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28

토지 - KBS 주말 대하드라마 (최수지 윤승원)

고 박경리 작가님이 26년의 세월을 들여 집필한 장편소설 '토지'.

읽어보진 않았다 해도 이 작품의 존재를 아는 분들은 많을 것이다. 2022년 현재까지 드라마로는 총 세 번 제작되었는데 그중 두 번은 소설이 완결 나기 전에 만들어졌다. 세 번째 리메이크 작품인 SBS 토지도 나온 지 벌써 20년을 향해가는데 앞으로 또 드라마로 만들어질 수 있을까?

서희로 분장한 최수지가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KBS '토지' 서희 역의 최수지. 출처 뉴스핌

토지 (KBS)

: 1987.10.24 ~ 1989.08.06 토요일, 일요일 방영. 총 103부작. 박경리 원작. 최수지, 윤승원, 반효정, 박원숙, 임동진, 선우은숙, 연운경, 김영철, 연규진, 김성녀, 태민영 등등 (출연 배우가 정말 많음)

토지의 '최서희' 하면 누가 가장 먼저 떠오르시는지? 아마도 많은 분들이 '최수지'를 외치지 않을까 싶다. 나부터도 서희는 곧 최수지 배우라고 생각하니까. 1대 한혜숙 배우가 연기한 서희는 보지 못했고, 3대 김현주 배우는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2대 최수지와 비교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작가님의 따님(고 김영주 토지문화재단 이사장) 인터뷰에서 본 것 같은데, 박경리 작가님이 최수지를 보고 '네가 바로 서희다'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드라마를 보기 전에 소설을 먼저 읽었다면 서희를 어떤 이미지로 상상했을지 모르겠지만, 소설을 읽어보니 최수지는 정말 서희의 현신 같았다. 미인이면서 강단 있고 서늘하고 도도한 느낌. 나이를 계산해보니 그녀가 이 큰 역할을 맡은 게 스무 살 때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젊다 못해 어린 나이에 대단했다.



또 KBS 토지 하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역이 있는데 바로 '임이네'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박원숙 배우가 연기한 임이네. 척박한 땅에서도 악착같이 뿌리를 내려 어떻게든 살아남는 잡초 같은 여자. 속셈이 감춰져 있는 웃음을 흘릴 때면 소름이 끼치다가도 한편으론 그 무시무시한 지독함에 연민마저 느끼게 만드는 복잡한 캐릭터를 어찌나 잘 보여주셨는지 임이네가 나온 장면들은 기억이 진하게 남아있다. 연말 KBS 연기대상에서 임이네 역으로 최우수상을 타셨을 때 얼마나 박수를 쳤는지 모른다. (만약 그때 상을 다른 배우한테 줬다면 TV 안으로 쳐들어갔을지도)

서희 아역으로 나온 이재은 배우의 똑부러지던 연기도 잊을 수 없고 청소년 서희 역의 안연홍 배우가 "찢어 죽이고 말려 죽일 테야!" 절규하던 것도 잊을 수 없다. 청소년 봉순이로 나왔던 귀염상의 김수정, 정말 예뻤던 성인 봉순이 역의 전미선 두 배우도 그립고 혈혈단신 서희 곁을 묵묵히 지켜주던 길상 역의 윤승원 배우 정말 듬직하니 멋있었다~ (토지 전작 '내 마음 별과 같이' 때부터 팬이었음)


KBS 토지에서 길상 역을 맡은 윤승원
길상 역의 윤승원. 출처 클리앙

반면 사람 속을 뒤집어 놓았던 월선(선우은숙)과 용이(임동진), 그리고 그의 부인 강청댁(연운경). 첫사랑에 죽고 못 사는 남편 때문에 미쳐 날뛰던 강청댁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리고 서희네 집을 집어삼키는 조준구(연규진)와 그의 부인 홍씨(김성녀)도 너무나 사악했던 나머지 잊을 수가 없다.

KBS 토지는 웨이브(Wavve)에 전편이 올라와 있다. 복습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소설을 다 읽기 전에는 다시 보지 않으려고 한다. 4권을 도통 못 넘기고 있지만 어찌 됐든 끝까지 읽고 싶다. (할 수 있을까?😓)

세상 사는 게 무엇인지 운명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토지를 보세요.


* 통영에 박경리 기념관이 있는데 그 뒷산에 작가님의 묘소가 있다.

