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15

배우 정진 (+ 낙지 같은 여자 이야기)

배우 정진이 환하게 웃고 있다


제목을 모르는 베스트셀러극장.

기억에 남은 건, 현재는 작고하신 배우 정진 님이 산낙지를 생으로 마구 먹던 장면. 카메라가 줄곧 클로즈업을 하고 있었으니 이것은 실제로 먹은 것이었다. 채반에서 꿈틀대고 있는 낙지를 다 먹으면 돈 10만 원이었나 얼마를 주겠다는 내기였는데 그는 결국 승자가 되었다. 그 뒤로 토하는 장면이 나왔고 기억은 여기까지.




혹시나 이 장면에 대한 정보가 있을까 해서 검색을 해보니 오래된 기사가 하나 걸려 나왔다. MBC 베스트셀러극장 '낙지 같은 여자 이야기'에서 정진 님이 화제의 낙지 먹방을 펼쳤다는 것. 그래서 이 화에 대해 찾아보니 주인공을 맡은 송옥숙 배우(가 낙지 먹은 연기를 펼친) 얘기만 나온다. 캡처 이미지에도 정진 님은 보이지 않는다. 내용 역시 '낙지 같은 여자'의 비극적인 삶에 대한 것이다. 문제의 장면이 나온 화에서는 정진 님이 주인공 같았는데.... 이 느낌을 떨칠 수가 없어서 기사의 내용을 믿지 못하고 있다.

정진 님이 나온 12편의 베스트셀러극장에 대해 찾아보았다. '겨울 아리랑'과 '시선에 대하여'에서 주인공으로 나온 것으로 추정되나 검색해봐도 별 정보가 없다. '낙지 같은 여자 이야기'를 당장 볼 수 있는 방법도 없고... 아, 궁금해.

* 낙지 같은 여자 이야기 
: MBC 베스트셀러극장 제39회. 1984년 9월 2일 방영. 송옥숙, 이정길 주연. 한승원 원작. 상세한 줄거리 https://dprime.kr/g2/bbs/board.php?bo_table=comm&wr_id=6109500




* 정진 님이 연기한 인물 중에 한명회(MBC 조선왕조 500년 설중매)가 있었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 왕이 있는 방향으로 절을 하는데 슬픔 후회 체념 등 여러 감정이 느껴지던 그 표정이 잊히지가 않는다. 그때 인상이 강했던 탓에 훗날 이덕화의 한명회에는 잘 적응이 되지 않았다.


화당리 솟례 - MBC 베스트셀러극장 (최민경 김주승)


솟례.
참으로 특이한 이름이다. 이런 이름을 누가 어떻게 왜 짓게 되었을까?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이에 대한 설명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주인공은 처음부터 그냥 솟례이다. 머리에 꽃을 달고 다니는, 어딘가 모자란 처자. 어딜 가나 시선을 집중시키며 구름처럼 아이들을 몰고 다니는 존재. 좋게 말하면 인싸(인사이더. 사람들과 두루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지만 대놓고 말하면 동네 사람들의 '밥'이다. 특히 남자들이 호시탐탐 노리는.

머리에 꽃을 꽂은 솟례
'화당리 솟례' 솟례로 나온 최민경. 유튜브 캡처

MBC 베스트셀러극장 제136회 화당리 솟례


: 1986.11.09 방영. 천승세 원작. 윤시몬 극본. 장수봉 연출. 최민경, 정진, 김주승, 남능미, 안명숙, 김영옥, 박종관, 이계인, 김성찬, 송경철, 박상조, 고영준, 김지영, 정대홍, 문회원, 박희우, 김지원, 박순애, 정혜승, 정명환, 김영석, 맹찬재, 조현이, 이경아 출연.


서울로 도망갔던 솟례가 화당리로 돌아오면서 극은 시작된다. 말하는 것을 보면 구걸로 연명한 느낌인데, 지적 수준이 한참 떨어지는 여자가 한두달도 아니고 1년씩이나 도시에서 어떻게 버텼을지 정말 의문스럽다. 원작 소설을 읽어보면 의문이 풀릴까? 그뿐 아니라 왜 집을 떠났는지, 왜 다시 돌아왔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는 설명을 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 솟례가 종잡을 수 없이 행동하는 바보라고 해도 말이다.



