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14

꽃신 - KBS TV문학관 (강석우 이경진 이신재)


꽃신을 만드는 꽃신장이(갖바치)의 딸 분이와 소를 잡는 백정의 아들 상도. 이들은 이웃사촌으로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내왔다. 단, 아버지끼리는 사이가 좋지 못했는데 꽃신장이가 백정을 천하게 여긴 탓이다. 백정이란 직업이 역사적으로 워낙 천대를 받았던 터라 그가 그러는 게 유난하다고 할 순 없지만, 꽃신을 만들 때 소가죽을 사용하면서도 그러니 어불성설이라고 하겠다.

TV문학관 꽃신 - 이경진 / 강석우 (유튜브 캡처)

UHD로 만나는 TV문학관 여덟 번째 작품 "꽃신"


: 1983.05.28 방영. 2023.04.24 재방영. 김용익 원작. 김하림 극본. 이유황 연출. 강석우 이경진 이신재 김난영 문오장 정재순 하대경 홍영자 신수강 오중훈 박정웅 공경구 김일란 이제신 이현정 조재훈 박승규 최우백 안정훈(아역) 이희경 안대선 최마리아 출연.


세월이 흐르고, 장인정신으로 만드는 꽃신은 고무신과 서양 구두에 밀려난다. 혼인 때나 신을 수 있는 특별한 신발이라는 의미도 퇴색해버렸다. 하루에 한 켤레 팔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지만 꽃신장이(이신재)는 오로지 꽃신만 고집한다.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빚이 늘어가도 다른 기술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 급기야 홀아비 최부잣집으로 하나 뿐인 딸이 종 살이를 하러 가도 고집을 꺾지 않는다. (진짜 너무 하십니다~)


일편단심 분이만 바라보았던 상도는 분이네 집에 달려가 딸과의 혼인을 허락해달라고 한다. 분이의 모친(김난영)은 진심으로 좋아하지만 곧 불호령이 날아든다. "꽃신장이가 아무리 망했어도 고깃간 자식에게 딸을 줄성 싶으냐!" 한마디로 상놈의 자식에겐 내 딸을 줄 수 없다 버럭버럭. 꽃신장이를 아주 싫어했던 상도의 부친(문오장)조차 혼인을 허락하고 그 집 빚까지 갚아줄 생각이었는데, 자존심만 세우는 꽃신장이로 인해 모든 것이 어긋난다.

상도는 최부잣집으로 달려가 분이에게 함께 도망가자고 한다. 다음날 만나기로 약속하지만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최부잣집 일꾼들이었다. "분이는 곧 안방마님이 될 아가씨란 말여!" 몽둥이찜질을 당하고 분이를 포기한 상도는 폐인처럼 산다. 보다 못한 부모는 동네를 떠나 친척집에 가 있게 한다. 그 뒤 전쟁이 일어나고 시간이 흐른다. 상도는 꽃신장이를 찾아 나서고 사는 곳까지 알게 된다.


다시 찾아갔을 땐 분이의 모친이 꽃신을 팔고 있었다. 모친은 눈물을 쏟으며 그간 있었던 일들을 털어놓는다. 분이가 갑자기 집에 돌아왔는데, 최부자가 '빚을 다 갚았으니 돌아가라'고 했다는 것(상도와 도망가기로 약속한 날 강간을 당한 듯). 정신이 나간 분이는 원래 살던 동네의 강이 보고 싶다고 하더니 집을 나가버렸고 얼마 뒤 그 강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꽃신을 신은 채로. 그 강은 분이와 상도 두 사람의 어릴 적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곳이었다. 

햐.... 인간적으로 이야기가 너무 슬프다. 꽃신장이가 죽기 전에 후회하며 자기 잘못을 반성하긴 하지만 쌍욕이 나올 뿐. 사람이 자존심만 내세울 때 어떤 결과가 올 수 있는지 그 최대치의 비극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마지막에 상도가 예전에 살았던 집을 한참 둘러볼 때 혹시나 무슨 반전이 있는 건 아닐까 기대를 해보았으나....... 분이와 상도가 너무 불쌍해서 오래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하다.