박경리 작가가 채소를 다듬고 있다
박경리 작가님. 출처 박경리기념관 홈페이지

박경리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kbs 토지 광고물
드라마 토지 팸플릿. 출처 박경리기념관 홈페이지




잠들지 않는 나무 - MBC 월화드라마 (박상원 정애리)

현대무용을 하며 생활을 위해 제재소에서 일하는 남자(박상원). 의사의 아내로 안정된 일상을 살아가던 여자(정애리).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의 불꽃같은 사랑 이야기......

왼쪽부터 정애리,박상원, 최진실
정애리, 박상원, 최진실. 출처 키노라이츠, MBC홈


잠들지 않는 나무 (MBC)

: 1989.04.10 ~ 05.02 방영. 8부작. 이관희 연출. 조소혜 극본. 박상원, 정애리, 현석, 최진실, 윤여정, 김창완, 김용림 등 출연.


기억하기론 여자 주인공이 남편을 잃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처지인 줄 알았는데 줄거리를 찾아보니 뭐?! 남편이 있다고? 허걱. 방영 당시 뭔가 말이 많았었는데 그래서였구나. 지금도 불륜을 정면으로 다루는 드라마는 논란 거리가 되는데 80년대 드라마는 오죽했을까.

당시 박상원 배우는 '인간시장'의 장총찬 역으로 단박에 인기를 얻은 라이징 스타였다. 학교에 가면 쉬는 시간마다 박상원 얘기를 하는 애들이 많았다. 나 역시 장총찬에게 뿅~가서 그가 나오는 것이라면 닥본사(닥치고 본방 사수)를 했었다. 이 드라마에선 그가 춤추는 모습까지 나오니 놀라움이 두 배! 기억에 짙게 남아있는 장면도 그가 비를 진탕 맞으며 춤을 추는 모습이다. 세상 다 잃은 듯한 얼굴로.



이제야 드라마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왜 '잠들지 않는 나무' 일까? 박상원이 일하는 곳은 베어 낸 나무를 가져다 가공하는 제재소인데,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나무를 유용하게 만들어주는 곳이지만 나무의 입장에서 보면 생명을 빼앗긴 것도 모자라 처참하게 해체되는 곳이다. 그럼 왜 남자 주인공이 일하는 곳을 제재소로 설정했을까? 나무가 이리 깎이고 저리 깎여도 나무 자체인 건 변함없다, 뭐 이런 뜻? (사방에서 돌을 던져도 두 사람의 사랑만큼은 진심이기에...)

드라마 길이도 8부작이면 많이 짧은데 혹시라도 조기종영인가 찾아봤지만 기사는 안 나온다. 원래 짧게 기획된 것인지 아니면 비판 때문에 빨리 끝낸 것인지 모르겠다. 결말도 기억이 안 나니 참..? 줄거리대로라면 유부녀가 남편 아닌 남자와 밤을 함께 보내는 것이 지상파 드라마에 나왔는데 이렇게 파격적인 장면에 대한 기억은 왜 남아있지 않는 걸까? 박상원만 뜯어보느라 바빴나??




* 이 작품과 한 쌍처럼 떠오르는 드라마가 있다. KBS에서 방영한 '숲은 잠들지 않는다'이다. 아까도 드라마 정보 찾아보는데 잠들지 않는 '숲'으로 검색을 해버렸다. 두 드라마가 비슷한 시기에 나왔다고만 생각했는데 방영 날짜를 보니 '잠들지 않는 나무' 끝나고 바로 그 다음 날부터 '숲은 잠들지 않는다'가 방영 시작! ??? (원래는 '숲은 잠들지 않는다'로 글을 쓰려고 했는데 조사가 더 필요한 부분이 있어서 이 드라마로 바꿨다)

* 2006년 고인이 되신 조소혜 작가의 빈소에서 박상원 배우가 한 말을 붙여본다.
출처 : 스타뉴스 https://entertain.v.daum.net/v/20060526064113456

박상원은 "지난 1989년 고인과 '잠들지 않는 나무'에서 처음으로 만났다"며 "원래 내 배역이 작가 역이었으나 무용을 전공한 것을 안 그가 내 역을 무용수로 변경했다"고 말했다. 서울예술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한 그는 이어 "이렇듯 고 조소혜 작가는 배우의 끼를 끄집어내는데 탁월했다"며 "수목장을 한다 하니 그의 작품 이름처럼 '잠들지 않는 나무'가 돼 좋은 곳에서 영원히 편히 쉬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2023-09-16