- 스포일러 주의하세요 -

아무튼 솟례의 삶에 비극이 싹튼 건 꽃미남 김주승을 보고 첫눈에 반해버린 뒤부터이다. 극 중 이름을 모르겠는 김주승은 솟례를 보고 한번 웃어주었을 뿐이다. 그 순간부터 솟례에게는 오로지 김주승 뿐이다. 그가 다니는 학교 앞에서 무작정 기다리고 집을 찾아가 스토커처럼 그를 엿본다. 그와 결혼하는 게 인생 최대의 목표가 되어버린 솟례. 세상이 멸망해도 불가능한 꿈이라는 것을 정작 그녀만 모른다.

이런 솟례를 가족처럼 챙겨주는 아주머니가 있어 다행이다 싶었는데, 덕분에 예뻐진 솟례에게 남자들이 대놓고 흑심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솟례가 원하는 것을 주겠다며 그녀의 몸을 탐하는 개자슥들. 솟례는 그렇게 얻어낸 카메라를 김주승에서 떠맡기듯 주지만, 카메라를 갖고 있는 것은 솟례가 친언니처럼 생각했던 아주머니의 딸이었다.



사실 그 카메라가 그 카메라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생긴 게 똑같은 각각의 카메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강간으로 자신이 더럽혀졌다고 생각한 솟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물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김주승과 아주머니 딸이 결혼하는 장면은 솟례의 상상일 수도 있고 실제일 수도 있다. 일이 왜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 누구를 무엇을 탓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하는 솟례. 그래서 그녀가 더 불쌍하게 느껴질 뿐이다.

만약 공중파 단막극이 아니었다면 남자들이 솟례를 탐하는 게 더욱 노골적으로 묘사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솟례를 키워준 할아버지도 '안아준다'는 표현을 쓰는데 성적인 암시가 담긴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아리송하다. 약자 중에서도 약자가 산산이 부서지는 이야기. 세상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제대로 된 보호막이 없는 약자에게는 그저 비정하고 살벌한 곳일 뿐이다.


화당리 솟례에 나온 김주승 배우
지금은 고인이 된 배우 김주승. 유튜브 캡처


우리들의 넝쿨 - MBC 베스트셀러극장 (이원용 정호근 정한헌)


성공하겠다는 꿈을 안고 서울로 올라온 세 젊은이. 인력 시장에서 만난 이들은 서로에게 친구이자 동지가 된다. 중국집, 이발소, 여관에 일자리를 얻은 세 사람은 과연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덕배가 나무젓가락을 입에 물고 있다
덕배 역의 이원용. 유튜브 캡쳐

MBC 베스트셀러극장 제106회 우리들의 넝쿨


: 1986.03.23 방영. 최일남 소설 '우리들의 넝쿨' 원작. 오재호 극본. 김문옥 연출.
이원용, 정호근, 정한헌, 김용선, 김청, 김인문, 홍순창, 김애경, 노경주 출연.


중국집에서 배달원으로 일하는 덕배는 주인아주머니와 돈 많은 여자의 유혹을 받는다. 이발소에서 일하는 춘식은 면도사를 좋아하지만 그녀를 노리는 VIP와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여관에서 일하는 길남은 미용실에서 일하는 여자친구에게 돈을 맡긴다. 어째 설정만 봐도 불안불안하다.




친구의 여친이 힘을 가진 남자에게 휘둘리는 것을 본 덕배는 그에게 달려들었다가 병원 신세만 지게 된다. 면도사에게서 VIP를 떼어놓으려던 춘식은 급기야 칼을 쓰고 감옥에 간다. 길남은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히고 인생의 쓴맛을 보게 된다. 세 명의 젊은이로 대변되는 가난, 약자, 정의가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부, 기득권, 불의와 부딪힌다. 바위에 던져진 계란 같은 존재들. 그래도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절망하지 않는 자기 자신이다.

이야기가 왠지 낯익다 했더니 이장호 감독의 영화 '바람 불어 좋은 날'과 원작이 같다(최일남의 소설은 1995년에도 SBS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주인공 안성기의 연기가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영화와 이 화를 비교해서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아울러 1980년대 서울 풍경 보는 재미도 쏠쏠. 영화 나인하프위크 간판이 반갑다(?).