TV문학관 꽃신 - 상도로 나온 강석우

* 분이의 아역으로 나온 배우가 아무리 봐도 이종희 같아서 찾아보니 맞다. 1993년 제2회 한국 슈퍼모델 선발대회 1위.

* 1978년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2023-07-13

꿈 - KBS TV문학관 (정종준, 하미혜, 박상규)


MBC에 베스트셀러극장이 있다면 KBS에는 TV문학관과 드라마게임이 있었다. KBS는 유튜브에 '옛날TV'라는 채널을 만들어 추억의 드라마를 많이 올려놓았다. <꿈>도 올려져 있어서 실로 몇십 년 만에 다시 보았다. 감동~😭


조신스님과 달희가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TV문학관 꿈. 유튜브 캡처

UHD로 만나는 TV문학관 "꿈"


: 제96화. 1983. 08. 20일 방영. 2023.05.29 재방영. 
김재현 연출. 최경식 극본. 이광수 원작.
정종준, 
하미혜, 박상규, 황민, 이대로, 최주봉, 곽정희, 김기복, 이일웅, 공경구, 임성민, 최현철, 최용호, 박선희, 정민, 이창원, 최재현, 이두섭 출연.


정보를 찾아보며 새롭게 안 사실은 이 화의 원작이 김성동의 소설이 아닌 이광수의 소설 '꿈'이라는 것. 김성동의 '꿈'도 내용은 같다. 진짜 원작을 따진다면 삼국유사에 실려있는 '조신의 꿈' 설화일 것이다. 스포일러 주의를 외치기엔 제목이 이미 강력한 스포다. 그래도 외쳐볼까나? 줄거리 나옵니다. 주의하세요~


조신 스님이 있는 절에 달희라는 여성이 온다. 절에는 달희의 엄마가 모셔져 있다. 조신은 달희와 얘기를 나누다 그녀가 아버지에게 떠밀려 약혼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의 마음은 달희에게 향하고 스님으로 사는 것에 마음이 떠버린다. 조신의 번뇌를 알아챈 큰스님이 달희와 맺어지게 해 줄 테니 3일 동안 기도를 올리라고 한다. 그는 신나게 목욕 재계하고 목탁을 두드리며 열심히 염불을 외운다. 절에서 묵고 있던 달희는 조신을 불러내고, 두 사람은 얘기를 나누다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도망치기로 한다. 

조신 스님이 목탁을 치고 있다
KBS TV문학관 꿈. 유튜브 캡처

조신이 배를 봐 둔 곳에 동료 스님 평목이 와있었다. 평목은 큰스님이 시켰다며 새 장삼을 건네준다. 두 사람은 어딘지 모를 곳에 가서 동네 사람의 도움으로 자리를 잡는다. 아이도 낳고 이제 좀 잘 살아보려는데 평목이 나타난다. 멀리 도망간 줄 알았더니 이렇게 가까이 있었냐면서 달희의 아버지와 약혼자가 두 사람을 찾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준다. 마음이 급해진 두 사람은 다시 도망가는데 그 와중에 아이가 죽고 만다. 세월이 한참 흐르고, 두 사람은 딸을 키우며 살고 있다. 탁발을 다니던 평목은 달희를 닮은 여학생을 보고 따라가는데 그곳에서 달희와 눈이 마주치고 서로를 알아본다.


조신은 평목을 반가워하며 하룻밤 묵어가게 한다. 평목은 달희의 약혼자가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다며 둘이 도망가는 바람에 절이 망하고 그 때문에 자신도 전국을 떠돌게 되었다고 은근히 조신을 탓한다. 더 나아가 자기도 달희한테 마음이 있었다며 이제와 달례를 넘볼 순 없고 딸을 (부인으로) 달라고 한다.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은 소리를 들은 조신은 분노에 겨워 평목을 죽여버린다. 그리고는 마을 어딘가에 자살한 듯 위장시켜 놓지만, 집에서 미처 치우지 못한 평목의 바랑(짐보따리)을 순사가 발견하면서 조신은 감옥에 갇힌다.

