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09

내일 뉴스 - MBC 신년 어린이 특집극 (이만성 김소연 김용림)

유튜브에서 뭘 찾다가 보게 된 '내일 뉴스'. 

무슨 잡지에서 본 만화인지는 모르겠고 주인공의 집에 전화가 걸려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됐던 것 같다.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데 그가 말한 대로 일이 벌어진다. 다시 전화가 걸려오고, 또 누군가의 말대로 일이 벌어지고.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왜곡이 됐을 수도 있다. 어쩌면 전화가 아닌 TV에서 나온 뉴스일 수도. 


내일 뉴스가 나오는 파란색 라디오
MBC 특집극 '내일 뉴스'. 유튜브 캡쳐

내일뉴스 (MBC)


: 1985년 01월 03일 방영. 신년 어린이 특집극. 강철수 원작. 강철수 극본. 황인뢰 연출. 이만성, 김소연, 김용림, 심양홍, 박은수, 전운, 박윤배 등 출연.


3회 정도 밖에 못 봐서 결말이 몹시 궁금했었는데, 이번에 검색해보니 다름 아닌 강철수 만화가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어느 분이 몇 장 올려놓은 만화를 보니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과 그림체가 다르다. 내가 본 건 무엇이었을까? 아류작? 표절작? 리메이크?


===== 스포일러 주의하세요 =====



아무튼 같은 제목의 단막극을 보았다. (연출이 황인뢰!)

주인공은 아파 보이는 할아버지에게 용돈을 다 내드리고 보답으로 라디오를 받는다. 아이는 라디오를 만지작거리다 이상한 것을 듣게 된다. '내일' 뉴스? 교통사고가 나서 몇 명이 죽는다는 무시무시한 뉴스는 다음날 바로 현실이 되고, 아이와 누나는 비밀을 공유한다. 다음 뉴스는 누나가 일하고 있는 회사 건물에서 불이 나 엄청난 피해가 난다는 내용. 누나는 앞뒤 안 가리고 달려가 위험을 알리지만 돌아온 것은 미친 사람 취급과 해고뿐이다. 경고를 무시한 사장은 결국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는데.

- 이게 만약 '어린이 특집극'이 아니었다면 '미래를 막지 못하는 인간의 무력감'에 대해 계속 얘기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남매는 라디오로 돈을 벌어보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때마침 거기에 걸맞는 뉴스가 나온다.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대가의 그림이 고물상에서 발견되었다는. 남매는 그림을 헐값에 사서 그 몇천 배의 가격으로 판다. 이쯤 되면 결말이 예상되지 않는가? 공중파에서 만든 어린이 드라마에 쉽게 번 돈으로 재벌이 되는 어린이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남매가 큰 욕심을 부린 뒤에 더 이상 내일 뉴스는 나오지 않고, 알고 보니 라디오는 이미 사용할 수도 없을 만큼 고장 난 상태였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그럼 라디오는 왜 남매에게 내일 뉴스를 들려주었을까? (개인적인 욕심 안 부리는) 착한 사람에게 들려준 것이라고 한다면, 어떻게든 미래를 바꾸라는 메시지인가? 언젠가 남매에 대한 뉴스가 나올 수도 있으니 계속 들어라? 막을 수도 없는 끔찍한 미래를 알게 되는 것만큼이나 끔찍한 일도 없을 텐데 할아버지는 착한 아이에게 왜 이런 부담을 주셨나요? 네? 대체 뭘 어떻게 하라고요~😭


* 2011년에 내일뉴스 영화의 주인공으로 강지환이 캐스팅 되었다는 뉴스가 있다.


대문 앞에 있는 딸을 엄마가 바라보고 있다
MBC 특집극 '내일 뉴스'. 유튜브 캡쳐

* 화질이 안 좋아서 헷갈리긴 한데 '디프 포커스(deep focus)로 찍은 장면으로 보인다. 카메라에 가까이 있는 것이나 멀리 있는 것이나 초점이 다 살아있게 찍는 방식. 촬영에 신경을 많이 쓰신 듯하다.