* 서핑을 하다 보니 김문옥 감독님이 이 화에 대해 쓰신 글이 있었다.
episode 224 적기가 뜨고, 공습경보가 울려도 공포속에 촬영은 계속해야 한다!! - 뉴스캔 (newscani.com)


촬영하는 중에 사이렌이 울리고 북한에서 전투기가 날아와서 난리가 났었다고.
(수정 - 이웅평 대위는 1983년 귀순, 1986년엔 중국 진보충 대위 귀순)
그날 티브이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더니 화면 가득 자막이 뜨고 가족 모두 화장실로 대피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처구니없지만 그땐 얼마나 무서웠던지.

+) 이원용 배우에 대한 후일담
episode 114 어려운 시절에 힘들여 만든 작품의 마지막에 남는 감회는 차리리 눈물이었다 - 뉴스캔 (newscani.com)



2023-10-14

두 권의 일기 - MBC 특집 드라마 (최진실 채시라 도지원)




* 이 리뷰는 故 최진실 님을 생각하며 썼습니다.


배우 최진실.

나이를 먹어보니 그녀가 얼마나 이 세상을 빨리 떠났는지 체감이 된다. 아까운 사람. 안타까운 사람. 어디에 있든 편히 잘 지내시기를.


고등학생 역을 한 최진실
MBC '두 권의 일기' 최진실. 유튜브 캡처

두 권의 일기 - MBC 2부작 특집 드라마


: 1990. 5. 19 방영. 이진석 연출. 최성실 극본. 최진실, 채시라, 도지원, 고두심, 유인촌, 나문희, 변우민, 홍학표, 김명수, 이진우 등 출연.


이 드라마는 형식이 독특했다. 1부의 주인공인 고등학생 채시라가 2부에서는 선생님이 되어 나온다. 2부의 주인공이자 채시라의 제자로 나오는 이가 바로 최진실. 사실 두 배우는 동갑이다. 최진실은 깜찍 발랄하고 채시라는 성숙한 이미지였기에 두 사람이 선생과 학생 사이로 나오는 게 그다지 어색하지 않았다.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겪을 만한 문제를 청소년의 입장에서 다루어 칭찬을 받았던 드라마이지만 솔직히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1부는 전멸에 가깝고 2부만 기억하는 이유는 가수 변진섭이 언급되기 때문이다. 극중에서 최진실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가 변진섭이었다. 2집 음반을 내보이며 선생님 채시라에게 그의 노래를 권하기도 한다. 변진섭은 그 당시 인기가 하늘을 찌르다 못해 폭발할 정도의 스타였다. 나 역시 그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래서 실제로도 그의 팬이라는 최진실을 몹시 싫어했었다.😓


변진섭 2집 음반 커버
Byun Jin Sub 2th Album

지금 돌이켜보면 진짜 유치하고 웃긴데, 청소년들이 주로 듣는 라디오 프로에 나와 공개적으로 그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최진실이 못마땅했다. 한데 그 정도면 그녀가 출연하는 드라마는 보지 말아야 하는데 또 보긴 열심히 보았다. 몇 달 뒤 홍학표와 함께 나온 '우리들의 천국'에서 그녀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을 땐 충격이 너무 커서 방송사에 쳐들어가고 싶었을 정도였다. 나는 과연 그녀의 안티였나, 팬이었나. 그 시절의 나를 나도 모르겠다. 써놓고 보니 최진실 배우를 추억하는 건지 그 시절의 나를 추억하는 건지 쩝.

아무튼 보고 싶어요~ 배우 최진실 님~


'두 권의 일기'도 MBC 해피타임 요약본이 있다. 강추~




이 참에 노래도 들어볼까나...



* '너에게로 또다시' 가사에는 진실이란 말이 들어있다. 스캔들이 났을 때 작사가가 일부러 집어넣었다고. 라디오에서 들었는데 무슨 프로였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 MBC 주말드라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이 유작이다. 최진실이어서 가능한 역이었다고 생각한다.

* RIP 최진실. 당신은 영원한 배우입니다.




울밑에선 봉선화 - KBS 일일연속극 (김윤경 김미숙 권기선 전인화)


평일 저녁 8시 30분부터 9시까지 방영했던가? 끝나면 KBS 9시 뉴스로 바로 넘어갔으니 이게 맞겠다. 매일 저녁 티브이 앞으로 달려가게 만들었던 화제의 일일 드라마.