그를 찾아오는 사람이라고는 딸 뿐이고 부인은 그 아버지에게 붙들려 오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도망칠 당시 큰스님이 주셨다는 장삼을 입고 조신은 교수대에 선다. 목이 매달리는 순간,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는 조신을 보고 스님들이 껄껄껄 웃는다. 파란만장한 꿈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은 조신은 세상이 그저 다 예뻐 보일 뿐이다. 달희는 약혼자와 집으로 돌아가고 조신은 달희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준다. 그리고 꿈을 꾸기 전엔 망설였던 참선 수행에 기꺼이 들어간다.     


나도 이런 꿈을 꾸면 정신이 확 들 것 같다. 그런데 만약 조신의 꿈 내용이 해피엔딩이었다면?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온 가족 잘 먹고 잘 살다가 극락왕생하는 결말이었다면? 대리만족해 봤으니 그걸로 되었다~ 할 수도 있겠지만, 속세의 삶에 미련을 못 버리고 결국엔 절을 뛰쳐나가는 스토리가 나왔을 수도 있지 않을까?
 
'꿈'이란 말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잠을 잘 때 보는 환각도 꿈이고, 미래에 하고 싶은 희망사항도 꿈이고, 현실성 없는 얘기도 꿈이라 하고. 어릴 때부터 가졌던 꿈을 이룰 가능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데 버리지도 못하고 이루지도 못하고 꿈에 계속 휘둘리며 살고 있으니 이렇게 깨끗이 깰 수 있는 꿈이 부러울 뿐이다.  

KBS 티비문학관 꿈. 왼쪽부터 박길라, 하미혜, 임성민, 박상규. 유튜브 캡처

* 조신의 딸로 나오는 박선희는 '박길라'라는 예명으로 가수로 활동한다. 20대 초반 콘서트 도중 심장 발작으로 돌아가셨다고. 노래를 들어보면 목소리가 정말 맑은데.. 너무 아깝다.

 
* 출연자 중에 임성민이 있길래 설마 했더니 미남 배우의 대명사 그 임성민이 맞았다. 꿈에서는 여주인공의 약혼자로 나오는데 풋풋한 소년미마저 느껴진다. 간경화로 39세에 요절. 드라마를 하차하고 치료에 전념했다면 어땠을지 생각할수록 안타까울 뿐이다.
 
* 평목 스님으로 나온 박상규는 국립극장 전속 배우였다. 그가 주인공으로 나온 '간계와 사랑'이라는 연극을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보았는데 아주 멋있었다. 내 뒷자리에 당시 신인이던 신애라 배우가 앉아있던 게 추억이라면 추억이다.

* 극에 나오는 절은 변산 내소사. 전북 부안군 소재. 사찰과 더불어 전나무숲길이 유명하다.


카인의 후예 - KBS TV문학관 (민욱 김진해 김미숙 임혁)


1946년, 동네잔치 중인 양지면에 공산당원들(임혁 외)이 나타난다. 이들의 목적은 박훈(민욱)을 비롯한 마을 지주들에게서 땅과 재산을 빼앗는 것이다. 땅을 빌려 먹고살던 소작농민들은 땅을 가질 수 있게 해주겠다는 공산당의 선동에 넘어가 지주들을 숙청하는 일에 앞장선다.
 
박훈과 도섭 영감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TV문학관 카인의 후예. 웨이브 캡처

UHD로 만나는 TV문학관 여덟 번째 작품 "카인의 후예"


: 1983년 방영. 2023.04.17 재방영. 황순원 원작. 이재원 극본. 장기오 연출. 민욱, 김진해, 김미숙, 임혁, 강민호, 양영준, 이구순, 김종결, 안광진, 박상만, 이두섭, 정종준, 이수연, 봉혜선, 이난희, 장순철, 장희진, 박현정, 최용호, 이원종, 김동완, 유순철, 이한수, 구우룡, 윤성국, 신원균 출연.