2023-10-07

초록빛 모자 - MBC 베스트셀러극장 (서갑숙 박영규)


포탈에서 검색해보면 리뷰가 여러 편 나온다. 베스트셀러극장 중에 기억하는 분이 꽤 많을 것으로 짐작해본다. 개인적으로는 여자 주인공이 '남장'을 하는 게 너무 강렬했어서 기억에 짙게 남았다. 여자가 얼굴에 수염을 그리고 누가 봐도 큰 남자 양복을 입는 게 몹시도 신기했었다. 여기에 두꺼운 뿔테 안경까지 곁들인 서갑숙은 내 눈에 정말 남자 같았다. 그 생경함이 단막극 끝나갈 때까지도 극복이 되지 않았다.


MBC 베스트셀러극장 초록빛 모자. 출처 월간 조선


MBC 베스트셀러극장 제54회 초록빛 모자


: 1985년 1월 6일 방영. 김채원 원작. 서갑숙, 박영규 주연



스틸 사진을 보니 박영규가 초록색 모자를 쓰고 있는데 내 기억 속엔 색깔 정보가 없다. 왜냐면 당시 우리집 TV가 흑백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막극 제목과 내용이 나에게는 따로 노는 느낌이다. 초록빛 모자로 대변되는 박영규는, 마음을 닫아걸고 자신을 부정했던 주인공이 스스로를 되찾게 만드는 '희망' 같은 존재인데 그 중요한 상징을 놓치고 봤으니...

이 단막극이 더 인상에 남은 이유는 당시 내가 살았던 동네에서 촬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주인공이 사는 집은 성신여대 근처에 있었다. 그 집 앞을 지나갈 때면 한참 쳐다보곤 했다. 개천 다리도 나왔던 것 같은데 동네 낯익은 곳이 화면에 나오면 탄성을 지르며 아는 척을 했었다. 비록 촬영하는 건 못 보았지만, 만약 당시에 직접 보았다면 아마 굉장한 추억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원래 추억의 드라마 리뷰를 쓸 때는 다른 리뷰를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번엔 서갑숙 배우의 인터뷰 기사까지 보고 말았다.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혼자 꾹꾹 억누르며 그만큼 더 외로워졌던 주인공. 마지막에 용기를 낸 그녀는 결국 행복해졌을까? 




샴푸의 요정 - MBC 베스트셀러극장 (채시라 홍학표)


요즘 말로 나의 최애캐(최고로 애정하는 캐릭터)와 사귀어보는 상상,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지 않았을까? 그 판타지가 잘 그려진 드라마들이 있는데 '샴푸의 요정'은 그 원조라고 할 수 있겠다. 최고 인기 스타를 상대로 혼자 사랑을 키우는 주인공. 과연 스타의 연인이 되는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광고 화면 속의 채시라
'샴푸의 요정' 애리 역의 채시라. 해피타임 캡쳐
 

MBC 베스트셀러극장 제226회 샴푸의 요정

: 1988.11.06 방영. 장정일 시 원작. 주찬옥 극본. 황인뢰 연출. 채시라, 홍학표, 윤석화, 이효정, 이홍렬, 오영수 출연.

샴푸 모델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애리(채시라)를 만나기 위해 주인공 현재(홍학표)가 한 일은 광고회사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여기서 잠깐. 굵직한 광고를 만드는 광고회사라면 들어가고 싶다 해서 맘대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닌데... 현재의 스펙이 좋은가? 어쨌거나 그는 소원대로 애리를 만나게 되고, 스토커한테 시달리는 애리의 흑기사가 된다.



이 당시 채시라 배우는 가나초콜릿 광고 모델로 각인된 상태였다. 채시라 하면 곧 가나초콜릿이었다. 순수하면서도 나이 답지 않게 분위기 있어 보이는 외모가 진한 초콜릿과 잘 어울렸다. 이런 청순한 하이틴 스타 이미지를 뒤엎고 성인 배우로 발을 내디딘 게 '샴푸의 요정'이었다. 방영한 지 3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이 화가 회자되는 거 보면 채시라의 연기 인생에 있어서는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배우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지만.