지금 평양에선 - 북한 소재 KBS 드라마 (김병기 김성겸 허진 사미자 이치우 등)

그 옛날(?) 북한을 다룬 드라마가 있었다. 주인공은 김정일. 그의 여동생 김경희와 간부 여러 명이 비중 있게 나왔다. 김일성도 나왔었다는데 생각이 안 나고. 어렸을 적 이 드라마를 정말 열심히 보았었다. 그땐 정말 평양 관저 내부를 그대로 보여주는 줄 알았다. 김병기 배우가 진짜 김정일인 줄. 나중에 아닌 걸 알았지만 그래도 김정일 하면 실제 인물보다 배우가 더 먼저 떠오른다.

김정일 역할의 배우가 여러 자세를 취하고 있다
드라마 타이틀 (유튜브 캡쳐)

지금 평양에선 (KBS)

: 1982.11.30 ~ 1985.05.14 매주 화요일 방영. 199부작. 극본 김동현. 연출 하강일. 김병기, 문오장, 허진, 김성겸, 사미자, 김흥기, 백일섭, 이치우 외 다수 출연.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나고 인물들이 거의 다 사이코 같았다는 느낌만 남아있다. 특히 김정일은 툭하면 소리 지르고 뭔가를 내던지고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허진 배우가 연기한 김경희도 목소리를 자주 높였던 것 같다. 실세 아닌 실세의 느낌? 아랫사람 중에는 고 김흥기 배우가 분했던 인물이 그나마 정상적이었다. 김정일이 호시탐탐 남한을 노리는 캐릭터였던 것은 분명한데 대체 무슨 얘기로 199회를 채웠을까?

1980년대에 어떻게 북한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있을 수 있었을까 신기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지금은 만들라고 해도 만들기 힘들 것이다. 기쁨조 묘사 같은 것은 허구한 날 심의에 걸릴 지도. 그보다 방송사 홈페이지 시청자 게시판에 빨갱이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글이 넘쳐나지 않을까? 다시보기가 되면 몇 화쯤 돌려보고 싶긴 한데 위키백과에 의하면 남아있는 영상이 거의 없다고 한다. 아깝다~

솔직히 이 드라마는 몇몇 장면만 기억에 남아서 쓸 말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쓰는 건 우리나라에 이런 드라마도 있었다고 기록해놓고 싶어서 이다. 북한의 당사자들은 이 드라마를 보고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김정일이 이 드라마를 가끔 보았으며 남측 인사에게 김병기의 연기를 칭찬했다고 한다. 이 정보에 대한 출처는 나와있지 않다)




* 김병기 배우는 훗날 MBC 드라마 '검은 태양'에서 국가정보원 원장으로 나왔다.

* 김경희로 나온 허진 배우와 김정은 동생 김여정(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이 왠지 닮은 듯 하다.

김정일 동생 김경희 역할의 허진과 김정은 여동생 김여정
허진 / 김여정


* 1984.06.19 방영된 6.25 특집극 '함정'에 이 드라마의 출연진이 그 역할 그대로 나온다고 한다(나무위키). KBS 유튜브 채널에서 볼 수 있다.



2023-09-03

닥터 깽 - 2006년 MBC 수목 미니시리즈 (한가인 양동근 이종혁)


배우 한가인 하면 바로 떠오르는 드라마가 '닥터 깽'이다. KBS 드라마 '노란 손수건'이나 '애정의 조건'도 생각나긴 하지만 이 작품에서의 한가인이 인상 깊었다.

양동근이 한가인을 뒤에서 끌어안고 있다
한가인, 양동근. 출처 MBC 공식홈

닥터 깽 (Dr.깽)

: 2006.04.05~05.25 MBC 방영. 16부작. 김규완 극본. 박성수 연출. 양동근, 한가인, 이종혁, 김혜옥, 김학철, 김정태, 박시은, 하석진, 오광록, 조미령, 최재원, 정겨운, 유태성, 김수겸, 원태희, 정명준, 추교진, 김하균 출연.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깽=건달=조폭 멤버인 양동근이 사고 현장에서 다친 사람을 구하다가 졸지에 의사로 낙인(?) 찍혀버린다. 그때 까칠한 진짜 의사 한가인과 만나게 되고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은....... 본 지가 오래되어 줄거리는 기억이 안 나지만 설정만 봐도 할 이야기가 많아 보이지 않는가.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지만 상처가 많은 한가인이 의사 아닌 양동근을 만나 마음을 치유하는 뭐 그런 이야기.