이 일에 가장 나서는 사람은 박훈의 집안에서 충직하게 일했던 도섭 영감(김진해)이다. 박훈의 집 살림을 도와주고 있었던 그의 딸 오작녀(김미숙)는 아버지로부터 몽둥이찜질을 당해도 그 집을 떠나지 않는다. 심지어 박훈과 부부가 되었다고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박훈을 지키는 일에 혼신을 다한다.



딸 때문에 일이 틀어진 도섭 영감은 과거에 자신이 세웠던 박훈 집안의 공덕비를 때려 부수고, 공산당이 되어 나타난 오작녀의 전 남편(강민호)은 박훈에게 오작녀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하라며 주먹을 날린다. 박훈은 그간 오작녀에게 선을 긋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서로 좋아했지만 신분의 차이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소문이 도는 사이. 그는 사촌동생 혁(이구순)의 설득으로 마을을 떠나기로 결정하면서 오작녀와 함께 가기로 마음먹는다. 

그 와중에 실종된 혁의 아버지 박용제(양영준)가 마을에 나타나는데 도섭 영감의 고자질로 죽임을 당하게 된다. 혁은 도섭 영감을 죽이겠다고 박훈에게 알린다. 어렸을 때 죽을 뻔한 자신을 도섭 영감이 구해줬었는데 그가 더 무섭게 변하기 전에  죽여주는 것이 그 은혜를 갚는 길인 것 같다면서. 그 말을 들은 박훈은 그 일을 자신이 하기로 결심하고, 오작녀에게 편지를 쓰지만 결국은 없애버린다. 한편 공산당은 도섭 영감의 아들 삼득이 지주 박용제의 묏자리를 준비해 줬다는 이유로 영감을 쫓아내 버린다. 지주와 농민 사이를 효과적으로 이간질하기 위해 선택된 사람이 도섭 영감이었는데 그 쓸모가 없어지자 핑계를 만들어 팽해버린 것이다. 
 

 
박훈은 칼을 숨겨놓은 곳으로 도섭 영감을 데려가서는 그를 찌른다. 도섭 영감도 갖고 있던 낫을 박훈에게 휘두른다. 영감이 다시 박훈을 공격하려는 순간 삼득이 나타나 아버지를 말린다. 그러다 자기 낫에 아들이 다쳐 피를 흘리자 영감은 왜 자기를 [진즉] 죽이지 않았느냐며 박훈을 향해 절규한다. 삼득은 박훈에게 누님을 데리고 어서 여기를 떠나라고 부탁하고, 가슴을 부여잡고 있던 박훈은 휘청대며 자리를 뜬다. 그는 과연 오작녀와 함께 떠날 수 있을까? 열린 결말이긴 하지만 박훈이 입은 상처가 심해 보이고 오작녀에게 편지를 주지 않은 것으로 볼 때... 그닥 희망적인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다.

인류 최초의 살인자 카인. 더구나 질투심에 사로잡혀 친동생 아벨을 죽인 존속 살인자.
가족처럼 지냈던 사람들이 한순간 서로에게 등을 돌리고 서로를 죽이는 비극.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어 자기 이득을 취하는 추악한 세력. 인간의 본성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박훈과 오작녀가 마주 바라보고 있다
TV문학관 카인의 후예. 웨이브 캡처


* 사실 드라마만 보았을 땐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소설 줄거리를 읽고 나니 정리가 되었다.

* 소설 줄거리를 보니 드라마와 다른 부분이 있다. 예를 들면 드라마에선 박용제가 총에 맞아 죽었는데 소설에서는 자살을 한다. 여기 말고 다른 곳이 더 있을 수 있다. 또 말하지만 드라마만 보고 소설을 읽은 척해서는 안 된다.

* 수동적이던 박훈이 살인까지 실행에 옮기는 인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이나 도섭 영감, 오작녀 등 주요 인물의 심리를 더 잘 파악하기 위해서는 원작 소설을 읽어봐야 할 것 같다.