광고 얘기를 좀 더 해보자면, 채시라 하면 떠오르는 광고들이 더 있다.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카피가 주옥같았던 베스티벨리, 너무 슬프게 펑펑 울다가 티슈를 뽑아 눈물을 닦던 크리넥스, 물을 맞으며 춤을 추는 모습이 기가 막히게 섹시했던 해조미인(맞나?) 광고 등. 해조미인 광고는 광고의 신 김규환 감독이 만든 것으로 아는데 영상이 왜 없을까?


KBS2TV <쇼 토요특급> 빛과 소금 - 샴푸의 요정 (1990년 07월)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 수많은 단막극 중에서도 이 화가 오래도록 기억되는 것은 같은 제목의 주제가 덕분이기도 하다. 시티팝의 선구자 '빛과 소금'이 만든 샴푸의 요정은 지금 들어도 정말 좋다. 세련된 멜로디와 부드러운 초콜릿 같은 장기호의 목소리. 노래를 듣고 있으면 정말 어디선가 샴푸 향기가 날 것만 같다.

TXT(투모로우바이투게더)라는 아이돌 그룹이 리메이크한 버전도 있다. 이 노래에 춤이라니 문화 충격이...!  😅

[TOMORROW X TOGETHER COMEBACKSHOW] TXT - Fairy of Shampoo


- 별은 멀리서 봐야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나도 소싯적에 덕질 꽤나 했는데 스타에게 너무 가까이 가면 못 볼 꼴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은 에너지가 달려서 어렸을 때처럼 하래도 못 하지만, 어떤 관계이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스타라면 밤하늘에서 빛나는 모습만 보고 싶고 기억하고 싶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2023-10-06

산노을 - KBS TV문학관 (이기선 이구순)

문제 있는 형 부부를 대신해 조카를 챙겨 고향으로 내려온 동석(이구순)은 마을에 요양하러 와있던 하영(이기선)과 만나게 된다. 조카가 다친 것을 계기로 가까워지는 두 사람. 하지만 하영에게는 문제가 있었으니.......


풀밭에 앉아있는 이기선과 이구순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
KBS TV문학관 산노을. 유튜브 캡쳐


KBS TV문학관 제63회 산노을


: 1982.11.06 방영. 이철향 극본. 맹만재 연출. 이기선, 이구순, 서승현, 정재순, 최정훈, 반문섭, 최성우 등 출연.


순전히 이기선 님이 나온다고 해서 봤으나... 솔직히 추천을 못 하겠다.

배경으로 나오는 양떼 목장 풍경은 아주 좋다. 화면만 보면 눈과 마음이 편안해지지만 스토리는 저혈압 환자도 치유시키는 저세상 전개!


==== 스포일러 주의하세요! ===





아니 20대 젊디 젊은 딸이 시한부 선고받았는데 딸한테는 아무 말도 안 해주고 병원비 감당할 수 있는 남자와 결혼을 하라고 압박하는 엄마라니 이게 대체 무슨? 딸의 남자 친구한테도 설명은커녕 무조건 만나지 마라 안된다 그러면 누가 대뜸 '넵 그러겠습니다' 하겠냐고요~ 이야기 전개를 위해 하영의 엄마가 침묵하는 설정이 필요했겠지만, 갈등이 너무 억지스러워서 보는 내내 짜증이 났다.

게다가 하영은 중환자나 다름 없는데 뜬금없이 봉사를 하겠다고 수녀원에 가는 것도 참.... 주인공이 이런 선택을 할 수도 있는 캐릭터라는 게 이야기 안에 어우러지면서 보여졌어야 하는데, 그런 설명이나 암시 없이 갑자기 그러니 시청자 입장에선 황당할 뿐이었다.


머리를 양갈래로 묶은 이기선
KBS TV문학관 산노을. 유튜브 캡쳐


내용 얘기는 여기까지. 이기선 배우만 보겠다 하면 보세요. 젊은 시절의 이구순 배우 보고 싶다 하면 보세요. 그 외에는........


* KBS 옛날티비 유튜브 채널 영상에 두 배우가 결혼했다고 써놓은 댓글들이 있는데 그랬으면 인터넷에 기사 한 줄 없을 리가 없다. 검색을 해보니 두 분 다 외국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부부라는 얘기는 일체 없다.




