 소설가(양재성), 영화감독(권성덕), 배우...... 일제 강점기 시대의 인물이 실명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대사도 시적인 표현이 많다. 여러모로 추천!

아네모네의 꽃말이 여러가지인데 '괴로운 사랑', '이룰 수 없는 사랑'이 눈에 띈다. 영숙의 대사 중에 '우리 사이엔 건널 수 없는 깊고 넓은 바다가 있어요' 이 표현이 기억에 남는다. 

마담이 대학생을 슬며시 바라보고 있다
KBS TV문학관 아네모네 마담. 마담 역의 정영숙




눈길 - KBS TV문학관 (안영주 민욱 염복순)


서울에서 바쁘게 살고 있는 경수(민욱)는 형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오랜만에 시골에 내려간다. 1년에 한번 갈까 말까 한 그곳엔 어머니(안영주)가 있었다.


어머니가 아들을 눈으로 배웅하고 있다
KBS TV문학관 눈길. 웨이브 캡처

UHD로 만나는 TV문학관 "눈길"


: 제 115화. 1984.01.07 방영. 2023.07.03 재방영. 이청준 원작. 이은교 극본. 김재현 연출. 안영주, 민욱, 염복순, 남윤정, 신수강, 김인문, 반문섭, 이한승, 김상낙, 박현정, 안광진, 박상만, 전영미, 아역 권오현, 이종민, 박헌성 출연.


경수의 어머니는 아들과 둘째 며느리(염복순), 손자(이종민)를 몹시 반긴다. 경수는 어머니를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목소리를 높인다. 이[치아]를 치료하라고 보낸 돈을 어머니가 생활비로 썼다고 하는 것이다. 경수는 생활비를 따로 챙겨드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 큰 돈을 어디에 썼는지 아들에게 말하지 않는다.  

제사 준비로 바쁜 집에 이장(김인문)이 찾아와 집 수리에 동참하라고 채근한다. 어머니는 아들이 들을 새라 그의 말을 끊는다. 솔직히 이 집에서 목돈이 나올 구멍은 경수 뿐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에게 부담이 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원래부터 집안 형편이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큰 아들 용수(반문섭)가 도박에 미쳐 전 재산을 날린 탓이었다. 부인(남윤정)이 사경을 헤맬 때도 그는 도박판에 있었다. 화가 날 대로 난 어머니는 아들이 대문을 부술 듯 두들겨도 열어주지 않았다. 용수는 동네 움막 같은 곳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경수는 동네 사람들과 술을 마시다 어머니가 어디에 돈을 썼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술에 잔뜩 취해서는, 자신을 마중 나온 어머니에게 반복해서 얘기한다. "나는 어머니에게 빚진 거 없다"고. 어머니는 길을 되짚어 가며 아들이 흘린 신발을 찾아온다. 이를 본 경수의 부인은 어머니에게 냉정한 남편이 야속할 뿐이다.

사실 어머니는 아들이 준 돈으로 자신이 묻힐 땅[집터]과 수의, 꽃상여를 마련해 놓았다. 손자들은 언제 새집을 짓느냐고 묻는다. 어머니는 2층으로 집을 짓고 마당에는 잔디도 입힐 거라고 답해준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환호하고 어머니는 혼자만 아는 웃음을 짓는다. 경수의 부인은 시어머니가 과거 얘기를 꺼내도록 자꾸 묻는다. 

어머니와 아들이 눈길을 걸어가고 있다
KBS TV문학관 눈길. 웨이브 캡처

다른 지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던 경수(권오현)가 급히 집에 온다. 텅 빈 방에는 경대 하나만 남아있다. 밤에 눈이 펑펑 내리고 어머니는 아들의 신발에 쌓인 눈을 턴다. 다음날, 떠나는 아들을 배웅하던 어머니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버스 정류장까지 가게 된다. 그리고 눈밭에 남아있는 두 사람의 발자국을 친구 삼아 돌아간다.

이때 집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간 상태였다. 하지만 새 주인에게 부탁해서 하룻밤 아들과 지낸 것이다. 경수도 집에 문제가 생긴 것을 알고 달려온 것일 텐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어머니는 담담히 회상한다. 다른 방에서 어머니의 얘기를 듣고 있던 경수는 눈물을 흘린다. 그간 형 대신 가장 노릇하며 어머니에게 냉정했던 자신에 대한 참회였다. 