* 오작녀로 나온 김미숙 배우가 아주 인상적이다. 도섭 영감으로 나온 김진해 배우의 연기는 최고다.



벙어리 삼룡이 - KBS TV문학관 (김영철 선우은숙 강태기)


아무 곳에나 버려져 있던 아기를 한 스님(박용식)이 발견한다. 절에는 마침 자식을 얻으려고 불공을 드리던 양반집 마님(서우림)이 있었다. 스님은 마님에게 이 아기를 데려다 키우면 자식이 생길 것이라고 단언한다.

삼룡이가 등에 업은 아씨를 보며 활짝 웃고 있다
KBS TV문학관 벙어리 삼룡이. 유튜브 캡처

UHD로 만나는 TV문학관 '벙어리 삼룡이' 


: 제95화. 1983.08.13 방영. 2023.05.22 재방영. 나도향 원작. 윤대성 극본. 맹만재 연출. 
김영철, 강태기, 선우은숙, 양영준, 서우림, 권미혜, 권기선, 봉혜선, 곽정희, 박용식, 이원종, 유순철, 오기환, 김창봉, 박상만, 신원균, 전광렬, 정재순, 이난희, 김소유, 김효진, 최용팔, 심동훈, 최용호, 이만주 출연.


세월이 흐르고 아기는 오생원(양영준) 집 하인 삼룡이로 자라났다. 스님 말대로 마님은 아들(강태기)을 얻었는데, 오냐오냐 키운 탓에 장난으로 동물을 죽이고 농작물을 망치는 개망나니가 되었다. 삼룡이 덕분에 태어나게 되었다는 말을 가장 싫어하는 3대 독자는 아버지한테 혼나거나 기분이 나쁠 때면 삼룡이를 때리는 것으로 그 화를 푼다. 한마디로 강약약강. 바보처럼 착하기만 한 삼룡이는 이유도 모른 채 늘 얻어맞는다.


오생원은 사실 공명첩으로 양반 신분을 산 처지였다. 가난하지만 진짜 양반인 집에 땅과 재산을 주고 그 집 딸(선우은숙)을 며느리로 데려온다. 하지만 3대 독자는 주막집 딸 안실(권기선)과 이미 뜨거운 사이였다. 혼인 첫날밤부터 잔뜩 취한 것도 모자라 처가에 인사하러 가는 것도 때려치우고 안실과 놀아난다.

아씨를 처음 본 순간부터 호감을 가진 삼룡이는 혼자 신행 가는 아씨를 극진히 모신다. 그 뒤로도 아씨가 힘들어할 때면 바보 흉내를 내며 웃게 만든다. 그런 삼룡이가 고마웠던 아씨는 복주머니를 만들어 선물로 준다. 너무 기뻤던 삼룡이는 여기저기 자랑을 하고 다니는데, 이것이 마치 아씨가 그에게 준 정표처럼 소문이 난다. 삼룡이가 애지중지하는 복주머니를 본 3대 독자는 아씨를 심하게 구타한다. 보다 못한 삼룡이가 3대 독자를 밀쳐내고 아씨를 구해낸다. 개망나니의 매타작은 삼룡이의 몫이 되고 안채 출입도 금지당한다.

삼룡이가 아씨에게서 복주머니를 선물 받았다
KBS TV문학관 '벙어리 삼룡이'. 김영철/선우은숙

이 와중에 안실은 오생원 집에 쳐들어와 3대 독자의 아이를 가졌다며 소란을 피운다. 3대 독자는 안실이와 살겠다고 선포한다. 마님은 이 모든 탓을 며느리에게 돌린다. 그것도 모자라 벙어리에게 연정을 품을 줄 몰랐다며 친정으로 돌려보내겠다고 겁박한다. 절망에 빠진 아씨는 남편에게 또 구타를 당한다. 아씨가 걱정된 삼룡이는 안채로 몰래 들어갔다가 천장에 매달려 있는 아씨를 보게 된다.


