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14

훠어이 훠어이 - KBS 수목드라마 (나한일 천호진 김성일 강남길)


젊은이들이 모여 사업을 시작한다. 승승장구한다. 대기업이 된다. 그러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날아가 버린다.


젊은이 여섯명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출처 구글이미지

훠어이 훠어이 (KBS)


: 1988.12.07 ~ 1989.02.02 방영. 총 18부. 이환경 극본. 이영국 연출. 나한일, 천호진, 김성일, 강남길, 윤철형, 오욱철, 양미경, 박규채 출연.


이 드라마의 제목이 주는 느낌이 어떤가? 뭔가 훨훨 다 떠나가 버리는 것 같지 않은가? 비극적인 결말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미남 배우들이 우글거리는 이 드라마에 지나치게 몰입을 하였으니......

패기 넘치는 젊은 남자들이 참으로 멋있었다. 특히 나한일과 천호진이 얼마나 멋지던지 바로 반해버렸다. 경쟁자인 김성일도 잘 생긴 나쁜 남자였다. 강남길은 척척박사 스타일의 감초 느낌이었고 오욱철, 윤철형도 개성이 강했던 것 같다. 각각의 매력을 가진 캐릭터들이 환상적인 조합을 이루면서 시너지 효과가 났다. 드림팀 같은 이들을 보는 재미가 아주 컸다.



자신들 월급은 안 챙기면서 사원들에게 수익을 더 나눠주려 하는 장면이 유독 기억에 남아있다. (사회생활을 해보니) 정말 판타지에나 나올 법한 유니콘들이다.

그러다 이들의 사업이 점점 안 풀리고 자금줄이 막혀 급기야 부도가 났을 때 마음이 찢어지게 아팠다. 후반부에 서류인지 돈인지 종이 조각들이 (슬로 모션으로) 공중에 흩날리는 장면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들이 망했다는 게 너무 충격적이었던 나머지 일기장에 그 슬픔을 마구 휘갈겼다. (지금 찾아서 읽어보면 웃음이 터져 나올 듯🤣)

한 회 한 회 너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었는데....... 나한일 하면 '무풍지대'가 이름표처럼 따라다니지만 나는 이 드라마가 먼저 떠오른다.

* 정권에 의해 해체된 국제그룹을 모델로 한 줄 알았더니 '율산그룹'이라고 한다. 

* 20대의 김성일, 천호진 과거사진. 송중기, 배용준이 언뜻...

중년 배우 김성일 천호진의 20대 시절
김성일, 천호진. 출처 구글이미지


2023-10-13

한국에도 축구 드라마가 있었으니.. KBS 슈팅 (이승우 허준호 김정화 박현정)


요즘 2022 카타르 월드컵이 한창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열렸던 게 벌써 20년이 넘었다니. 당시 축구 인기에 힘입어 나온 드라마가 있었는데, 방영 시기를 찾아보니 2002년 즈음이 아니고 그보다 훨씬 전인 1996년이다. 한일 월드컵 유치 기념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허준호와 골키퍼 김병지
배우 허준호 / 골키퍼 김병지

슈팅 (KBS 월화 드라마)


: 1996.09.02~10.01 방영. 10부작. 이상우 연출. 이미숙 극본. 이승우, 허준호, 김정화, 박준규, 박현정, 윤다훈, 박재훈, 김동현, 이혜숙 등 출연.


이 드라마를 보긴 보았었는데 사실 기억나는 것은 별로 없다. 우리나라 골키퍼의 전설 김병지를 모델로 한 듯한 골키퍼 역의 허준호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고나. 헤어스타일도 꽁지머리 아니면 긴 머리였던 것 같은데 스틸 사진을 찾을 수가 없다. 인기 드라마였으면 자료가 그래도 많이 남아있을 텐데 안타깝게도 슈팅은 시청률이 낮다는 이유로 10회 만에 조기 종영되었다. (OTT나 다시보기 제공이 안 되던 시절에는 드라마 시청률이 10% 정도 나와도 인기 없다고 빨리 끝내버렸다. Oh No.......)