배우마다 연기 타입이 있는데 연기 천재 양동근은 무슨 역을 하든 그 인물 같다면, 이 드라마에서 한가인은 연기를 굉장히 열심히 하는 느낌이었다. 그 '애를 쓰는' 모습이 좋았다. 경력이 많지 않은, 비교적 신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열기라고 할까. 누가 한가인 출연작 중 추천을 원하면 이 드라마를 꼽겠다.


* 박성수 PD님 연출작 중에 재밌게 본 드라마가 많다. 이제는 연출 안 하시나?
* 김규완 작가님 근황이 궁금합니다~


창 밖에는 태양이 빛났다 - MBC 월화 미니시리즈 (권인하 이미연 송승환)


이 드라마가 유독 기억에 남는 건 장면 장면이 아주 감각적이었기 때문이다. 주연 세 사람이 지내는 2층 집은 세트가 아닌 실제 집 같았다. 깊이 있는 화면과 현실감이 눈을 사로잡았다. '황인뢰'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싶게 만든 드라마였다고 할까.

이미연과 권인하가 등을 맞대고 서있다
 이미연과 권인하. 출처 나무위키

창 밖에는 태양이 빛났다 (MBC)


: 1992.09.21~11.03 방영. 14부작. 황인뢰 연출. 박정화 극본. 권인하, 이미연, 송승환, 김현주, 문성근, 윤예희, 정한용, 서갑숙, 한영숙, 정혜승, 박병훈 출연.



가수 권인하가 연기를 하는 것도 너무 신기했다. 지금이야 아이돌 가수들이 연기를 함께 하는 게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지만 저 때만 해도 겸업하는 연예인이 많지 않았다. 더구나 이 분은 가창력으로 승부하는 가수가 아니었던가. 더 놀라웠던 건 연기를 꽤 잘하셨다. 전혀 생각지 못한 사람이 전혀 생각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는 재미가 컸었다.

첫 회부터 본 것 같지는 않고 이미연을 보려고 이 드라마를 봤을 것이다. 하지만 KBS 청소년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에서와는 너무나 다른 이미지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다. 시력을 잃은 남자와 함께 살면서 그 집에 애인을 끌어들여 이중 생활을 하는 역할이라니. 애인 역의 송승환과 이미연이 침대에서 뜨거운 일을 벌이다 권인하가 나타나자 서둘러 자리를 뜨는 장면이 있는데, 웃음을 참아가며 도망가는 두 인간이 어찌나 얄밉고 재수 없던지 잊히지가 않는다. 배우의 변신은 무죄라지만 전작에서 정말 착하고 순했던 이미연의 이미지는 산산이 부서져 버리고.....😭

결말이 충격적이었던 것 같은데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게 맞는지 확신이 없다. 마지막회 만이라도 다시 보고 싶지만 MBC 홈에도 정보가 전혀 없다. (다시 볼 수 있게 해주세욧!)



* 원작은 롤리타로 유명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어둠 속의 웃음소리'.

* 송병준이 맡았던 음악이 아주 좋았다. 연기도 괜찮게 했던 그는 훗날 드라마 제작자가 된다.(그가 '꽃보다 남자'의 수익으로 만든 '탐나는도다'는 MBC가 편성만 잘했어도 대박 아니 중박이라도 났을 것이다. 2022년에도 시청률 30% 넘게 나오는 KBS 주말 가족극 드라마 시간대에 이걸 던져 놓다니 말이 되냐고~ 미니시리즈 시간대에만 방영했어도 시청률 최소 10%는 나왔을 거라 장담한다)

* 황인뢰 감독은 가수를 배우로 곧잘 썼다. '고개 숙인 남자'에서 눈에 띄는 신인이 있길래 찾아보니 그룹 H2O의 멤버 박현준이었다. 베스트극장 '고독의 기원'에서는 H2O의 김준원이 나쁜 남자로 나왔다. '궁'에서 베이비복스 출신 윤은혜가 채경이 역할을 그렇게 잘 해낼 줄 누가 알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