* 줄거리를 써 놓고 보니 어찌 보면 평범하다. 소설에서는 아들이 어머니를 '노인'으로 지칭한다고 하니 감정의 골이 더 크게 그려지는 모양이다. 자식이라면 부모를 돌보는 게 도리이긴 하지만, 혼자 힘으로 출세해 오랜 세월 가장 역할을 하고 있는 자식이라면 그 고단함과 고충에서 비롯되었을, 어머니에 대한 원망도 이해가 간다. 티브이 문학관 '눈길'은 아들이 어머니의 사랑을 새삼 느끼고 우는 것까지만 보여준다. '어머니 제가 앞으로는 자주 자주 뵈러 올 게요 부디 건강하세요' 따위의 대사는 이어지지 않는다. 절제 되고 깔끔한 연출이 돋보인다. 추천! 


2023-07-14

소리의 빛 - KBS TV문학관 (전무송 김성녀 김성겸)


예고를 보자마자 기시감에 시달렸다. 이거 아는 내용인데? 영화 서편제? 아니나 다를까, 같은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었으니 내용이 거의 같을 수밖에.


TV문학관 소리의 빛. 전무송, 김성녀. 유튜브 캡처


UHD로 만나는 티브이문학관 '소리의 빛'


: 제100회. 1983.09.17 방영. 2023.06.26 재방영. 원작 이청준 연작소설 '남도소리'중 2편. 이희우 극본. 김홍종 연출. 전무송, 김성녀, 김성원, 김성겸, 조용원, 여운계, 이일웅, 아역 최호창, 김민희 등 출연.

=== 줄거리 나옵니다. 스포 주의하세요 ===

교도소에서 나온 한 사내(전무송). 선학동이라는 동네를 찾아가서 하룻밤 묵기를 청한다. 사내는 옛 생각에 젖는다.

사내(최호창)의 엄마는 아기를 낳고 죽었다. 아기의 아빠는 사내의 친아빠가 아니고 떠돌던 소리꾼(김성겸)이었다. 소리꾼은 사내의 집과 재산도 다 팔아버리고 엄마까지 죽게 만든 원수였다. 하지만 사내는 그런 죽일 놈을 아버지로 여기며 살아가야 했다. 소리꾼은 사내가 목청이 좋다며 무조건 소리를 배워야 한다고 강요했다. '소리가 하늘에 닿으면 소리 속에서 학이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학을 못 보았으니 네가 대신 봐야 한다'.


사내는 소리꾼이 자는 동안 그를 죽이려 했으나 실패했다. 엄마에 대한 복수심에 활활 불타오르다가도 소리꾼의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흔들렸다. 사내는 복수 대신 의붓아비와 배다른 여동생(김민희)에게서 도망쳤다.  

세월이 흐르고 사내는 전국을 돌며 부녀를 찾아다녔다. 그러다 듣게 된 소식은 거렁뱅이가 된 두 사람을 판소리 애호가 최부잣집에서 받아주었는데, 자신이 병든 것을 알게 된 소리꾼이 폐 끼치는 게 싫어서 떠나버렸다는 것이다. 그때 여동생(조용원)은 이미 맹인이 된 상태였다.

사내는 주막의 남자 주인(김성원)에게 여자 소리꾼[여동생]에 대해 묻지만 주인은 모른다고 시치미를 뗀다. 그러자 사내는 여동생이 어떻게 맹인이 되었는지 말해준다. 소리꾼은 청강수[독약]를 얻어다가 자고 있는 딸의 눈에 떨어뜨렸다. 가슴에 한을 심어준다는 명목으로. 하지만 사내가 보기엔 딸이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고 그런 것일 뿐. 이 얘기를 들은 주인은 분개하면서도 입을 열지 않는다.  