삼룡이가 아씨를 겨우 구했건만 인사는커녕 보쌈으로 오해를 받아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고 오생원 집에서 쫓겨난다. 동네를 떠돌다 아무 곳에서나 졸고 있는데 불이 났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삼룡이가 달려갔을 땐 이미 안채가 불타고 있었다. 방 안에 들어가니 3대 독자가 살려달라며 달려든다. 처음엔 밀쳐냈지만 삼룡이는 이내 그를 구해준다. 그리고 다른 방에 쓰러져 있는 아씨를 발견해 끌어안고는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소리를 토하며 절규한다.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지붕 위에서 모습을 드러낸 삼룡이. 아씨를 안은 채 포효하던 그는 기와 위에 주저앉는다. (두 사람이 어떻게 되었을지는 각자의 상상에........)

불길 속에서 삼룡이가 아씨를 안은 채 울부짖고 있다
KBS TV문학관 '벙어리 삼룡이'. 유튜브 캡처

몇십 년 만에 다시 본 벙어리 삼룡이는 고구마 천 개 아니 만 개 아니 천만 개를 먹은 듯 속이 미어지다 못해 터질 것 같은 내용이었다! 백치 아다다와 맞먹는 수준의 핵핵핵고구마!

장애를 가진 천애고아 머슴과 돈에 팔려 시집와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아씨. 동병상련으로 서로를 챙겨주던 두 사람을 부도덕한 사이로 낙인 찍은 건 정작 가족 같은 사람들이었다. 삼룡이가 언어장애를 가졌어도 오생원 부부가 그를 친자식처럼 키웠다면? 3대 독자를 애초에 안실과 맺어주었더라면? 그 누구도 삼룡이와 아씨 사이를 모함하지 않았다면?
그놈의 체면과 지위, 남의 눈에 사로잡혀 정작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진 않았는지 되돌아보라고 벙어리 삼룡이가 말하는 듯하다.
 


* 원작에서는 삼룡이가 아씨를 구해내고 바로 숨을 거둔다고 한다. 너무 비극적이잖아~

* 마지막에 오생원 집에 왜 갑자기 불이 났을까 의문이 드는데, 티브이문학관에서는 안실이 답답하다며 주막을 뛰쳐나가는 장면이 화재 직전에 나온다. 그래서 혹시 안실이 불을 지른 게 아닐까 추측해 보게 된다. 그나저나 이 화재 장면을 어떻게 찍은 것일까? 아무리 봐도 기와집에 정말 불을 지르고 찍은 것 같은데. 김영철 배우의 연기에 감탄했다.

* 미소년 같은 고 강태기 배우의 외모에 심쿵했으나 실감 넘치는 호로자슥 연기에.......🙄

* 출연진 중 전광렬이 있는데 그 전광렬 배우인지 모르겠다.

* 김진규 배우가 삼룡이로 나온 영화를 아주 어렸을 때 보았는데 연기가 대단했다는 것과 몹시 슬펐던 것만 기억난다. 
 



2023-07-11

물레방아 - KBS TV문학관 (하미혜 김기섭)


주막에 한 남자가 들어온다. 주인아주머니(여운계)에게 오래전 물레방앗간에서 있었던 일을 아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시작되는 회상.


두 남녀가 입을 맞추려 하고 있다
KBS TV문학관 물레방아. 웨이브 캡쳐


UHD로 만나는 TV문학관 열 번째 작품 '물레방아'


: 제94화. 1983.08.06 방영. 2023.05.15 재방영.
나도향 원작. 백결 극본. 김충길 연출. 김기섭, 하미혜, 박병호, 이신재, 여운계, 백수련, 하대경, 유병준, 신수강, 홍영자, 김시원, 김윤형, 기정수, 박현정, 송종원, 서영진, 이종남, 박종완 출연.