배우 이승우, 축구선수 이승우
배우 이승우 / 축구선수 이승우(맨 왼쪽) / 출처 다음이미지


그러고 보니 주연을 맡았던 배우의 이름이 카타르 월드컵 SBS 해설자로 활약한 축구선수 이승우와 똑같다. 캐릭터 이미지도 (이승우 선수처럼) 패기 있고 거침없고 뭐 그랬던 것 같은데.... 그밖에 윤다훈이 유니폼 입은 모습과 슈퍼탤런트 박현정이 매니저 비슷한 역할로 나왔던 게 생각난다. 농구 만화 '슬램덩크'의 채소연을 연상시키는 역. 드라마 후반부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보다 말았는 지도 모르겠다......

허접한 리뷰지만 우리나라 드라마 역사에 이런 작품도 있었다는 것을 기록해두는 차원으로 써보았다. 스포츠를 소재로 영상물을 만들려면 이야기 서사는 둘째 치고 경기를 실감 나게 촬영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나라 영화 중에 박희순이 주연한 '맨발의 꿈'이라는, 동티모르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쳐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우리나라 감독의 실화를 다룬 작품이 있는데 이참에 강력히 추천해본다. (드라마 글에서 영화 추천이라니 좀 그런가?😅)



2023-10-10

곰팡이꽃 - KBS TV 문학관 (남궁민 주연)


자신이 사는 아파트의 어느 주민이 버렸을 쓰레기봉투를 몰래 가져와 욕실에서 해체해보는 남자. 범죄를 수사하는 형사나 할법한 일이 이 남자에게는 취미이자 중요한 일상이다. 누군가에 대해 알고 싶거든 그 친구를 보라는 말이 있지만, 버리는 쓰레기를 보아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이다. 내 이웃이 버린 쓰레기를 탐하라. 이 남자는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것일까?


곰팡이꽃-쓰레기를 뒤지는 남자
KBS TV문학관 곰팡이꽃. 출처 한겨레

KBS TV 문학관 '곰팡이꽃'

: 2003.12.28 (일) 방영. 하성란 원작. 김형일 연출. 남궁민, 박현숙, 이두일, 이얼 출연.


원작은 1999년에 발표된 하성란의 소설이다. 소설에서는 주인공의 옆집 여자와 그 애인의 얘기가 주로 나오는데, 당시 신문기사(소설이 기술을 만났을 때 - 한겨레 2003.12.25)를 보니 TV문학관에서는 각색이 많이 되었다. 이 단막극만 보고 소설 읽은 척을 하면 절대로 안된다. 본 지 너무 오래되었지만 주인공 남궁민이 쓰레기를 욕조에 펼쳐 놓고 분석하던 장면 만큼은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꼭 이 드라마 때문은 아니지만 우편물이나 고지서 따위를 버릴 때 개인 정보가 적혀있는 부분은 철저히 제거하는 게 버릇이 되었다. 택배 받는 게 일상이 된 뒤로는 송장 없애는 데에 정성을 들인다. 누가 내 쓰레기를 뒤져서 이름과 주소 등을 알아낸다면?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지 않는가~





소설 속 남자는 쓰레기에서 알게 되는 것들이 진짜라고 생각한다. '쓰레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옆집 여자의 애인은 여자가 생크림 케이크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그 집 쓰레기에선 과일만 빼먹은 케이크가 나온다. 주인공 남자가 보기에 그 애인은 여자의 진심을 알지 못한다. 다른 누군가의 '진짜 진심'과 '진짜 진실'을 알고 싶은 남자의 심리가 쓰레기를 파헤치게 만든다. 그 애인이 여자의 쓰레기를 봤다면 여자가 생크림 케이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고 그럼 두 사람은 헤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남자는 생각한다.