또 세월이 흐르고 사내는 결국 맹인 여자 소리꾼(김성녀)을 만나게 되었다. 여자 소리꾼은 실어증 걸린 것처럼 목청을 닫아버린 상태였는데 사내에게는 거짓말처럼 소리를 들려준다. 사내는 여자에게 어릴 적 얘기만 꺼내고 아는 체를 하지 않는다. 여자도 마찬가지다. 사내가 간 뒤 여자는 다른 사람(이일웅)에게 말한다. 오래비가 다녀갔다고. 아는 체를 하지 않은 건 오래비 눈에 살기가 도는 것을 보아서라고 한다. 아비와 자신을 하나로 느껴서 이번에도 (살인 하기 전에) 도망가버린 것이라고. 사내는 담 뒤에서 여자의 얘기를 다 엿듣고는 그대로 떠나버린다.

급기야 사내는 주막 주인에게 몽둥이를 휘두르며 위협한다. 그제야 주인은 얘기를 들려준다. 여자 소리꾼이 아비의 유골을 갖고 찾아왔었다고. 동네 어딘가에 몰래 묻고는 사라졌는데 그때부터 동네에 다시 학이 날아다닌다고. 얘기를 안 했던 건 여자 소리꾼이 신신당부를 해서였다고 한다. 누군가 자신을 찾으면, 자신에 대한 얘기를 먼저 하기 전에는 절대로 얘기를 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 주인에게서 얘기를 다 들은 사내는 정처 없이 발길을 옮긴다.......

TV문학관 소리의 빛. 김성겸, 조용원. 유튜브 캡처


이유야 어찌 됐든 아비가 딸의 눈을 멀게 만드는 부분은 소름이 돋다 못해 화가 뻗친다. 소설에서는 눈의 기운을 목으로 가게 해서 목소리를 좋게 만들려고 했다는 설명도 있었던 것 같다. 아니 대체 그놈의 소리가 뭐라고. 사내가 어렸을 때부터 소리꾼에게 살의를 품은 게 너무나 이해가 간다. 더구나 여동생까지 장애인으로 만든 것을 알게 되었다면, 아무리 애증의 관계라고 해도 동생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감까지 더해질 것 같다.

복수하고 싶은 대상은 사라지고 만나고 싶은 대상도 사라지고 나이만 먹어버린 주인공의 인생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오랜 세월에 걸쳐 켜켜이 쌓인 복잡다단한 감정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다 보고나니 고구마 백개는 삼킨 것 같지만 깊은 울림과 먹먹함을 주는 작품이다. 추천.
 


* 소리꾼으로 나온 김성겸 배우 하면 '하늘아 하늘아'에서 괴팍한 영조로 나왔던 게 잊혀지지 않는다. 사도세자로 나왔던 정보석이 어찌나 불쌍했던지. 혜경궁 홍씨 하희라도 그렇고. 여기서도 정말 욕 나오는 역으로...... (역사의 평가와는 별개로 드라마 속에서 그랬다는 것이다)


* 영화 서편제는 우리나라 영화 역사상 최초로 일백만명 넘는 관객을 동원한 작품이다. 아직 안 보신 분은 티브이문학관과 비교해서 보는 것도 좋겠다.

* '소리의 빛'이 조용원 배우의 TV 데뷔작이라고 한다. 오랜만에 보니 너무 반갑다.

TV문학관 소리의 빛. 조용원. 유튜브 캡처

백치 아다다 - KBS TV문학관 (김일란 김인문 장학수)


선천적으로 지능이 낮고 언어 장애를 가진 주인공 아다다(김일란). '확실'이라는 이름이 있는데도 아다다로 통한다. 무려 양반 신분인 김초시(이일웅)의 딸이지만 타고난 모자람 때문에 애들한테 놀림을 당하고 집에서도 구박받는다. 이 집에는 수롱(김인문)이라는 머슴이 있었는데 아다다와 서로 마음이 있는 사이였다.


아다다가 헛간에 숨어 울상을 짓고 있다
TV문학관 '백치 아다다'


UHD로 만나는 TV문학관 아홉 번째 작품 "백치 아다다"


: 1983.06.11 방영. 2023.05.01 재방영. 계용묵 원작. 유열 극본. 주일청 연출. 김일란, 김인문, 장학수, 김난영, 이일웅, 여운계, 이치우, 남윤정, 곽정희, 전원주, 박용식, 이대로, 홍영자 등 출연.

