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18

일곱개의 장미 송이 - MBC 베스트셀러극장 (박은수 지윤성)


내용이나 장면이 수위 높았던 베스트셀러극장은 확실히 더 기억이 잘 난다. 이 '일곱 개의 장미 송이'는 둘 다 그랬다. 찾아보니 연출이 故 김종학 PD. 이 분하면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등을 남긴, 연출자로서는 그야말로 최고 중에 최고가 아닌가.

박은수 / 원작 소설 표지

7개의 장미 송이 - MBC 베스트셀러 극장 제9회


: 1984년 1월 15일 방영. 김성종 원작. 김남 극본. 김종학 연출. 박은수, 지윤성, 홍성민, 김용건, 국정환, 박상조, 남영진, 김한섭, 송경철, 김영인, 최두열, 홍중기, 문회원, 윤석오, 박영지, 서권순, 박경순, 김순경, 최지원, 최현미, 정성모, 차재홍, 최한호, 최항석, 문창근 출연.


원작은 김성종의 추리소설이다. 어느 날 주인공의 부인이 자살을 한다. 그림을 그렸던 부인은 낯선 남자들의 초상화를 유서와 함께 남겨 놓았다. 자신을 강간한 놈들을 그려 놓은 것이다. 졸지에 부인을 잃은 주인공은 그림 속 남자들을 찾아 한 명씩 복수하기 시작한다.



극 중에서 박은수는 정말로 눈이 홱 돌아버린 사람 같았다. 핏발 선 눈으로 남자를 찾아내고, 죽이고 이 패턴이 반복된다. 달리는 열차에서 몇 번 째인지 모를 남자와 실랑이를 벌이다 밀어내는 장면도 있었던 것 같다. 파란색 기운이 강했던 화면은 뭐였을까? 그 당시 우리집 TV는 흑백이었는데 친척집에서 봤나? 🙄

복수를 완성하고 나서 어떻게 됐더라? 경찰서를 찾아갔나? 아님 그걸로 끝? 결말이 어떻게 났는지 기억이 안 나니 이거 참...... 드라이 아이스의 흰 냉기가 엄청 나온 장면이 있었는데 그건 또 뭐였을까? 오늘도 나는 궁금해!를 외칠 수밖에 없다.


배우 지윤성

* 부인 역의 배우가 '故 안옥희'인 줄 알았는데 위키 정보에는 "지윤성"으로 나온다. 이름도 생소하고 사진을 찾아봐도 누구신지 모르겠다. 혹시라도 내 기억이 맞을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지만 어디에 해보랴.  (지윤성 사진 출처 https://blog.naver.com/joopid)

배우 안옥희. Rest in Peace











* 예술가 외모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고 안옥희 님은 긴 머리를 손수건으로 묶고 이젤 앞에서 유화를 그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실제로 작가로 활동했다. 그림도 그리셨다고 들었다. 안타깝게도 39세에 요절했다. (안옥희 사진 출처 http://blog.daum.net/airlaw/)




2023-10-16

쉬쉬쉬잇 - MBC 베스트셀러극장 (박상조 한인수 오미연)


제목이 무엇인지 간절히 알고 싶었던 베스트셀러극장이 있었다. 

극이 막 전개가 되다가 컷! 소리와 함께 화면이 멈춘다. 카메라가 곧 빵떡모자를 쓴 사람한테로 옮겨간다. KTX 타고 가면서 봐도 감독이다. 그는 열을 내며 다른 스토리로 가보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화면이 거꾸로 감기고, 배우들이 빠르게 뒷걸음질 치며 장소를 벗어난다. 화면이 다시 정상 속도가 되고 다른 내용이 펼쳐진다. 남녀가 키스(?)를 하려는 순간 또 화면이 멈추고 감독은 또 막 뭐라고 한다. 다시 화면이 빠르게 되감기고.

주연 배우 한 분의 얼굴은 기억나는데 성함을 몰라서 당최 뒤져볼 수도 없었다. 찾는 것을 거의 포기했었는데 다른 단막극 정보를 찾아보다가 배우 분 이름을 알게 되었다! 야호~

배우 박상조
배우 박상조. 출처 플레이DB

제40회 MBC 베스트셀러극장 '쉬쉬쉬잇'


: 1984.9.9 방영. 이현화 원작. 허성수 극본. 정문수 연출. 한인수, 오미연, 박상조, 박소현, 박경현, 정호근 출연.