울밑에선 봉선화 드라마 타이틀
KBS 울밑에선 봉선화 타이틀. 유튜브 캡처

울밑에선 봉선화 (KBS)


: 1989. 11. 6 ~ 1990. 8. 31 방영. 극본 박정란. 연출 김재순. 김윤경, 김미숙, 권기선, 전인화, 강효실, 임혁주 출연.


등장인물이 많았는데 주로 생각나는 것은 주인공인 어머니(김윤경 배우)와 그 세 딸들이다. 첫째 딸 김미숙(배우 이름으로 호칭)은 착했다는 것 말고는 생각이 안 나고 둘째 딸 권기선은 당차고 씩씩한 반항아 스타일? 막내 전인화는 공부를 아주 잘해서 미래가 기대되는 아이였다. 그런데......!

유독 셋째 딸 위주로 기억이 남은 것은 순전히 그 시어머니 탓이다. 전인화가 도시에 있는 학교에 가기 위해 집을 떠나려고 하는데 (망할 놈의) 동네 오빠 임혁주가 갑자기 자기와 결혼해 달라고 애원한다. 나이 차이도 열살 가까이(어쩌면 넘게) 났을 것이다. 전인화를 혼자 좋아하고 있었던가 아무튼 그녀가 작별 인사를 한 다음부터 난리가 난다. 수시로 집에 찾아와 자기랑 살자고 붙들고 급기야 추운 겨울날 전인화네 집 앞에서 눈 속에 파묻힌 동태로 발견...!



공부만 잘하는 게 아니고 심성도 몹시 착했던 전인화는 끝내 이 인간을 뿌리치지 못하고 자신의 미래를 접어버린다. 그런데 문제는 결혼한 뒤였다. 시어머니가 시쳇말로 장난이 아닌 것이다. 오로지 며느리를 괴롭히기 위해 이 세상에 온 듯한 존재라고 할까. 소처럼 일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사사건건 불평 불만 트집을 잡아 댄다. 바보 같이 착한 전인화는 찍소리도 못하고 속으로 눈물만 삼킨다. 며느리가 아이를 가져도 이 악귀 같은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더 괴롭히면 괴롭혔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봐도 너무 짜증 나고 화가 날 뿐!


강효실이 웃고 있다
배우 강효실. KBS 문예극장 출연 장면. 나무위키 펌

이 시어머니 역할을 고 강효실 님이 했는데 정말이지 한겨울 서릿발 같은 연기에 얼마나 싫어하고 미워했는지 모른다. 그녀가 대청마루에 앉아서 목소리를 드높이면 마치 호랑이가 포효하는 것 같았다. 인상도 강해 보여서 더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화면에 이 분만 나타나면 심장 박동이 저절로 빨라졌다.


한복 차림의 김윤경 배우
이 분은 시어머니가 아닙니다. 어머니 역의 배우 김윤경

주인공 김윤경이 자애로우면서도 강인한 어머니여서 악독한 시어머니와 더 비교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전인화가 어떻게 되었더라? 시월드에서 고생하던 것만 생각나고 결말은 기억에도 없으니....... 위키백과 왈, 이 드라마가 1926년부터 64년 간의 세월을 다루었다는데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전인화의 매운맛 시집살이 뿐이다.


- 연말 연기대상에서 김윤경 님이 이 드라마로 *을 탔는데 동료들이 건네주는 꽃다발에 파묻혀 버렸다. 다 안고 있을 수도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대상을 탄 줄 알았을 것이다. 반면 이때 대상은 '야망의 세월'에서 이명박 분신으로 나온 유인촌이 수상했다. 꽃다발이 두 개였던가? 무대로 향하는 그에게 황범식 배우가 악수를 청한 것 말고는 그다지 축하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야망의 세월 정보를 찾아보니 1990년 10월 20일 방영 시작. 그 전에는 KBS '역사는 흐른다'에 출연. 그럼 '역사는 흐른다'로 상을 탔다고 보는 게 맞을 텐데 웬만한 기록에는 다 야망의 세월로 탔다고 되어있다.
(* 우수 연기상을 타신 것으로 기억하는데 위키에는 인기상으로 나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