=== 줄거리 나옵니다 스포 주의 ===

수롱은 혼자서 몇 사람 몫을 해내는 뛰어난 일꾼이긴 했지만, 김초시의 입장에선 딸의 짝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아다다를 며느리 삼으려 하는 집은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수롱과 맺어주려 하는데 일이 터진다. 만석(장학수)이라는 놈이 아다다를 좋아한다면서 강간을 해버린 것이다.  

만석의 아비(이치우)는 쫓겨날 것을 각오하고 김초시 집에 사과를 하러 온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이 집과 혼담이 오간다. 김초시는 천애고아 수롱보다는 부모라도 있는 만석을 사위 삼기로 결정한 것이다. 땅과 함께 시집간 아다다는 남편과 시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산다. 하지만 만석이 김초시로부터 받은 땅을 구리 광산에 투자하고 이게 대박이 나면서 아다다의 행복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돈맛을 알아버린 만석은 아다다를 천대하고 자꾸 친정에 가게 한다. 하지만 아다다의 부모는 죽어도 시댁에서 죽으라며 아다다를 내치기 일쑤다. 아다다는 시댁에서 유령처럼 숨어 살고 만석은 급기야 여자(남윤정)를 집에 데려온다. 친정에 있는 줄 알았던 아다다가 집에 있는 것을 본 만석은 죽일 듯이 아다다를 협박해서는 완전히 내쫓아버린다.

딸을 걱정하면서도 못 참아하던 아다다의 모친(김난영)은 아다다가 된장 항아리를 깨뜨리자 그간 쌓였던 분노가 터지면서 그녀를 마구 때린다. 집에서 도망쳐 나온 아다다는 차마 죽지 못하고 어느 집을 찾아간다. 거기엔 수롱이 혼자 살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된 두 사람은 동네를 버리고 새로운 곳으로 떠난다. 여전히 아다다를 아끼는 수롱은 그녀에게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며 평생 모은 돈을 보여준다. 하지만 아다다는 돈이 생기자 무섭게 변해버린 만석이 떠오를 뿐이었다. 수롱이 고깃배를 사서 부자가 되면 만석처럼 되어버릴까봐 공포에 사로잡힌다. 전전긍긍하던 아다다는 수롱의 돈에 불을 지르고는 집을 뛰쳐나간다.
 
수롱이 집에 돌아왔을 땐 그의 전재산은 이미 재가 된 뒤였다. 그야말로 돌아버린 수롱은 아다다를 찾아서 그녀를 물속에 마구 처박는다. 대체 왜 그랬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아다다는 영원히 대답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있었다. 망연자실한 수롱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 바다를 향해 몸을 날린다. 아다다를 목놓아 부르면서. 
 

 
다 아는 내용이지만 다시 보고 나니 속이 터지다 못해 울분이 치솟는다. 핵고구마를 넘어서 핵폭탄 수준이다. 아다다가 원해서 장애를 가진 것도 아닌데 어떤 경우든 버팀목이 돼주어야 할 부모조차 딸을 외면하고, 결국은 아다다가 좋아했고 아다다를 진심으로 좋아한 수롱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게 너무나 비극적이다. 정작 중요한 것을 놔두고 허울과 명분을 좇은 결과가 어떤 비극을 가져오는지 이 작품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매를 맞은 아다다가 집에서 나와 절벽 앞에 섰다가 차마 뛰어내리지 못하고 여기저기 혼자 돌아다니는 장면이 있는데, 그 어떤 장면보다도 슬프게 느껴진다. 숱한 드라마에서 조연 내지 단역으로만 보았던 김일란 배우의 연기는 정말 끝내준다. 👍👍👍

영화 백치 아다다에서 주연을 맡은 신혜수 배우
영화 '아다다' 포스터. 다음 이미지

* 영화 '아다다'에서 신혜수 배우의 연기도 좋았다. 다음에서 이 영화를 검색하면 오른쪽 포스터가 나오는데 좀 바꿔야 하지 않을까? 무슨 19금 성인영화처럼 만들어 놓았다. 

* 1970년대에 MBC에서 일일 드라마로 만들었었다고 한다. 정영숙, 백일섭 주연.