박상조 배우가 출연한 베스트셀러극장 20편 중에 세 편이 눈에 띄었다. 제40회 쉬쉬쉬잇, 제56회 손오공, 제65회 대역 인간. 손오공은 영상을 훑어보니 아니었고, 대역 인간은 캡처 화면을 보니 아니었다. 같은 제목의 원작 희곡에 대해 살펴보니 아무래도 이것이 내가 찾는 그 화?!




플레이DB에서 가져온 연극의 줄거리는 이렇다.

신혼여행을 온 남자. 그의 호텔방을 찾아온 낯선 사내.
신혼여행을 온 여자. 그녀의 호텔방을 찾아온 낯선 여인.
이들의 방문으로 인해 혼란의 신혼 첫날이 시작된다.


사람 코와 입만 그려져 있다
연극 쉬쉬쉬잇 2018년 포스터. 플레이DB

이현화 작가의 1976년작 '쉬쉬쉬잇'은 굉장히 실험적인 작품이라고 한다. 어느 분이 써놓은 희곡 감상평을 보니, 어떤 사건이 인물만 바뀌면서 반복되는데 급기야는 낯선 사내와 여인이 신혼부부 역할을 하고 신혼부부에게 자신들의 역할을 강요하기도 한다고. 내가 기억하고 있는 장면도 얘기가 진행되다가 화면이 되감아지고 다시 또 얘기가 진행되다 되감아지는 식이었으니 이 작품이 맞겠구나~

사실 연극 대본을 구했지만 읽어보려니 A4 용지로 40장이 넘어서 우선은 접었다. 베스트셀러극장에선 박상조 배우가 감독으로 등장해서 이야기를 쥐락펴락 좌지우지했으니 각색이 많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드라마를 조금밖에 못 봐서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감도 못 잡겠다. 연극 정보나 평을 읽어봐도 이건 극을 직접 봐야 알 것 같다. 이제 몇십 년 묵은 궁금증을 풀었으니 인터넷에 영상이 뜨기를 바라 볼까나?



2023-10-15

그 얼굴 - MBC 베스트셀러극장 (박찬환 김청)


MBC 단막극 '베스트셀러극장'을 정말 좋아했었다. 매주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기대가 컸다. KBS 단막극 '드라마게임'도 열혈 애청자였다. 아니, 드라마라면 다 좋아했다. 초등학생이 보기엔 부적절하고 수위 높은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열심히 보았었다. 엄마가 못 보게 하지 않았으니 그랬겠지만. 같이 보다가 재미없다고 채널을 돌리거나 티브이를 끄게 한 적은 있다. 그때 속상했었던 게 아직도 생각이 난다.


kbs 드라마스페셜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박찬환
배우 박찬환. 출처 KBS 홈

MBC 베스트셀러극장 제251회 그 얼굴


: 1989. 5. 14 방영. 마츠모토 세이초 원작. 박찬환, 김청, 이종남, 차주옥 출연.


역시나 파편처럼 머릿속을 떠다니는 베스트셀러극장 장면들이 꽤 있는데 이 작품도 그렇다. 박찬환이 코피를 흘리던 모습만 남아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갑자기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장면이다. 자신이 몰래 저지른 살인이 떠오르면 코피가 난다. 언제 들킬지 모르는 두려움과 죄책감을 영상으로 보여주기 위한 장치였겠지만 어린아이의 눈에는 그 어김없이 떨어지는 코피가 꽤 공포스러웠나 보다. 코피만 선명하게 남은 것을 보면.



베스트셀러극장 정보를 찾아보다 위키백과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렇게 상세하게 정리를 해놓았을 줄이야. 위키백과에서 박찬환으로 검색해보니 여섯 편이 나오는데 제목들이 다 생소하다. 그러다 어느 한 편의 원작 작가를 보고 유레카를 외칠 뻔했다. 마츠모토 세이초.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니까 혹시 이것이 내가 찾는?!

1989년 5월 14일에 방영된 [그 얼굴]. 원작 소설 제목은 '얼굴'.