== 줄거리 나옵니다. 스포 주의하세요 ==


여기저기 떠돌며 사는 방원(김기섭)은 새로운 마을에 들어선다. 계곡에서 세수를 하다가 둥둥 떠다니는 버선 한 짝을 발견한다. 그리고 마을 잔치에서 버선을 한쪽만 신은 여자(하미혜)를 보게 된다. 빼어난 외모와 색기로 시선을 사로잡는 여자. 방원은 무언가에 홀린 듯 여자를 뒤따라간다. 물레방앗간에서 마주한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욕망을 숨기지 않고 하룻밤을 보낸다. 날이 밝고 방원이 정신을 차렸을 땐 곁에 아무도 없었다. 떠나려던 생각을 접은 그는 강첨지네(이신재) 머슴으로 일하면서 여자를 다시 만나기를 소망한다.
 
어느 날 방원은 길에서 관을 따라가는 사람을 보게 되는데 다름 아닌 그 여자, 금분이었다. 남편의 장례를 치루는 중이었던 금분은 방원에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 하자고 말한다. 강첨지는 하인 길보(하대경)에게 당장 빚을 받아오라고 시키는데 방원이 따라가 보니 바로 금분의 집이었다. 금분이 빚 갚을 능력이 안 된다는 것을 뻔히 아는 강첨지가 그녀를 후처로 삼으려고 머리를 굴린 것이다. 이에 방원은 자신을 다른 부잣집에 팔아서 금분의 빚을 대신 갚아준다.
 

 
부부가 된 두 사람은 신주사(박병호) 집에 들어가서 하인으로 산다. 신주사는 금분을 보고는 한눈에 반해버린다. 옹기 가마를 운영하는 그는 방원을 가마에서 지내게 하고는 금분을 돈으로 유혹한다. 오랜만에 집에 온 방원은 금분에게서 이상함을 느끼고 무당을 찾아가 비방을 얻는다. 비방에는 다른 여자 속옷이 필요했는데, 이를 훔치다 들키는 바람에 신주사 집에서 완전히 쫓겨나 버렸다. 그렇게 동네를 떠돌고 있을 때 어딘가 바쁘게 가는 금분을 목격하고 따라 나선다. 
 
문이 잠겨진 물레방앗간 안에는 금분과 신주사가 있었다. 방원은 신주사의 옆에 낫을 내리찍는다. 식겁한 신주사는 서둘러 자리를 뜨고, 방원은 금분에게 다른 곳에 가서 살자고 애원한다. 하지만 금분은 구차하고 천한 것이 싫다며 거부한다. 분노에 사로잡힌 방원은 금분을 몰아세우고 실랑이를 벌인다. 이내 금분이 바닥에 쓰러지고.......
 
물레방앗간을 다시 찾아온 남자는 하염없이 떨어지는 물을 보며 눈물을 짓는다.
 

 
나도향의 소설 '물레방아'. 필독서였지만 안 읽었다. 읽지 않은 게 자랑은 아니지만 꼭 읽으라고 하면 왠지 더 피하고 싶은 것이.... 나만 그랬을까? 그래서 이런 영상물 보는 것으로 독서를 대신하곤 했는데, 이 '물레방아' 역시 TV문학관을 보고 소설 읽은 척을 해서는 안 된다. 소설 에서는 방원이 칼로 금분을 죽이고 목숨을 끊는다고 한다. 극에서는 방원이 금분의 목을 조른다. (곧 기둥 같은 것에 가려지기 때문에 화면에는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금분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아리송하면 극 초반에 나온, 남자와 주막 주인의 대화를 되새겨보면 된다. "신주사네 하인이 바람난 저 여편네를 죽였는데 그래도 그 사내는 그 계집을 못 잊어서 울면서 울면서 주재소 순검한테 끌려갔는데 도대체 사내와 계집의 사이란 건 알다가도 모르겠습디다" 
 
한순간 본능에 이끌려 자기 인생 전부를 걸어버리기도 하는 것이 인간이다. 어리석음이랄까 용감함이랄까 무모함이랄까 그 종잡을 수 없고 복잡한 존재라는 점이 인간을 예측불허의 삶으로 이끈다. 그래서 인생은 희극보다는 비극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한복 차림의 여자가 웃고 있다
KBS TV문학관 물레방아. 금분 역의 하미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