꽃신 - KBS TV문학관 (강석우 이경진 이신재)


꽃신을 만드는 꽃신장이(갖바치)의 딸 분이와 소를 잡는 백정의 아들 상도. 이들은 이웃사촌으로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내왔다. 단, 아버지끼리는 사이가 좋지 못했는데 꽃신장이가 백정을 천하게 여긴 탓이다. 백정이란 직업이 역사적으로 워낙 천대를 받았던 터라 그가 그러는 게 유난하다고 할 순 없지만, 꽃신을 만들 때 소가죽을 사용하면서도 그러니 어불성설이라고 하겠다.

TV문학관 꽃신 - 이경진 / 강석우 (유튜브 캡처)

UHD로 만나는 TV문학관 여덟 번째 작품 "꽃신"


: 1983.05.28 방영. 2023.04.24 재방영. 김용익 원작. 김하림 극본. 이유황 연출. 강석우 이경진 이신재 김난영 문오장 정재순 하대경 홍영자 신수강 오중훈 박정웅 공경구 김일란 이제신 이현정 조재훈 박승규 최우백 안정훈(아역) 이희경 안대선 최마리아 출연.


세월이 흐르고, 장인정신으로 만드는 꽃신은 고무신과 서양 구두에 밀려난다. 혼인 때나 신을 수 있는 특별한 신발이라는 의미도 퇴색해버렸다. 하루에 한 켤레 팔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지만 꽃신장이(이신재)는 오로지 꽃신만 고집한다.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빚이 늘어가도 다른 기술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 급기야 홀아비 최부잣집으로 하나 뿐인 딸이 종 살이를 하러 가도 고집을 꺾지 않는다. (진짜 너무 하십니다~)


일편단심 분이만 바라보았던 상도는 분이네 집에 달려가 딸과의 혼인을 허락해달라고 한다. 분이의 모친(김난영)은 진심으로 좋아하지만 곧 불호령이 날아든다. "꽃신장이가 아무리 망했어도 고깃간 자식에게 딸을 줄성 싶으냐!" 한마디로 상놈의 자식에겐 내 딸을 줄 수 없다 버럭버럭. 꽃신장이를 아주 싫어했던 상도의 부친(문오장)조차 혼인을 허락하고 그 집 빚까지 갚아줄 생각이었는데, 자존심만 세우는 꽃신장이로 인해 모든 것이 어긋난다.

상도는 최부잣집으로 달려가 분이에게 함께 도망가자고 한다. 다음날 만나기로 약속하지만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최부잣집 일꾼들이었다. "분이는 곧 안방마님이 될 아가씨란 말여!" 몽둥이찜질을 당하고 분이를 포기한 상도는 폐인처럼 산다. 보다 못한 부모는 동네를 떠나 친척집에 가 있게 한다. 그 뒤 전쟁이 일어나고 시간이 흐른다. 상도는 꽃신장이를 찾아 나서고 사는 곳까지 알게 된다.


다시 찾아갔을 땐 분이의 모친이 꽃신을 팔고 있었다. 모친은 눈물을 쏟으며 그간 있었던 일들을 털어놓는다. 분이가 갑자기 집에 돌아왔는데, 최부자가 '빚을 다 갚았으니 돌아가라'고 했다는 것(상도와 도망가기로 약속한 날 강간을 당한 듯). 정신이 나간 분이는 원래 살던 동네의 강이 보고 싶다고 하더니 집을 나가버렸고 얼마 뒤 그 강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꽃신을 신은 채로. 그 강은 분이와 상도 두 사람의 어릴 적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곳이었다. 

햐.... 인간적으로 이야기가 너무 슬프다. 꽃신장이가 죽기 전에 후회하며 자기 잘못을 반성하긴 하지만 쌍욕이 나올 뿐. 사람이 자존심만 내세울 때 어떤 결과가 올 수 있는지 그 최대치의 비극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마지막에 상도가 예전에 살았던 집을 한참 둘러볼 때 혹시나 무슨 반전이 있는 건 아닐까 기대를 해보았으나....... 분이와 상도가 너무 불쌍해서 오래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하다.

TV문학관 꽃신 - 상도로 나온 강석우

* 분이의 아역으로 나온 배우가 아무리 봐도 이종희 같아서 찾아보니 맞다. 1993년 제2회 한국 슈퍼모델 선발대회 1위.

* 1978년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