줄거리를 찾아보니 사람을 죽이러 가는 길에 아는 사람과 마주쳐서 그 사람도 죽인다...고. 아무래도 이게 맞는 것 같다. 식당에서 틀어놓은 TV에서 살인 사건 뉴스가 나오자 주인공은 자신도 모르게 코피를 흘린다. 먹고 있던 국밥(혹은 설렁탕) 위로 뚝뚝. 솔직히 말해 비위가 상해서 더 기억에 남은 장면이다.

박찬환 배우는 스마트한 이미지에 선과 악이 공존하는 얼굴을 가졌다. 웃을 땐 따뜻해 보이다가도 어딘지 모르게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이 매력적이라고 할까. 나쁜 놈 역할을 해도 필시 무슨 사연이 있을 듯한 느낌. 생각난 김에 다시 보고 싶다.



얼굴 - MBC 베스트셀러극장 (김광배 남능미)


한 젊은이가 연상의 여성 사업가를 만나 인생 역전을 꿈꾼다. 나이 들어 보이게 옷을 입고 분장을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성형 수술까지. 부인이 된 여성은 거액의 재산을 남기고 죽는다. 한데 남편이 그 재산을 가질 수 없다?!

배우 김광배와 남능미
김광배, 남능미. 출처 피플검색, 뉴스엔

MBC 베스트셀러극장 제93회 - 얼굴


: 1985. 11. 17일 방영. 김문옥 연출. 김광배, 남능미, 김혜영, 나종미 출연.


이 화도 내용만 알고 제목을 몰랐다. 주연 배우를 이원용, 남능미로 기억하고 있어서 두 분이 함께 나온 화를 찾아보았지만 없었다. 두 분 중 남능미 배우가 나온 것은 틀림없기에 이 분이 나온 베스트셀러극장을 하나씩 뒤져보았다. 그중에 '김광배'라는 배우와 함께 나온 '얼굴'이 유력해 보였는데 포탈에는 이 배우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김광배 배우의 얼굴을 확인해보기 위해 출연작들을 뒤져보다가 어렵게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그러고 보니 기억 속의 남자와 닮았다!

더 대박은 구글에서 '김광배 남능미'로 검색하자 이 화를 직접 연출한 감독님의 글이 걸려 나온 것이다. 유레카! [김문옥-영화와 TV연출를 동시에 해야 할 팔자로 만들어준 "얼굴"] 이 글에 자세히 나와있는 줄거리를 일부 옮겨 본다.



영화 단역 배우인 최민섭은 가난하지만 꿈이 있는 소박한 청년이다. 그러나 성공해 보겠다는 일념은 부잣집 아가씨인 나영에게 딱지를 맞은 뒤에 더욱 굳어진다. 그때 묘한 인연으로 10년 연상의 과부 김여사를 만난다. 모처럼 잡은 행운을 놓칠세라 그는 김여사와 결혼을 한다. 부인보다 연하인 것을 감추기 위해 늙은 분장을 하고 부인은 젊은 화장을 날마다 하게 된다. 노소의 시차를 메꾸기 위해 둘은 성형수술, 의상 등으로 어처구니없는 곡예를 벌인다.
그러던 어느 날, 부인은 암으로 죽게 되고 혼자 남은 민섭은 쾌제를 부른다. 이젠 김여사의 유산으로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세상은 너무 늙게 변한 그를 청년 최민섭으로 받아 주지 않는다. 유산도 알고 보니........

남자가 검은 머리를 허옇게 만들고, 얼굴에 주름과 검버섯을 그리고, 금테 안경에 노숙해보이는 양복을 골라 입으며 늙어 보일수록 신나 하던 게 생각난다. 급기야 연상의 부인보다 남자가 더 늙어 보이는 지경이 되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커플에게 뒤따르는 것은 사람들의 쑥덕거림 뿐.

그러다 부인이 죽고나서 어떻게 되었는지 생각이 안 났는데 윗글 덕분에 궁금증을 풀었다. 아울러 여러 비화까지 덤으로 알게 되어 정말 감사하다. 사악한 욕심을 부리다가 '젊음'이라는 소중한 자산을 제 손으로 망가뜨려버린 어리석은 인간의 이야기. 그가 잃은 것은 비단 젊음만이 아니었다.