살면서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타나기 마련이지만, 그런 사람 모두와 친분을 맺을 수는 없다. 갑자기 다가가 내 안에 너 있다~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무작정 나와 친구 하자고 조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 사람에 대해 알고는 싶은데 친분을 맺을 순 없으니 관음 하는(엿보는) 방식으로 그 사람의 쓰레기를 탐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다면 부딪혀 봐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보기 좋게 거절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No Pain No Gain. 거절이 두렵고 무서워서 시도하지 않으면 얻어지는 것도 없다. (단, 거절 당하는 것을 못 견뎌서 복수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사람은 아예 시도도 하지 말기를)




남의 쓰레기를 뒤져보고 잘 치우기만 한다면, 딱 거기까지만 한다면 따로 누구에게 피해 주는 것도 아니고 뭐 어떤가 싶은 생각도 들긴 한다. 여기서 궁금해지는 것이 쓰레기도 사생활 영역인가? 누군가의 집 안에 있는 쓰레기를 뒤진다면야 그렇겠지만 쓰레기장에서 익명성을 얻은 쓰레기는? 주인의 손을 떠나버린, 말 그대로 버려진 쓰레기를 소유하는 것은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듯한데... 남의 쓰레기를 가져다 분석하는 것을 좋게 볼 수 없는 이유는 우선 방식이 지저분하고(dirty), 누군가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자 하는 그 '악착같음'이 소름 돋기 때문일 것이다.

* 위에 링크한 기사에 따르면, 당시 이 한편에 3억을 들여서 만들었다는데 왜 KBS 홈페이지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을까? 더구나 고화질 HDTV 16:9 화면에 5.1 채널 입체 음향으로 제작했다는데 왜 다시보기가 없을까?




잃어버린 너 - MBC 베스트셀러극장 (권재희 노주현)

1987년에 출간되어 엄청난 인기를 끈 소설이 있었다. <잃어버린 너>. 수업 시간에 읽다가 울던 애도 있었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혜성처럼 나타난 러브스토리가 전국을 뜨겁게 달궜었는데, 이 소설의 인기 몰이에는 베스트셀러극장도 한 몫하지 않았을까?


잃어버린 너 영화 타이틀
잃어버린 너 영화 타이틀. 유튜브 캡처


잃어버린 너 - MBC 베스트셀러극장 제158회

: 1987년 5월 3일 방영. 김윤희 원작. 노주현, 권재희 주연.


당시 스틸을 찾아보려니 1991년에 만들어진 영화 관련 사진만 잔뜩 나온다. 사실 저 제목 타이틀도 영화에서 가져왔다. 베스트셀러극장판 남자 주인공이었던 노주현 사진이라도 있을 줄 알았더니 이렇게 찾기 힘들 줄이야. 김혜수, 강석우 주연의 영화도 보았는데 기억 속에는 노주현과 김혜수가 진하게 남아있다. 아마도 두 사람이 함께 나왔던 KBS 주말드라마 '꽃 피고 새 울면' 영향 때문일 것이다. (그냥 봐도 아버지와 딸 같은 두 사람이 부부로 나오는 게 너무 이상하고 징그러워서 기억에 박혀버렸다)



사실 드라마와 영화가 뒤섞여 버렸다. 가린 것을 벗겨내자 흉터가 극심한 얼굴이 드러나는 것은 노주현이고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은 강석우였다가 노주현이었다가 왔다 갔다 한다. 병실에 왜 큰 가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둘 중 누군가가 그것으로 링거 줄을 잘라서 그리로 피가 흘러나와 침대 옆으로 뚝뚝 떨어지던 장면이 선명하다. 이 또한 드라마 장면인지 영화 장면인지 헷갈릴 뿐이고.


잃어버린 너에서 주인공을 맡은 권재희
배우 권재희. 출처 SBS 연예뉴스


'권재희'라는 배우를 여기서 처음 보았다. 참으로 착하고 순수해보이는 인상이었다. 사랑하는 남자가 죽은 줄 알고 절규하는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아... 영화의 힘이 너무 세다. 장면이 뒤죽박죽.

원작 소설을 쓰신 김윤희님은 2007년에 고인이 되셨다. 소설 내용이 100% 다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사랑'이 뭔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윤희는 충식과 함께 하려 했고 충식은 윤희를 자유롭게 만들어주려 했다. 어찌 됐든 둘 다 사랑임에는 틀림없다.