인간의 꽃 - MBC 베스트셀러극장 (이기선 박영규)


단막극의 주 무대는 3층 정도의 저택. 거실이 엄청 넓었으며, 배우 이기선이 나왔다. 누군가 저택에서 추락하는 장면이 있었고, 제목 표기가 '◯◯의 花'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배우 이기선이 한복을 입고 머리에 쪽을 졌다
배우 이기선


MBC 베스트셀러극장 제96회 "인간의 꽃"


: 1985년 12월 8일 방영. 박완서 원작. 박철수 연출. 이기선, 박영규, 임미미, 박병훈 출연.


베스트셀러극장 목록을 찾아보니 눈길이 가는 제목이 있었다. 출연진에 이기선이 포함되어 있으니 내가 찾는 화가 맞는 듯했다. 영상은 없어서 원작 소설을 찾아보았다. 원제가 '욕망의 응달'. 품절 내지 절판 상태라 중고책을 사서 보았다. 처음 발간된 것이 1979년. 읽는 동안 이 소설이 정말 40여 년 전에 쓰인 게 맞는지 감탄하면서 보았다. 인간 내면을 눈으로 직접 보는 것마냥 날카로운 심리 묘사가 끝내주는 작품이었다. (역시 박완서 대작가님)


- 줄거리가 나옵니다. 스포일러 주의해주세요 -



미혼모인 자명은 옷가게를 하며 생계를 꾸리고 있었다. 어느날 가게를 드나들던 젊은 남자에게서 청혼을 받는데 알고 보니 그는 동네 저택에 살고 있는 민우였다. 아이의 호적이 문제였던 자명은 민우를 따라 저택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민우의 가족들이 이상하다. 이름이 소희인 시어머니는 자명보다도 젊고, 민우의 아홉 형제는 엄마가 다 다르다. 소희만 찾아대는 시아버지는 산 송장이나 다름없다. 사실 민우가 자식 있는 자명에게 접근한 것은 다 속셈이 있어서였다.

민우와 가장 친하면서도 친하다고 할 수 없는 누나 영우가 저택 비상구 아래쪽에서 떨어져 죽은 채로 발견된다. 전날 밤 잠을 못 자고 있던 자명은 희한한 장면을 목격했다고 밝히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자명이 본 대로라면 가장 의심스러운 사람은 소희이다. 자명의 말을 믿지 않았던 민우도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 생각이 바뀐다.

영우의 장례가 치뤄지고, 서자 중에 첫째인 태우는 저택을 나섰다가 죽임을 당할 뻔한다. 그는 처음부터 소희를 믿지 않고 늘 각을 세웠다. 자명의 얘기를 듣고 영우의 죽음이 사고가 아닌 타살이라고 확신하던 중이었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인간을 잡고 보니 저택의 정원사였다. 아울러 소희에 대해 뒷조사한 내용까지 전해 들으니 모든 퍼즐이 맞춰진다. 소희는 태우의 아버지가 망하게 한 집안의 딸이었던 것. 정원사는 소희의 친척으로 그녀의 복수를 도와주기 위해 함께 했던 것이었다.




한편 민우는 자명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한 것과 그 이유를 낱낱이 밝히고 용서를 구한다. 시작이야 어찌 됐건 정말 사랑하게 된 두 사람은 함께 하기로 한다. 모든 전말이 들통날 위기에 처하자 소희는 3층에 불을 지른다. 한데 자명이 불길 속에 뛰어들자 소희도 뛰어든다. 자명이 끌고 나온 시아버지는 알고 보니 이미 죽은 지 한참 된 상태였다. 소희는 잿더미 속에서 발견되고, 민우는 살아남은 자명에게서 인간미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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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자명을 이기선님으로 상상하며 소설을 읽었다. 자명과 이미지가 정말 잘 어울린다고 혼자 감탄 아닌 감탄을 했었는데 딱 하나 나오는 인간의 꽃 리뷰를 보니 악역이었다고?? 그럼 소희 역을 하셨던 것인가?! 생각해보니 가슴에 칼을 품은 채 천사표 연기를 하는 역에도 잘 어울렸겠다 싶다. 남자 주인공은 생각도 안 나고 오로지 이기선님만 생각나니 어릴 적 내가 정말 왕팬이긴 했나 보다.

극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을씨년스럽고 미스터리하면서도 괴이한 느낌이었는데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