* 베스트셀러극장이 왜 '베스트셀러' 극장인지 이제야 알았다. 반드시 '원작'이 있어야 한다고. 이럴 수가, 그래서 베스트셀러극장이었다니.😲

* 박찬환 주연의 '그 얼굴' 리뷰는 여기를 클릭해주세요.



이혼 파티 - MBC 베스트셀러극장 (정혜선 오승명)


부부가 대화를 할 때마다 불꽃이 튄다. 서로에게 던지는 말에 뼈가 있고 가시가 잔뜩 돋쳐있다. 여차하면 서로 물어 뜯을 기세다. 그런데 둘이 정말 싫어하는 거 맞아?

이혼파티에서 부부로 나온 정혜선과 오승명
배우 정혜선, 오승명. 다음이미지

MBC 베스트셀러극장 제74회 이혼파티


: 1985년 6월 9일 방영. 유보상 원작. 박철수 연출. 정혜선, 오승명 주연.


의사 부인과 대학교수 남편. 그들은 틈만 나면 싸운다. 왜 싸우는지 기억이 안 나서 원작을 찾아보니 무려 1977년에 처음 상연된 연극! 희곡이 원작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한국예술디지털아카이브에 나와있는 이혼 파티의 줄거리 일부를 가져와본다.

.......그러한 어느 날 민병욱의 한마디 실수로 아내와의 냉전이 시작된다. 어쩌다 민병욱의 입에서 튀어나온 '개 같은 ㄴ' 이 한마디는 윤지영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고, 지금까지 존경해왔던 남편의 위치는 천하게 멸시를 받게 된다. 부부의 냉전은 날로 심각하게 전개된다. 이러한 가운데 민병욱은 윤지영의 사생활에 대해 불만이 쌓이면서 뭔가 위축됨을 느낀다. 묘한 피해의식에 고민을 한다. 몇 번이나 아내와의 화해를 요구해봤지만 아내는 여전히 싸늘할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민병욱은 뜻밖의 사람을 맞이하게 된다. 바로 아내의 제자 문달호이다. 그는 남자 간호사로 아내의 병원에 일하러 왔다. 민병욱은 그를 아내의 내연남으로 단정 짓고 두 사람을 열심히 훔쳐본다. 민병욱은 망상에 사로잡힌다. 언젠가 아내의 손에 지능적으로 살해될 것만 같은 느낌. 

남편이 진료실(?) 문을 벌컥 열자 젊은 남자가 부인의 손목을 잡고 있던 장면이 있었던 것 같고... 부인이 가져다준 음식을 고양이(혹은 개)에게 주니 고양이가 죽어있는 (상상) 장면도 있었던 것 같고... 줄거리를 읽고 기억을 짜내 본 거라 아닐 수도 있다.

확실히 생각나는 건 근사해 보이는 실내에 파티 준비를 해놓고 남편이 이혼 얘기를 꺼내려 한다. 흰 샤워가운 차림의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여행을 온 느낌인데 부인이 갑자기 헛구역질을 한다. 드라마에서 헛구역질은 뭐다?! 임신~~~




부인이 진료 받는 장면조차 바람피우는 것으로 의심했던 남편은 그간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는다. 그리고 기쁨에 들떠서는 "◯◯파티다!" 외치는데 대체 뭐라고 한 건지 모르겠다. 재혼 파티? 임신 파티? 재결합 파티? 빙하가 단 몇 초만에 녹아버리는 느낌으로 끝난 결말이 반전이라면 반전이었다.


* 이 화를 찍을 당시 배우 분들 실제 나이를 계산해보니 만 나이로 정혜선 님이 43세, 오승명 님이 39세. 솔직히 남자 배우분 나이가 더 많은 줄 알았다.

* 박철수 감독님이 베스트셀러극장 연출을 많이 하셨다. 감독님의 영화 중에 '서울 에비타'라는 1991년도 작품이 있는데 여기에 정혜선, 오승명 두 배우 분이 함께 나온다. 베스트셀러극장 인연이려나? 안타깝게도 감독님은 2013년에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돌아가셨다고 한다.

* 배우 오승명 님 2024. 08. 25 소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