* 권재희 배우의 아버지 고 권재혁 님은 간첩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사형을 당했다. 2014년 45년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관련 기사 [단독 인터뷰] 배우 권재희의 고백 "저는 사형수의 딸입니다"




손오공 - MBC 베스트셀러극장 (한인수 김청 지윤성)

선양그룹의 실질적인 후계자 손오억 전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여직원들에게 추파를 던질 시간은 있다. 세상 다 가진 듯한 그에게 갑자기 이상한 일이 생긴다. 누가 한 발 앞서서 그의 일정을 해치우고 있는 것이다. 쫓아가 보니 놀랍게도 그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다. 급기야 가짜 손오억은 전무실과 집까지 차지하고, 사람들은 진짜 손오억을 알아보지 못한다.


MBC 베스트셀러극장 손오공. 한인수. 유튜브 캡쳐

MBC 베스트셀러극장 제56회 손오공


: 1985.01.20 방영. 이동하 원작. 김송원 연출. 황정한 극본. 한인수, 김청, 지윤성, 박상조, 전운, 문회원, 국정환, 허기호, 신충식, 홍순창, 김명희, 차윤회, 김순경, 정은숙, 이정미, 최영수, 최재호, 노정아 출연.


제목을 모르겠는 베스트셀러극장을 찾아 헤매다 보게 되었는데 이럴 수가! 그 옛날(?)에 도플갱어를 다룬 작품이 있었다니! 도플갱어(doppelganger)는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으로 둘이 만나면 하나는 죽는다는 믿거나 말거나~한 얘기가 있다. 이를 소재로 하는 영화만 몇 편인지. 드라마나 소설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대개는 공포물. '나'는 분명 따로 있는데 나와 똑같은 존재가 나타나 내 모든 것을 차지한다면? 신기함 보다는 두려움과 공포가 앞설 듯 하다.

이 작품을 보고 나니 원작 소설이 몹시 읽고 싶어졌다. 진행이 매끄럽지 않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어서다. 예를 들면 진짜 손오억이 극 초반에 '미스 오'라는 말단 직원을 해고하는데, 나중에 그녀를 발견하고 기차를 따라 탔다가 투신하려는 그녀를 구한다. 진짜 손오억은 그녀가 누구인지 알고 있으니 이름까지 먼저 얘기한다. 사실 모르는 사람이 내 이름을 알고 있으면 당황스러울 것 같은데, 미스 오에게 그런 기색은커녕 그를 자기 고향집으로 데려간다.




그래야 이야기가 진행되니 그런 것이겠지만 과연 소설에서도 이런지 궁금하다. 또 진짜 손오억과 가짜 손오억이 한참 얘기를 나눈 뒤 진짜 손오억이 손오억이기를 포기하는 장면도 원작에서는 어떻게 그려져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내용이라 각색하는 데에 아주 힘들었을 듯 하다. 극 후반부에서는 TV문학관 '꿈'도 연상된다. 손오억은 '또 다른 나'로 인해 지금까지의 자신을 돌아보게 되면서 결국 나를 찾은 것일까, 나를 잃은 것일까? 애매한 결말이 생각할 거리를 안겨 준다.


* 솔직히 '이동하'라는 작가를 이번에 처음 알았다. 손오공을 찾아보니 1976년 한국문학 7월호에 실려 있다. 2023년 현재 나온 지 최소 47년 된 소설이다. 실려있는 책을 찾으려면 발품이 필요하겠다. 작가 분에 대해 더 찾아보니 "장난감 도시"라는 연작 장편 소설이 대표작이라고 한다. 


MBC 베스트셀러극장 손오공. 지윤성. 유튜브 캡쳐

* 회장의 딸이자 손오억의 부인 역할을 한 분이 안옥희 배우인 줄 알았더니 지윤성! 내 눈엔 이 두 배우 분이 왜 이렇게 닮아 보일까? 

* 한인수 배우의 목소리와 발음이 어찌나 좋은지 귀에 쏙쏙 들어온다. 이 분하면 MBC 조선왕조 500년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대왕 역할을 하셨던 게 퍼뜩 떠오른다. 미소가 정말 인자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